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테이퍼링 언제?" 질문에 문을 '쾅' 닫은 파월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은 아직 논의할 때가 아니다."(It's not the time yet to have conversation about tapering.)

28일(현지시간) 오후 2시36분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이제 테이퍼링을 얘기할 때가 아닌가'라는 첫 번째 질문에 이렇게 간단히 답했습니다. 숨죽였던 뉴욕 금융시장은 급하게 움직였습니다. 채권시장에선 연 1.64% 수준이던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순간 1.61%까지 급락했고, 뉴욕 증시에서는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가 반등하고 경기민감주가 많은 다우 지수의 하락세가 커졌습니다. 금리 하락에 달러 가치도 내렸습니다. ICE달러인덱스는 90.8에서 90.5까지 뚝 떨어졌습니다.
혹시라도 Fed가 조기 테이퍼링에 대한 힌트를 줄 지 촉각을 곤두세우던 시장에 "그럴 때가 아니다"라고 딱 잘라 밝힌 겁니다. 판테온이코노믹스의 이안 셰퍼드슨 경제학자는 "왜 Fed를 의심하는가. 그들은 (경제살리기에) 올인했고 파월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또 웰스파고의 마이클 슈마허 채권전략가는 CNBC 인터뷰에서 "파월은 확실히 곧 테이퍼링을 할 것이란 의심을 없앴다. 그는 그 문을 '쾅'하고 닫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날 오후 2시에 나온 4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와 통화정책 성명서는 예상과 일치했습니다. 기준금리(0.0~0.25%)와 채권매입 프로그램(월 1200억 달러) 변화를 주지 않았고 여기에 모든 FOMC 위원이 동의했습니다. 성명서에는 "백신 접종의 진전 속에 경제 활동과 고용이 '강화'했다"고 경제 전망에 대한 평가를 살짝 높였습니다. 지난달 성명에서 "경제 활동과 고용 지표가 최근 상승했다"고 표현한 것보다 개선된 겁니다. 다만 "경제 전망의 위험이 남아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것도 전달의 "공중 보건의 위기가 상당한 위험을 제기한다"는 문구보다는 나아진 겁니다. 물가 상승률도 올랐지만 이것은 주로 '일시적인 요인'을 반영한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캐피탈이코노믹스의 폴 애쉬워스 이코노미스트는 "Fed가 금리 인상은 말할 것도 없고 자산매입 속도를 늦출 것이란 암시도 주지 않았다"고 정리했습니다.
곧 이어 오후 2시30분 시작된 파월 의장의 한 시간에 걸친 기자회견의 백미는 첫 번째 질문과 마지막 질문 두 개였습니다. 마지막 질문은 "테이퍼링을 논의할 때가 아니라고 했는데 왜 그런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파월 의장은 "'상당한 추가 진전'(Substantial Further Progress)을 이루는 데 아직 가깝지 않기 때문(not close to)"이라며 "경제는 우리의 목표와는 거리가 멀고 '상당한 추가 진전'을 이루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3월 한 번의 멋진 고용보고서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 거시경제 지표가 충족이 되어야 테이퍼링도 하고 금리도 올릴 수 있다"고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 외에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발언이 있었습니다.

△경제 회복은 완전하지 않다

"회복이 진전되고 있고 예상보다 빠르지만 여전히 고르지 않고 완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팬데믹이 남긴 노동시장과 자영업자들의 흉터를 우려하고 있다. 우리는 완전고용에서 멀리 떨어져있다." (파월 의장은 팬데믹 이후 노동시장을 이탈한 300만 명과 흑인 실업자들을 언급했습니다. 또 '여러 번 언급해온 워싱턴DC Fed 주변의 노숙자들을 만났나'는 질문에 "더 이상 뉴스 기사가 되지 않을 때 방문하겠다"고 말했습니다. )

△인플레이션은 일시적

"인플레이션은 2%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저효과와 공급망 병목 현상 때문이다. 많은 부분 일시적일 것이다. 물가 압력이 앞으로 몇 달 안에 상승 할 수 있다지만 이러한 일회성 물가 상승은 인플레이션에 일시적 영향만 미칠 가능성이 있다. ""솔직히 노동시장에 여전히 있는 상당한 느슨한 부분(slack)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인플레가 지속적으로 상승해 실제로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높이는 걸 볼 수 없을 것 같다."

