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아침 시편] 진짜 성공이란 바로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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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란
랠프 월도 에머슨
날마다 많이 웃게나.
지혜로운 사람에게 존경받고
해맑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들에게 인정받고
거짓된 친구들의 배반을 견뎌내는 것,
아름다움의 진가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알아보는 것,
튼튼한 아이를 낳거나
한 뼘의 정원을 가꾸거나
사회 환경을 개선하거나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
자네가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라네.
랠프 월도 에머슨 : 미국 시인(1803~1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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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추기경의 선종(善終)을 보면서 ‘옴니버스 옴니아(Omnibus Omnia·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준다)’의 뜻을 다시 새겨봅니다. 정 추기경은 생의 마지막에 장기까지 기증하며 모든 것을 주고 갔습니다.그를 생각하며 또 한 사람의 신부를 떠올립니다. 그는 실화영화 ‘나초 리브레’의 주인공 신부입니다. 1998년 5월 멕시코시티. 프로 레슬링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이 한 레슬러의 은퇴식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늘 황금색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경기를 해온 그는 이제 53세의 중년이 되었지요.
그가 링에 오르자 박수와 환호가 동시에 터졌습니다. 박수가 잦아들 즈음 그는 황금가면을 천천히 벗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보는 광경에 사람들은 숨을 죽였지요. 마침내 황금가면을 벗은 그가 말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작은 가톨릭교회의 신부 세르지오 구티에레스입니다. 프로 레슬링을 하는 동안 저는 고아원 아이들을 경제적으로 도울 수 있었고,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한동안 정적이 흐른 뒤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그는 23년 동안 ‘신부’라는 신분을 감춘 채 프로 레슬링 경기 수익금으로 3000여 명의 고아를 돌봤던 것입니다.
그는 랠프 월도 에머슨의 시에 나오는 것처럼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온몸으로 보여줬습니다. 시의 마지막 부분 ‘자네가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의 의미까지 오롯이 일깨워주었지요.
여기에서 ‘단 한 사람’은 ‘수많은 개인’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각각 ‘하나’이면서 또 ‘모두’이지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달라지고 또 ‘내’가 새로워지니까요. 이 시를 읽고 나서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 묘지에 있는 한 주교의 묘비명을 음미하면 인생의 의미가 더욱 새롭게 다가옵니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 상상력의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깨닫는다. 만일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다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우리 인생의 마지막 성적표는 어떤 모습일까요. 아마도 죽음 직전에 이르렀을 때의 표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지나간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겠지요. 좋은 기억이 많은 사람은 행복한 표정을 짓게 되고, 나쁜 기억이 많은 사람은 불행한 표정을 짓게 될 겁니다. 결국 죽을 때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게 성공한 삶이겠지요.
언젠가 이어령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린 모두 태어날 때 울잖아요. 곁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좋아하고 축하합니다. 이와 반대로 세상을 떠날 때 자신은 편안하게 웃고 남들은 모두 보내기 싫어하며 슬피 우는 인생, 이것이 바로 성공적인 인생이지요.”
참으로 간명한 비유여서 무릎을 쳤습니다. 『티베트 사자의 서』에도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울었고, 내 주변 사람은 모두 웃고 즐거워했다. 내가 내 몸을 떠날 때 나는 웃었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은 울며 괴로워했다.’
오늘은 ‘헌신의 기쁨’에 관한 명언 한 꼭지를 덧붙입니다.“다른 사람에게 당신이 갖고 있던 물건을 기꺼이 내주어라. 그리고 그것으로 성공하기 바란다고 말해 주자. 다른 사람에게 행복과 건강을 빌어 주자. 특히 당신보다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그렇게 하자. 거지에게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회사의 사장이나 수억의 재산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더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 베르너 티키 퀴스텐마허, 로타르 J. 자이베르트의 『단순하게 살아라』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랠프 월도 에머슨
날마다 많이 웃게나.
지혜로운 사람에게 존경받고
해맑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들에게 인정받고
거짓된 친구들의 배반을 견뎌내는 것,
아름다움의 진가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알아보는 것,
튼튼한 아이를 낳거나
한 뼘의 정원을 가꾸거나
사회 환경을 개선하거나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
자네가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라네.
랠프 월도 에머슨 : 미국 시인(1803~1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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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추기경의 선종(善終)을 보면서 ‘옴니버스 옴니아(Omnibus Omnia·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준다)’의 뜻을 다시 새겨봅니다. 정 추기경은 생의 마지막에 장기까지 기증하며 모든 것을 주고 갔습니다.그를 생각하며 또 한 사람의 신부를 떠올립니다. 그는 실화영화 ‘나초 리브레’의 주인공 신부입니다. 1998년 5월 멕시코시티. 프로 레슬링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이 한 레슬러의 은퇴식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늘 황금색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경기를 해온 그는 이제 53세의 중년이 되었지요.
그가 링에 오르자 박수와 환호가 동시에 터졌습니다. 박수가 잦아들 즈음 그는 황금가면을 천천히 벗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보는 광경에 사람들은 숨을 죽였지요. 마침내 황금가면을 벗은 그가 말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작은 가톨릭교회의 신부 세르지오 구티에레스입니다. 프로 레슬링을 하는 동안 저는 고아원 아이들을 경제적으로 도울 수 있었고,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한동안 정적이 흐른 뒤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그는 23년 동안 ‘신부’라는 신분을 감춘 채 프로 레슬링 경기 수익금으로 3000여 명의 고아를 돌봤던 것입니다.
그는 랠프 월도 에머슨의 시에 나오는 것처럼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온몸으로 보여줬습니다. 시의 마지막 부분 ‘자네가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의 의미까지 오롯이 일깨워주었지요.
여기에서 ‘단 한 사람’은 ‘수많은 개인’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각각 ‘하나’이면서 또 ‘모두’이지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달라지고 또 ‘내’가 새로워지니까요. 이 시를 읽고 나서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 묘지에 있는 한 주교의 묘비명을 음미하면 인생의 의미가 더욱 새롭게 다가옵니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 상상력의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깨닫는다. 만일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다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우리 인생의 마지막 성적표는 어떤 모습일까요. 아마도 죽음 직전에 이르렀을 때의 표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지나간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겠지요. 좋은 기억이 많은 사람은 행복한 표정을 짓게 되고, 나쁜 기억이 많은 사람은 불행한 표정을 짓게 될 겁니다. 결국 죽을 때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게 성공한 삶이겠지요.
언젠가 이어령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린 모두 태어날 때 울잖아요. 곁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좋아하고 축하합니다. 이와 반대로 세상을 떠날 때 자신은 편안하게 웃고 남들은 모두 보내기 싫어하며 슬피 우는 인생, 이것이 바로 성공적인 인생이지요.”
참으로 간명한 비유여서 무릎을 쳤습니다. 『티베트 사자의 서』에도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울었고, 내 주변 사람은 모두 웃고 즐거워했다. 내가 내 몸을 떠날 때 나는 웃었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은 울며 괴로워했다.’
오늘은 ‘헌신의 기쁨’에 관한 명언 한 꼭지를 덧붙입니다.“다른 사람에게 당신이 갖고 있던 물건을 기꺼이 내주어라. 그리고 그것으로 성공하기 바란다고 말해 주자. 다른 사람에게 행복과 건강을 빌어 주자. 특히 당신보다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그렇게 하자. 거지에게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회사의 사장이나 수억의 재산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더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 베르너 티키 퀴스텐마허, 로타르 J. 자이베르트의 『단순하게 살아라』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