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통신연구원 - AI 종합서비스 연구기관으로 거듭난다

이윤근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인공지능연구소장
이윤근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인공지능연구소장
요즘 ‘인공지능(AI)’이라는 말은 더 이상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모르나 미래 산업을 책임질 엄청난 기술이라는 것은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흔히 바둑의 황제 ‘알파고’ 또는 애플의 ‘시리’와 같은 인공지능 비서 등을 떠올리게 된다. 신기하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쉽다. 하지만 정작 알파고를 개발한 영국의 ‘딥마인드’ 사는 2017년부터 3년간 10억달러 이상을 까먹었다. ‘딥 강화학습’이라는 엄청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증명했는데도 말이다. 반면 인공지능 기술을 클라우드서비스에 결합한 아마존의 AWS 서비스는 연간 400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철강 기업인 포스코는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을 용광로에 적용해 일일 용선량을 240톤이나 늘렸다고 한다. 이 두 가지 사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인공지능 기술은 핵심 알고리즘만으로는 가치를 창출하기 어렵다. 인공지능 기술이 컴퓨팅이나 통신, 센서기술 등과 같은 정보통신기술(ICT)을 만나 ‘인공지능 서비스(또는 제품)’가 될 때 비로소 화려한 빛을 발하게 된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경우도 주변 사물을 인지하고 상황을 이해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핵심이지만 이를 도와주는 카메라나 레이더, 라이더와 같은 각종 센서, 인공지능 반도체, 차량과 사물 간 통신(V2X·Vehicle to Everything) 기술 등이 어우러져 가능한 것이다. ETRI는 과거 ICT 전문 정부출연연구기관이었으나 2019년부터 ‘국가 지능화 종합연구기관(National AI Research Institute)’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필자가 몸 담고 있는 ‘인공지능연구소’도 그때 탄생했다. 인공지능연구소에서는 AI 핵심 알고리즘 연구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한 인프라 기술인 AI 반도체 및 컴퓨팅기술, 그리고 자율주행 자동차, 지능로봇, 드론과 같은 모빌리티 분야 AI 응용서비스 기술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국내에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있는 많은 기관들이 있지만, 이처럼 AI 서비스를 위한 전방위 기술을 함께 연구하는 조직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짧은 기간임에도 AI 서비스 지향적인 조직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 수십 년간 쌓아온 ETRI의 ICT 실력이 기반이 되었음은 자명하다.
ETRI가 인공지능 분야에서 일궈낸 성과를 몇 가지 살펴보자. 언어지능을 대표하는 ‘엑소브레인(ExoBrain)’은 심층 질의응답 기술로써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인간에게 전문지식을 제공하는 기술이다. 2016년 장학퀴즈 왕중왕전에서 인간과 대결해 우승한 뒤 현재 국회도서관에 설치돼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돕고 있다.
시각지능의 ‘딥뷰(Deep View)’는 사물을 인식하는 단계를 넘어서 영상의 의미를 이해하는 기술이다. CCTV에 적용돼 서울과 대전, 세종시 등에서 불법 쓰레기 투기를 단속하거나 안전사고를 빠르게 인지해 조치하는 등 다양한 서비스에 적용 가능하다.
음성인식기술은 EBS의 ‘펭톡’이라는 ‘대화형 외국어 교육 서비스’에 올해 3월부터 적용돼 우리나라 초등학교 6000여 곳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학생 간 1:1로 영어대화 연습이 가능하다. 인공지능 영어 원어민 선생님이 투입된 것이다. AI펭톡은 ETRI가 1990년대부터 개발해 온 음성인식과 자연어 대화처리 기술의 집약체라 할 수 있다. 공교육에 대규모로 AI를 활용한 외국어 교육을 도입한 사례는 세계에서 처음이다.

이처럼 인공지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컴퓨팅 기술도 아주 중요하다. ETRI에서 개발한 AI 반도체 알데바란(AB9)은 초당 40조 개의 부동소수점연산이 가능한 고성능 반도체이면서 전력효율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500원 동전 크기 칩이 형광등을 하나 켜는 수준의 전기로 매우 똑똑한 계산이 가능한 셈이다. 이 칩은 AI서버 시스템, 자율주행차나 드론 등에 적용 가능하며 현재 관련 기업들과 협력해 개발을 진행 중이다.
인공지능 응용서비스로써 주력하고 있는 모빌리티 분야의 연구도 빼놓을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인공지능 핵심기술과 인프라 기술을 융합하여 자율주행(4단계) 차량용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이미 자체 개발한 AB9 반도체에 자율주행용 AI SW를 탑재해 제한된 구간의 자율주행 테스트를 마쳤다. 2021년에는 ETRI 내부 순환 셔틀 ‘오토비(AutoBe)’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젠 ETRI를 방문하게 되면 운전자가 없는 자율주행차를 타고 원하는 연구동으로 이동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ETRI가 지향하는 연구의 방향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ETRI는 이미 ‘기술발전지도 2035’라는 로드맵을 만들어 2035년에 우리가 맞이하게 될 미래사회의 신개념 형상을 그려냈다. 새롭게 설정된 ETRI의 역할과 책임(R&R)에 도전성을 더해 15년 후 미래상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국가 지능화를 실현하기 위한 기술발전지도를 만들었다.
인공지능(AI)은 국가 지능화에 앞서 중요한 길라잡이가 되어 경제·사회 발전의 새로운 기제(機制)가 될 것이다. 이는 ‘개인의 지능화’, ‘사회의 지능화’, ‘산업의 지능화’, ‘공공의 지능화’ 등 사회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개인의 지능화를 통해 누구나 쉽게 지능정보를 활용하며 창의적이고 가치 있는 일을 추구할 기회가 마련될 것이다. 또 사회의 지능화를 통해 노인, 장애인, 사회적 소외계층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사회적 지원이 강화될 것이다. 산업의 지능화는 생산효율을 향상시킴으로써 지속 발전을 가능하게 하며 산업경쟁력을 강화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공공의 지능화를 통해 국가 차원은 물론 인류의 행복을 저해하는 미래의 문제나 걱정거리가 해결될 것이다.
앞서 강조했듯 인공지능이 만들어낼 미래의 서비스 형상을 먼저 정의하고 이를 실현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ETRI의 인공지능 R&D 전략이다. 이는 ICT 강국인 대한민국의 저력을 기반으로 인공지능 기술이 꽃을 피우는 형상이며, 이 중심에서 ETRI의 연구자들은 열심히 달려 나갈 채비가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