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농장에 스며든 인공지능… AI가 돼지 키운다

한국축산데이터 경노겸 대표
경노겸 한국축산데이터 대표
인공지능 스피커가 노래를 선곡하고 인공지능 로봇이 서빙을 한다. 인공지능 로봇이 기사를 쓰고 주식투자를 리딩한다. 인공지능 기반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달릴 날도 멀지 않았다. 이처럼 우리 일상에 이미 스며든 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미래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축산 농장에 전파된 AI축산업에서는 어떨까. 축산업은 여전히 다른 AI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AI(Avian Influenza, 조류독감)는 닭, 오리 등 가금류를 기르는 농장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철새가 한국을 찾아오는 매년 겨울, 농장주들은 인근 축사에서 AI 확진 소식이 들리지는 않는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AI는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한 농장에서 확진 판정을 받으면, 예방을 위해 인근 3km 이내 농장의 모든 닭을 살처분해야 한다. 치료제 없는 가축 질병은 AI 외에도 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등 축종 전반에 퍼져 있다. 대응 방식은 예방적 살처분으로 동일하다. 수만 마리의 가축을 죽이고 땅에 묻는 과정에서 엄청난 행정적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 지하수 오염과 축산물 가격 폭등으로 이어지는 가축 질병은 결코 농가만의 손해로 끝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매년 7억 마리 가까운 돼지를 생산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IT 기업 넷이즈는 해결책을 인공지능에서 찾았다. 2009년 양돈산업에 뛰어든 넷이즈는 인공지능 기술로 돼지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고, 활동력 분석을 통해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스마트 양돈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넷이즈 스마트 양돈농장은 2019년 중국 전역을 휩쓴 ASF 사태에서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돼지를 신속하게 격리해 ASF 발생을 사전 차단하면서 가축 질병 예방을 위한 인공지능의 잠재적 가치를 증명했다.
이처럼 농장에 적용된 AI 기술은 가축 질병 등 축산업계의 고질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국내에서도 인공지능을 이용한 축산업 혁신이 한창이다. 현재 약 15만 두의 돼지를 인공지능으로 관리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축산테크 스타트업 한국축산데이터가 그 중심에 있다.

농장별 맞춤 가축 관리 솔루션 ‘팜스플랜’

한국축산데이터는 가축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 ‘팜스플랜’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여러 축산업 분야에 적용하고 있다. ‘팜스플랜’을 통한 농장관리의 핵심은 크게 ①관리 효율성 증대와 ②농장별 맞춤 관리를 꼽을 수 있다.
먼저 인공지능 기반의 돈사 관리로 사양관리 효율성이 크게 증대된다. 양돈장에는 평균 1000두에 한 명 꼴로 작업자가 배정된다. 그러다 보니 원인 모를 질병에 걸린 돼지가 보이는 증상에 대한 단서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뒤늦게 폐사한 개체를 발견하면, 이미 축사 내 돼지 모두가 같은 질병에 감염돼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AI의 컴퓨터 비전 기술은 ‘작업자의 눈’이 되어 준다. CCTV가 24시간 돼지를 모니터링해 작업자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질병과 관련 지표를 수집한다. 작업자가 일부 개체에 관심을 쏟을 동안, AI가 작업자의 눈 밖에 난 수백 마리의 돼지를 동시에 관찰한다. 덕분에 작업자는 임신사 내에서 이상 증세를 보이는 모돈 한 마리의 상태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도, 동시에 육성사 한 돈방에서 체온이 떨어진 돼지들이 한구석에 모여 있는 현상을 포착할 수 있다. AI는 작업자의 업무 강도를 낮춰주고, 농장주에게는 가축이 이상 증상을 보일 때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농장주에게 돼지의 체중은 출하 성적뿐만 아니라, 돼지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 지표다. 그러나 농장에서 100kg이 넘는 돼지와 씨름하며 많게는 천 두가 넘는 돼지의 체중을 재는 일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지금까지 돼지농장에서는 체중을 보다 쉽게 측정하기 위해 고가의 장비를 설치하는 등 여러 방법을 고안해 왔다.
‘팜스플랜’은 컴퓨터 비전 기술로 돼지를 인식해 고가의 기계가 아닌 CCTV 만으로 돼지 체중을 측정한다. 그저 ‘팜스플랜’ PC 화면에 나타난 체중 측정값을 보는 것만으로 농장주는 돼지의 체중 변화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간단한 체중 측정은 농장주는 물론 돼지의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팜스플랜을 이용한 돼지 개체 추적및 체중 측정
‘팜스플랜’은 인공지능으로 돼지의 활동성을 측정해 건강 지표를 제공한다. 돼지는 아플 때 오랜 시간 누워있거나 여러 돼지들과 뭉쳐 있는 등 말이 아닌 행동으로 자신의 건강 상태를 표현한다. ‘팜스플랜’은 CCTV로 수집한 개별 돼지의 연속적인 행동 정보를 AI로 분석, 개별 돼지의 활동성 정도를 알려줌으로써 적은 인력으로도 전체 축사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딥러닝 기반의 맞춤 가축 관리 솔루션

