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양현종, 텍사스 '자전거 뒷자리' 차지할까

MLB 데뷔전서 롱 릴리프로 4⅓이닝 2실점 효율적 투구
이제 시선은 빅리거로 승격된 양현종(33·텍사스 레인저스)이 로스터에 오래 머무를지, 아니면 잠시 있다가 다시 대체 훈련지로 내려갈지 텍사스의 선택에 쏠린다. 양현종은 27일(한국시간)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를 상대로 한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데뷔전에서 구원 등판해 4⅓이닝 동안 2실점으로 양호한 성적을 남겼다.

텍사스 구단과 미국 언론은 양현종이 기대 이상으로 좋은 인상을 남겼다고 호평했다.

크리스 우드워드 텍사스 감독은 선발 조던 라일스가 홈런 2개 등 안타 10개를 맞고 무려 7점을 주자 4-7로 끌려가던 3회 2사 2, 3루에서 이날 빅리거로 불러올린 양현종을 마운드로 내보냈다. 양현종은 실점 위기에서 첫 타자 앤서니 렌던을 2루수 뜬공으로 잡고 불을 껐다.
양현종은 4∼5회를 연속 삼자범퇴로 요리한 뒤 6회 집중 3안타를 맞고 1점, 7회 호세 이글레시아스에게 좌중월 홈런을 맞고 또 1점을 줬지만, 66개의 공으로 경기 후반까지 마운드를 지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불펜 소모가 극심했던 팀에 투수 운용의 숨통을 열어준 셈이었다. 양현종은 개막전 로스터에 들지 못해 대체 훈련지에서 빅리그 승격을 준비해왔다.

이어 세 번이나 원정 예비 명단인 택시 스쿼드(taxi squad)에 들어 텍사스의 원정 경기에 동행했다.

불규칙한 훈련 일정에도 양현종은 컨디션을 잘 유지해 벼르고 벼른 데뷔전에서 안정적인 투구로 합격점을 받았다. 텍사스는 지난 주말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원정 3연전에서 선발 투수가 2번이나 조기 강판한 바람에 불펜을 서둘러 투입해야만 했다.
이날 양현종이 빅리그 기회를 잡은 것도 피로한 불펜 투수들에게 휴식을 주기 위한 텍사스 구단의 결정 덕분이다.

구원 투수들이 피로를 해소할 때까지만 양현종이 빅리그에 남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홈런을 맞을 때 실투한 것을 제외하고 양현종은 강한 타구도 거의 허용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잘 해냈으며 정말로 효율적이었다"던 포수 호세 트레비노의 호평을 고려한다면 양현종이 빅리그에 남아 텍사스 구원진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도 있다.

우드워드 감독이 양현종을 영입했을 때부터 구상한 '탠덤'(tandem·2인승 자전거) 형식으로 그를 기용한 점에 비춰보면 양현종이 빅리그에 오래 남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자전거 앞자리엔 그날의 선발 투수, 뒷자리엔 선발 투수가 일찍 무너졌을 때 롱 릴리프로 투입할 선발 경험이 있는 투수를 앉힌다는 '탠덤' 전략은 선발 투수를 한 경기에 잇달아 투입하는 우리 식의 '1+1'과 같은 맥락이다.

텍사스는 1선발인 카일 깁슨와 베테랑 마이크 폴티네비치를 빼고 나머지 선발 투수 3명에게 최소 몫인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투구)를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5번씩 선발 등판한 아리하라 고헤이와 라일스는 두 번씩 5이닝을 넘기지 못했다.

한국계 데인 더닝도 4번 중 2번은 5회 전에 강판했다.

추격조의 롱 릴리프는 실점을 최소화해 동점 또는 역전의 발판을 놓는 일을 한다.

텍사스 불펜에는 프로 16년 경력의 양현종만큼 노련하게 긴 이닝을 버틸 불펜 요원이 사실상 없다. 양현종의 장단기 기용법을 두고 텍사스 구단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