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완의 21세기 양자혁명] 양자기술 발전의 자양분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와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벌써 5차 산업혁명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더 높은 숫자를 붙이고 새것을 불러들인다고 해서 혁명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5차 산업혁명이 거론된다면, 양자기술이 주요 항목으로 등장해야 할 것이다. 어디까지가 4차이고 무엇이 5차가 될지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수십 페이지의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 분야 관련 목록에는 ‘양자(量子)’가 없다. 심지어 양자기술 프로젝트와 관련해 기업에 채용된 인력 중에도 물리학 전공자는 5% 미만에 불과해, 우리나라 산업기술에 대한 양자물리학의 침투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디지털 정보통신산업 선진국인 한국이 양자기술 관련 투자에 뒤처진 것은 양자가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 분야 목록에서 빠진 탓도 있겠지만, 양자물리학이 낯설어 기업체나 일반 대중의 이해를 얻지 못한 영향이 클 것이다. 다행히 2019년부터 양자컴퓨터 연구 등에 대한 정부 지원이 본격화하고, 몇몇 기업을 중심으로 양자암호통신기술 사업이 도입돼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1차와 2차 산업혁명은 증기에너지와 전기에너지를 사용하는 기계를 이용한 대량생산으로 이해되고, 3차와 4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와 통신네트워크에 의한 정보기술로 이뤄진다. 에너지 보존법칙으로 알려진 열역학 제1법칙의 화두 ‘에너지’는 1, 2차 산업혁명과 연관되고,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으로 알려진 열역학 제2법칙의 화두인 ‘엔트로피’는 3, 4차 산업혁명과 관련이 있다. 엔트로피는 열역학과 정보에 공통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란의 여지가 많은 제러미 리프킨의 저서 《엔트로피》를 3차 산업혁명과 연관시키기도 한다.

정보 운용원리도 제공하는 양자기술

양자물리학은 자연을 설명하는 궁극의 원리로 등장해 화학의 원소, 각종 분자와 생명 물질의 구성원리를 설명하고 합성원리를 제공함으로써 20세기 물질문명의 근간을 이뤄왔다. 양자물리학의 원리로 발명된 반도체 기술과 레이저는 컴퓨터와 통신기술에 혁명을 가져왔지만, 양자물리학은 나노기술의 발달과 함께 신물질 합성과 디지털정보기술 하드웨어 원리를 제공하는 데 그쳤다. 이제 양자물리학이 물질의 구성원리를 넘어 정보를 운용하는 원리까지 제공하게 됨으로써 양자기술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됐다.정보통신기술 발달로 세상의 모든 것을 연결한다는 사물인터넷(IoT) 등은 편리함을 가져다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적 자유의 훼손과 해킹으로 인한 위험도 커진다. 그래서 이런 두려움으로부터 보호해 줄 보안(security)이 5차 산업혁명의 주요 항목으로 등장해야 하고, 이와 관련한 궁극의 기술로 양자컴퓨터와 양자암호통신, 양자센서 등이 대두되고 있다.

기업인의 냉철한 판단이 중요

이미 세계 기술 선진국들이 양자기술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이것이 아직까지 오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이뤄질 미래의 기술이 될지, 언제까지나 오지 않을 영원한 미래의 기술로 끝나고 말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양자정보과학 연구자들은 우려와 확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IBM, 구글 등 이미 인정받고 있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이온큐 같은 신생 양자컴퓨터 회사도 엄청난 투자를 받기 시작했다. 양자컴퓨터 알고리즘 연구로 유명한 스콧 아아론손 교수는 여러 곳에서 적지 않은 돈을 받으며 양자컴퓨터 관련 초청 강연을 하는 등 마음만 먹으면 수백만달러 돈방석에 앉을 수 있는데, 차마 그렇게는 하지 못하겠다며 양자기술의 미래에 대해 판단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건전한 의구심이 양자기술 발전에 큰 힘이 된다.‘벌거숭이 임금님’ 이야기에 나오는 두 재단사는 알면서 속였고, 순박한 아이의 솔직함에 거짓이 탄로났다. 아인슈타인은 양자물리학의 온전성을 죽을 때까지 의심했지만, 이는 오히려 양자기술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런 한편 지구는 둥글다는, 검증이 끝나지 않았던 이론에 목숨을 건 투자는 신대륙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양자정보과학 연구가 대학과 연구소 위주로 이뤄져 왔으나, 이제 우리 기업들이 주체가 되는 양자기술 관련 포럼이 출범하게 될 예정이다. 기업인들의 냉철한 판단과 연구자들의 진정성이 한국 양자기술산업 발전의 초석이 될 것이다.

김재완 < 고등과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