인공지능을 통한 농장관리의 또 다른 핵심은 딥러닝 기술 기반 농장별 맞춤 관리다. 농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 농장주는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농장에 찾아가 해결 비법을 전수받곤 한다. 하지만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 것처럼 보여도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법은 농장마다 천차만별이다.
이때 농장주나 수의사 등 전문가의 지식을 학습하여 농장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추천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진가를 발휘한다. ‘팜스플랜’은 각 농장의 다양한 데이터를 딥러닝으로 학습해 동일한 문제에 대해서도 농장의 히스토리에 따라 각기 다른 맞춤 솔루션을 제공한다. 가령 두 농장 돼지들의 체중이 똑같이 줄어도 인공지능은 과거 데이터를 통해 각 농장별 상황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해결 방식을 도출한다. 인공지능은 개별 농장의 과거를 알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추천한 솔루션은 다른 농가의 비법보다 더 적합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여기에 특정 질병에 대해 그동안 여러 수의학 전문가가 내린 치료 프로그램을 컴퓨터가 딥러닝으로 학습해 가축의 건강 상태를 분석하고 관련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정량적 데이터뿐 아니라 전문가의 경험지식이라는 정성적 데이터까지 분석 모델이 학습한다는 점에서 한 차원 높은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
추천엔진은 다양한 변수의 데이터를 학습할수록 성능이 높아진다. ‘팜스플랜’은 농장에서 수기로 작성하는 모든 사양관리 데이터를 디지털화함은 물론, CCTV로 녹화하는 농장의 영상정보 데이터와 주기적인 혈액 검사 생체 데이터까지 수집해 가축 관리 솔루션의 정확도를 높인다.
팜스플랜 PC 버전 가축 관리 솔루션 서비스 페이지
인공지능으로 가축을 관리하는 농장은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 효과를 얻고 있다. 팜스플랜이 적용된 농장은 적용 전에 비해 어미돼지 한 마리당 연간 출하마릿수(MSY)가 30% 증가했다. 의약품 등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 모돈 1000두 규모의 농장은 연간 6억~8억원의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농장주의 경험에 의존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정확한 농장별 맞춤 솔루션을 제공하는 가축 디지털 헬스케어의 효과와 필요성이 입증된 결과다.
가축 질병의 장기적인 유행으로 농가는 물론 방역 당국에 피로가 누적된 지금, 축산 인공지능 기술이 가축 질병을 종식시킬 날이 너무 멀게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축산분야 인공지능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필요성을 체감하는 농가 또한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단순히 축산 농가의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도구를 넘어, 안전한 축산 생태계를 조성하는 가축 헬스케어 솔루션으로 대중화될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