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사람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환경을 먼저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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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의 전염누군가가 앞으로 담배를 피우게 될 확률을 가장 정확히 보여주는 지표는 무엇일까? 나이, 성별, 학력, 직업, 소득 수준, 결혼 여부, 자녀 유무 등 여러 가지 조건이 제각각 영향을 미치지만 이 모든 조건을 압도하는 지표가 하나 있다. 담배를 피우는 친한 친구들의 숫자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짧은 속담은 흡연뿐 아니라 음주, 비만, 운동 여부, 기부, 결혼 여부 등 일상의 모든 영역에 걸쳐 그 어떤 심리학·행동과학 이론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로버트 H 프랭크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424쪽│2만1000원
주변 상황, 어떤 이론보다 영향 커
행동 바꾸고 싶다면 강압적 규제 대신
사회 분위기 바꾸는 것이 더욱 효과적
소련 붕괴 등 사례로 '행동 전염' 소개
《행동의 전염》은 “사회적 환경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개인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익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환기하면서 이를 활용해 변화의 씨앗을 심는 방법에 대해 논증하는 책이다. 저자는 미국의 대표적 행동경제학자인 로버트 H 프랭크 코넬대 경제학과 석좌교수다.최근 20여 년 사이 세 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등 행동경제학이 점차 경제학의 주요 흐름 중 하나로 자리 잡아감에 따라 ‘넛지(Nudge·옆구리를 쿡 찌르는 행동)’로 대표되는 행동경제학의 개념은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해졌다.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고 싶다면 강압적인 규제 대신 부드럽게 유도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게 넛지 이론의 핵심이다.
로버트 프랭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흡연, 음주, 비만, 과속 등 문제 되는 행동이 촌스러운 행위로 여겨지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행동들의 문제점과 해악을 논리적으로 입증해 설파하는 것보다 이 행동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매력적이지 못한 행동으로 취급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더 효과적인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그가 “유행은 스스로 전혀 민감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을 인용한 이유다.그는 전작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를 통해 사회적으로 큰 성취를 거둔 인물들의 성공 뒤에는 사회가 오랜 시간 공들여 조성한 인프라와 교육환경이라는 ‘행운’이 있었다고 말했다. 개개인의 행동과 성취 이면에 담긴 사회적 영향력, 거대한 역사적 순간을 탄생시킨 개인들의 소소한 움직임, 이 같은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상호 역학관계야말로 그가 수십 년간 연구해온 주제였다.
책에는 누구도 쉽사리 바뀔 거라 기대하지 않았던 기존 제도와 관행, 관념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린 사례가 연달아 등장한다. 소비에트연방이 불과 1년 만에 뿔뿔이 공중분해된 세계사적 사건부터 미국 성인 인구 중 흡연자 비중이 불과 몇십 년 만에 60% 넘게 줄어든 보건 분야 현상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사례가 이어진다.
이 같은 변화를 추동한 원동력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행동 전염’이다. 세금과 금연 규제보다 미국인들이 담배를 끊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친 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연구 결과 한 명의 흡연자가 금연에 성공하면, 그의 동료 집단에 속한 또 다른 흡연자도 담배를 끊거나 흡연량을 줄이는 도미노 현상이 확연히 드러났다. 이런 방식으로 금연이 점차 사회의 주된 흐름으로 자리 잡아가고, 흡연은 구닥다리 습관으로 여겨지면서 흡연 인구가 급속히 줄어들었다는 설명이다. 로버트 프랭크는 “자신의 선택을 바꾸게 되는 가장 강력한 동기는 우리와 비슷한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느냐이다”라고 강조한다.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변화를 이뤄내고 싶은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는 조언도 제공한다. 기후 변화와 같은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에 대응할 때도 먼저 개인의 행동양식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파리 기후변화협약처럼 195개나 되는 국가가 참가하는 매머드급 국제기구를 창설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자기 집 지붕 위에 더 많은 태양 전지판을 설치하도록 유도하는 게 기후 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보다 많은 참여를 유도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동네 곳곳에 설치된 태양 전지판의 수가 늘어날수록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나도 무언가를 실천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수도 함께 늘어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는 “우리는 그동안 개인들의 소소한 활동이 거대한 사회 변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과소평가해 왔다”며 “다른 이의 행동을 모방하려는 사람들의 심리 덕분에 한 개인의 행동 변화는 주변 여러 사람에 걸쳐 상당 배수의 파급 효과를 낳게 된다”고 강조했다.
홍선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