('인플레이션에 넘어서는 안될 선(red line)이 있는가?' ) "그런 식으로는 일하지 않는다."
△집값 상승 우려는 아직

"집값은 강력한 수요, 그리고 충분하지 않은 공급량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상승하는 집값을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배드론 등 (서브프라임 사태와 같은) 주택시장과 관련된 금융불안 우려는 보지 못하고 있다."

△중앙은행의 암호화폐

"사람들에게 좋은 것이 될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빨리 하는 것보다 올바르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날 다우 지수는 0.48%, S&P 0.08% 떨어졌고 나스닥 지수는 0.28% 내렸습니다. 나스닥 지수는 파월 의장의 "테이퍼링을 아직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한 직후 플러스권으로 돌아섰지만, 결국 하락세로 마감됐습니다. 오후 3시10분께 파월 의장이 "일부에 자산 가격이 높다. 자본 시장에서 약간 거품이 있는 것들을 보고 있다"고 말한 직후 마이너스권으로 다시 떨어진 이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Fed 의장이 '거품'을 인정한다면 시중에 풀린 돈을 거둘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많이 오른 기술주들이 장 후반 약세를 보였습니다. 파월은 버블에 대해 "통화정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백신 보급 및 경제 재개와도 엄청난 관계가 있다"고 해명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반영하는 3개월 유로달러 선물시장에선 인상 시점을 아주 조금 늦췄지만 큰 변화는 아니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Fed가 몇 달은 더 버티면서 테이퍼링을 최대한 늦출 것 같다"며 "파월 의장의 멘트를 보면 금요일 나오는 3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예상보다 급격히 높아지진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FOMC 외에는 뉴욕 증시는 전반적으로 차분했습니다. 장 마감 이후 애플과 페이스북, 퀄컴 등 굵직굵직한 기업들의 1분기 실적 발표가 대기하고 있었고, 밤 9시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인프라딜 및 증세안 발표가 예정되어 있는 등 빅 이벤트가 줄줄이 예고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의 실적은 정말 놀랍습니다. 좀 전 발표된 애플의 주당 순이익(EPS)은 1.40달러로 예상치 99센트를 크게 웃돌았습니다. 매출은 479억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54% 급등했고 이익은 두 배가 넘는 236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아이폰뿐 아니라 서비스 등 모든 분야의 매출이 뛰어올랐기 때문입니다. 페이스북의 매출도 48% 치솟았으며 EPS는 3.30달러로 예상치 2.37달러를 크게 웃돌았습니다. 퀄컴은 1분기 주당 1.90달러로 예상치 1.67달러보다 좋았습니다. 포드마저 EPS가 0.89달러로 예상치 0.21달러를 몇 배나 웃돌았습니다.
시장정보업체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이날 아침 월가 애널리스트들이 전망한 S&P 500 기업의 1분기 이익 증가율(전년동기 대비)은 39.2%에 달합니다. 전날 35%였는데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등의 실적 발표를 본 뒤 계속 높이고 있는 겁니다. 이 수치는 지난 1일엔 24.2%였습니다. 월가에선 거대 기술주들의 엄청난 '어닝 서프라이즈'가 이어지고 있는 데 대해, 경제가 재개된다해도 이들 주가의 강세가 이어질 것이란 주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애플(아이폰 판매), 구글(광고), 페이스북(광고) 등은 경기가 나아지면 실적이 추가 개선될 수 있는 기업이라는 겁니다.

밤 9시 발표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1조80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딜 내용은 이미 대부분 내용이 알려졌습니다. 증세안도 비슷합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소득세 최고 세율을 39.6%로 인상하고, 100만 달러 이상을 버는 가구의 경우 자본이득세도 39.6%로 높일 계획입니다.다만 이 계획이 실행될 수 있을 지에 대해선 여전히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이날 민주당의 중도파인 조 맨친 의원은 CNN 기자와 만나 바이든의 인프라딜에 대해 "상당히 불편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어떻게 그걸 되갚을 수 있을지 알고 싶다"고 한 겁니다. 만약 맨친 의원이 반대한다면 민주당 50석, 공화당 50석으로 구성되어 있는 상원에서의 통과 가능성에 대해 의문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김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