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한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타당성 차고 넘친다"

이배용 등재 추진단장, 전국 공방 답사하며 장인들 염원 청취
"우리나라 전통한지를 빠른 시일 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올려놓겠습니다. "
'전통한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추진단 이배용 단장은 "등재 가치는 차고 넘치며, 내용도 이미 다 돼 있다고 할 수 있다"며 이같이 포부를 밝혔다.

이 단장은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추진단 발대식에 앞서 인터뷰를 하고 "한국의 서원 9곳, 한국의 산사 7곳을 유네스코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데 기여했었다"며 "당시 경험을 이번에도 쏟아붓겠다"고 말했다.

문화계에서는 국가브랜드 위원장 시절 이 단장의 구상으로 서원과 산사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이뤄졌음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특히 전국 5개 도에 흩어진 서원 9곳을 9년의 세월을 거쳐 등재시킨 데는 이 단장의 화합으로 이끄는 '어머니 리더십'이 크게 역할을 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유네스코는 그동안 한국의 농악, 종묘제례악, 판소리, 줄타기, 김장 문화, 아리랑 등 21개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현재 하회탈 등 탈을 신청한 상태고, 전통한지는 그 뒤를 이을 예정이다. 이 단장은 "전통한지가 그 가치와 우리 문화의 얼을 전하는 기본 매체라는 중요성이 아주 큼에도 아직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지 않은 것은 늦은 감이 있다"며 "이제는 추진단이 중심이 돼 자료 수집과 보고서 작성, 각종 행정 절차 등을 차근차근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진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으로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회의가 언제 열릴지는 모르지만 늦어도 2024년 등재를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이 단장은 이화여대 총장, 사립대 총장협의회 회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한국여성사학회·한국사상사학회·조선시대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다음은 이 단장과의 일문일답.
-- 전통한지가 등재돼야만 하는 이유는.
▲ 우리 민족은 일찍이 한반도 고유의 풍토성, 자연성을 더해 '닥나무' 재료를 발굴하고 이를 활용해 고려 시대에는 '백추지'라 부르는 당대 최고 품질의 종이를 만들었고, 이 초지 기술은 조선 시대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16건 중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13건은 전통한지를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한지는 질기고 견고하다.

지속성이 있기에 계승 발전할 수 있었다.

종이 자체의 예술성도 있다.

비단보다 더 예술적이라는 말이 있다.

제조기술의 과학성도 들 수 있다.

특히 종이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인간의 진정성이 한지 제조기술에는 담겨 있다.

-- 전통한지는 일상 생활용품으로 사용됐다.

▲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친숙한 일상 재료였다.

도자기와 같이 깨질까 고이고이 간직한 귀한 물품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소중한 기록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현재에 이르렀다.

이제는 종이가 가지는 기록 문명의 발달 소재로서의 유네스코 등재 당위성을 부각해야 한다.

-- 전주 한지가 이탈리아에서 공식 복원 용지로 인증받았다.

▲ 이탈리아 국립기록유산 보존복원 중앙연구소는 전주 한지의 인증 시험을 거쳐 보존·복원 용지로서 합격 판정을 내렸다.

이는 2016년과 2018년 경남 의령 공방이 만든 한지에 이어 세 번째다.

문화재 복원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이탈리아의 인증을 받으면 사실상 세계적으로 그 품질의 우수성을 공인받은 것이다.

최근 문경한지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 최근 전통한지 공방을 현장답사 했는데.
▲ 공방 장인들의 현장 목소리를 청취했다.

사흘 동안 가평에서 원주, 안동, 양산, 전주까지 강행군하며 여러 곳을 다녔다.

이미 문경을 두 차례 답사한 적이 있고 앞으로 의령도 방문할 예정이다.

곳곳마다 공방의 현실은 낙후돼 있었다.

전통을 계승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자랑스럽게 작업하는 장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유네스코 등재를 염원하고 있었다.

또 지자체장들도 면담했다.

다소 차이는 있었지만, 장인들에게 체계적인 지원을 하고자 하는 정책적 의지를 확인했다.

-- 중국 선지, 일본 화지는 이미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 우월성을 내세우기보다는 한지가 어떻게 다른지 차별성과 특별성을 강조할 것이다.

한지는 자연하고 더 가깝다.

종이의 질감이 부드럽고 섬세하다.

닥나무를 키우는 토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의 순리를 종이 만드는 기법에 적용했다.

외발뜨기 기법 등 한지의 정체성, 문화적 다양성과 창조성 등을 어필할 생각이다.

-- 전통한지가 인류 무형유산에 등재되면 어떤 효과가 있나.

▲ 일단 등재가 안 되면 전통한지를 만들고 가업을 계승해온 장인들의 활로가 막혀 기가 꺾일 수 있다.

이들을 살리는 길이다.

그만큼 절박하다.

향후 종이접기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도 있을 것이다.

-- 등재 추진에 어려운 점은 무엇이 있나.

▲ 각 지역에 걸쳐 있기 때문에 한 지자체에서 할 수가 없고, 한 행정기관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뜻이 있는 분들이 만나 10여 차례 회의를 열고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명망가와 전문가를 규합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등이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나라의 전통한지 공방이 있는 가평, 원주, 문경, 안동, 의령, 전주 등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등재 의지도 아주 높다.

한지 장인들의 희망도 열렬하다.

그러나 등재 추진단의 체계적인 조직 구성 과정이 최근이다 보니 현재 관심 있는 몇몇 개인이 기부한 운영자금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노영혜 종이문화재단·종이접기연합 이사장이 많은 역할을 했다.

지자체와 정부의 예산 지원이 절실한 이유다.

-- 정부는 어떤 지원을 해야 하나.

▲ 각 지자체의 예산 지원,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 외교부 등 정부 기관이 행정적, 재정적인 면에서 유기적으로 도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지원보다 전통한지의 유네스코 등재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단순히 우리 생활 속에서 바람같이 스쳐 지나가는 물질이 아닌 한지의 섬유 가닥 하나하나에 우리 민족의 주인의식, 전문가적인 지식, 자긍심을 일깨우고 국격을 높이는 가치로 인식해줘야 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