[경제 포커스] 싱크홀, 대전환 그리고 새로운 메뉴판

궤도 일탈한 정치경제 실험 탓
경제 밑바닥에 커지는 '싱크홀'

한 정파의 섣부른 정책실패가
국가실패 되지 않게 하려면
포퓰리즘성 흘러간 메뉴 버리고
대전환 시대 이끌 수 있어야

강석훈 <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
지하수가 유실되면서 땅속에 생긴 공간을 싱크홀이라고 한다. 궤도를 일탈한 정치경제 실험 때문에 우리 경제를 지탱하던 지하수가 상당 부분 유실됐다. 우리 경제의 기저에 커다란 싱크홀이 형성되고 있다. 서민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막막하던 자영업자들의 삶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이제는 희망을 품는 것조차 사치가 됐다. 생존을 위한 대출과 부동산 가격 폭등 관련 대출이 급증하면서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서고 있다. 코로나 이전부터 꽁꽁 막혔던 일자리 기회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더욱 단단하게 봉쇄됐다. 학교 졸업 후 최초 일자리 진입에 실패하면서 청년층의 삶은 피폐해지고, 이름 모를 잡코인의 마지막 운명처럼 추락해버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기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과도한 규제, 높은 임금과 많은 세금 부담으로 인해 기업인들은 상품 팔기가 아니라 기업 팔기에 나서고 있다. 싱크홀 추락을 막은 마지막 방패였던 재정은 방패가 아니라 우리 경제의 근심으로 다가올 날이 머지않았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유탄이 날아와 한국 기업들이 대형 싱크홀에 빠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누구나 한국 경제의 밑바닥에서 점점 커지고 있는 대형 싱크홀의 존재를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보궐선거는 커다란 싱크홀의 두려움에 직면한 국민의 거친 아우성이었으며, 새로운 정책과 대책을 내놓으라는 절규와도 같았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당, 야당 그리고 그 많다는 대선주자들 누구도 대한민국과 대한 국민을 싱크홀 위기에서 구할 메뉴를 내놓지 않고 있다.

과거의 잘못이 싱크홀을 만들었다면 미래의 과제는 대전환 시대 대응이다. 미국과 중국의 세기의 패권 대결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의 리스크를 점점 확대시키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과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는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빠른 속도로 떨어뜨리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나 선진국 시민이 된 현재의 기성세대와 선진국에서 태어난 선진국 시민인 청년세대는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갈등과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싱크홀의 확장과 대전환 시기에는 새로운 메뉴가 준비돼야 한다. 과연 소득주도성장을 대체할 성장전략은 무엇인가? 재정을 나눠주는 가짜 일자리가 아니라 청년들이 원하는 진짜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책은 무엇인가? 서민까지 괴롭히는 부동산 정책 말고 국민의 저녁잠을 편하게 만들 부동산 대책은 무엇인가? 늘어나는 복지 기대와 복지 수요에 적절히 대응하면서도 재정의 건전성을 담보해줄 조세 및 복지 대책은 무엇인가? 방만해질 대로 방만해진 공공 부문은 어떻게 개혁할 것이며, 무소불위의 권력이 된 노동조합은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한국의 미래를 걸고 벌어지고 있는 반도체 대전에서 승자가 되는 민관합작 전략은 무엇인가?현 집권 세력의 정책 실패가 한 정파의 실패로 끝날 수는 있어도 대한민국의 실패가 돼서는 안 된다. 누구라도 현재의 집권 세력을 대신해 대한민국을 책임지려고 한다면 현재의 메뉴가 나쁜 메뉴라고 하고 이야기를 끝내서는 안 된다. 부정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 실패한 메뉴는 어떻게 폐기할 것이며, 동시에 싱크홀을 극복하고, 대전환 시대를 성공적으로 이끌 새로운 메뉴를 소개해야 한다. 그 신메뉴판이 ‘옛날짜장’과 ‘짬뽕 국물’과 같은 흘러간 메뉴만으로 채워져서는 안 된다. 가령 ‘성게알을 곁들인 녹색 짜장’이나 ‘열량과 영양분이 소수점까지 표기된 디지털 짬뽕’과 같은 매력적인 새 메뉴로 가득 차야 한다. 안타깝게도 인식 또는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게으른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새로운 메뉴를 제시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게으른 사람이 내놓는 흘러간 메뉴로는 대한민국을 싱크홀로부터 구할 수 없다. 포퓰리즘으로 가득찬 황당한 메뉴로는 대전환에 성공할 수 없다. 누구라도 신메뉴를 내놓지 않으면서 대한민국을 이끌겠다고 하는 꿈은 일찌감치 버리는 게 좋다. 어디 새로운 메뉴판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