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추기경, 병세 악화에도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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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엽 신부 "건강이 악화돼서 말씀하시기 어려워했다"정진석 추기경이 27일 노환으로 선종한 가운데 세상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행복을 염원하는 바람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이날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최근에 정 추기경님을 찾아뵈었을 때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며 "이후로는 건강이 악화돼서 말씀하시기 어려워했다"고 밝혔다.고인은 우리나라에서 배출된 두번째 추기경이다. 그의 일생은 내내 천주교와 함께였다. 1931년 서울 중구 수표동에서 태어난 직후 명동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계성초등학교(당시 계성보통학교)를 다니며 당시 명동성당 보좌신부였던 노기남 대주교로부터 교리를 배우고 복사로 활동했다.
고인의 어린시절 꿈은 발명가였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과학자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6.25전쟁은 그를 사제의 길로 이끌었다. 피란 과정에서 두번이나 눈앞에서 죽음을 가까스로 피하면서 '하느님이 나에게 사명을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고인은 생전 가톨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생은 한 네 번, 다섯 번째인 것 같다. 살려 주시는 분이 계셨고 해야 할 과제를 손에 쥐여주시는 분 또한 계셨다"며 사명감을 깊이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미군통역관으로 일하던 중 '성녀 마리아 고레티'에 대한 책을 번역하며 사제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전쟁이 끝난 뒤 서울대에 복학하지 않고 가톨릭대 신학부에 입학해 1961년 사제품을 받았다. 마리아 고레티 성녀 시성 20주년인 1970년 국내 최연소 주교로 서품됐다. 이후 28년간 청주교구장을 지내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등을 지냈다.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임했다. 2006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그를 추기경에 임명하면서 한국에서는 고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두 번째 추기경이 됐다.고인은 방대한 독서량과 왕성한 학구열로 유명하다. 1995년 김대건 신부와 함께 최양업 신부의 라틴어 서한을 완역하며 6개월간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기도 시간인 6시 30분까지 번역에 매달렸다고 한다. 집필도 왕성하게 이어갔다. '교회법원사', '교회법 해설', '한국천주교사목지침서 해설' 등 교회법 관련 저서와 역서를 집필했다. 지난 2019년 펴낸 '위대한 사명'까지 총 49편의 저서와 14편의 번역서를 냈다.
고인은 2012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난 뒤로 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 주교관에 머물며 저술활동에 매진해왔다.
그러나 고인은 지난 2월 21일 몸에 심한 통증을 느낀 뒤로 주변 권고로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입원 초기에는 몸 상태가 극도로 악화하는 등 선종 순간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왔으나 꾸준히 건강을 되찾으면서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까지 회복했다.고인은 지난달에는 병석에서 다른 신부들이 공동 집전하는 미사에도 참여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을 위해 기도를 올리는 본당과 신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서울대교구장으로 치러지는 고인의 장례는 주교좌성당인 명동대성당에서 5일장으로 거행될 예정이다.
김정호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