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CFO Insight] PEF썰전-슬기로운 PE사용 설명서

김수민 (UCK파트너스, 대표이사)
smk@uckpartners.com
온라인 쇼핑몰에서 최저가라는 말에 현혹되어서 주문했는데 알고 봤더니 가격에 배송비가 포함이 안되어 있어서 결국 비싼 가격에 구매를 하게 됐다거나, 해외 직구가 저렴한 것 같아서 주문했는데 가격에 부가세 관세 등 세금이 불포함이라서 막상 받아보고 나서 낭패를 본 기억들이 있으실 겁니다.

어렵게 직구를 했는데 사이즈가 안 맞아서 반품을 하게 되면 반품 배송비를 별도로 내야 하기도 하고 관세 환급 절차를 몰라서 반품한 물건에 대한 관세까지 내게 되면 금전적 피해는 물론이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런 실수를 몇 번 하면서 나름의 노하우가 생겨서 결국은 똑똑한 소비자가 되는 거겠죠. 하물며 해외 직구 싸이트에 옷을 주문하는 것도 노하우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데, PE에 회사를 매각하거나 큰 투자를 유치할 때는 PE에 대해서 알고 모르는 것에 따라 얼마나 큰 차이가 날까요? 더구나 회사 매각은 명품 쇼핑과 달라서 여러 번 실수를 거듭 하면서 노하우를 쌓을 수도 없는 일이고 쉽게 반품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요. 오늘은 지분 매각이나 투자 유치를 고민하고 계시는 분들께 <슬기로운 PE 사용 설명서>를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왜 투자를 받고 싶은가?

내가 (또는 우리 회사가) 지분을 매각하거나 투자를 받고 싶은 이유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돈이 필요한건지 아니면 돈 플러스 알파가 필요한 건지, 돈이 필요하다면 내가 돈이 필요한건지 회사에 돈이 필요한 건지, 아니면 위에 얘기한 것이 전부 다 복합적인지 그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지분을 전부 매각하고 싶은지 일부만 매각하고 어느 정도 남기고 싶은지도 고민해야 하고 지분 매각 이후에 회사와 직원들이 어떻게 되기를 원하는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돈 말고는 달리 원하는 것이 없다고 하면 고민이 한결 수월해집니다.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쪽을 택하면 되겠죠. 그러나 그렇게 간단한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만일 딜 성사를 통해서 돈 플러스 알파를 원한다면 그 알파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더구나 기존 주주가 지분 매각이후에 계속 회사의 주요 주주로 남는 경우에는 당장 누가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느냐 보다는 투자 이후에 누가 더 회사를 발전시키고 가치를 성장시킬 수 있는 파트너인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펀드에 투자할 돈이 있는가?

PE펀드에 어떻게 돈이 없을 수 있냐구요? 실제로 그런 경우가 꽤 많습니다. PE펀드에는 “블라인드 펀드”와 “프로젝트 펀드” 두 가지가 있습니다. 블라인드 펀드는 투자 대상이 정해지기 이전에 이미 자금 모집이 완료되어 있는 펀드인 반면에 프로젝트 펀드는 투자 대상과 투자 조건이 정해지고 나서야 자금 모집을 시작하는 펀드입니다.전자는 출자자들이 운용사의 역량을 믿고 자금 집행 결정을 운용사의 투자심의위원회(이하 “투심위”)에 일임하는 형태이고 후자는 운용사에 대한 신뢰 보다는 특정 투자건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건별로 직접 심사해서 자금 집행 여부가 결정됩니다. 전자가 “선 펀딩, 후 딜소싱”이라면 후자는 “선 딜소싱, 후 펀딩” 방식입니다.

지분 매각이나 투자 유치를 PE사와 논의하고 있는 오너나 CFO분들은 그 회사가 투자 여력이 충분한 블라인드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지 아니면 블라인드 펀드가 없고 프로젝트 펀딩으로만 자금을 마련하려는 계획인지를 체크해야 합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밸류에이션과 투자조건에 대해서 협상을 마쳤는데 아직 펀딩이 안 되어있다는 말을 듣고 당황하고 난처한 상황에 처하는 오너나 CFO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투자자들의 요청이라며 애초에 합의한 조건 변경을 요구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기 이전에 운용사가 집행할 수 있는 자금력과 펀딩 계획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내가 의사결정자와 대화하고 있는가?

내가 자금을 집행하는 권한을 가진 의사결정자를 상대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자금의 소스가 프로젝트 펀딩인 경우는 지금 내가 상대하는 사람이 투자의사결정자가 아니라 의사결정자에게 딜을 소개하고 딜이 성사될 경우 인센티브를 받는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 사실 자체가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프로젝트 펀딩은 말과는 달리 실제 성사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리스크는 꼭 인지하고 감안해야 합니다. 또한 설사 블라인드 펀드의 경우라고 하더라도 상대하는 사람이 투자의사결정자인지 아닌지 살펴봐야 합니다. 운용사의 투심위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투심위원들이 우리 회사를 제대로 잘 알고 이해하고 있는지가 딜의 성사 가능성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PEF 투자를 받을 때 생각해봐야 할 내용들. /사진=게티이미지.
최종 투자 조건을 제대로 설명 들었고 이해하고 있는가?

최저 금리를 제시하는 은행을 선택해서 대출을 진행했는데 막상 최종적으로 실행된 대출 조건을 보니 최저 금리는 커녕 상당히 불리한 조건으로 대출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금리 조건에 급여이체, 신용카드 사용, 연금보험 가입, 평잔 유지 등 숨겨진 조항들이 많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겠죠. 게다가 중도상환이 가능한지 중도상환 수수료가 얼마인지, 원리금 균등인지 원금 균등 상환인지까지 따지고 들어가면 처음에 현혹됐던 최저 금리 조건이 거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PE의 투자를 받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밸류에이션을 최고로 높게 쳐 주겠다는 말이 대출받을 때 금리를 최저로 주겠다는 것과 비슷한 얘기가 되겠죠. 대출받을 때 약관을 따져봐야 하는 것처럼 밸류에이션 외에 어떤 조건들이 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정해진 기간내에 조건들이 충족되면 반드시 상장을 해야 하고 상장이 안될 경우 투자자에게 확정 수익을 보장해야 하는 조건이 숨어 있을 수도 있고, 주주나 회사에 특정한 이벤트가 생기면 주식 인수 가격을 매우 낮게 조정하거나 지분율을 크게 늘릴 수 있는 투자 조건 재조정(refixing) 조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설마 그런 일이 생기겠냐 라는 생각과 회사의 실적이 계속 좋을 것이라는 지나친 자신감에서 쉽게 투자를 받았다가 나중에 큰 낭패를 보게 됩니다. PE투자 이후에 주주들간의 분쟁이 심화되고 법적 소송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흥미롭게도 소수지분 투자의 경우가 경영권 지분에 투자하는 바이아웃 투자에 비해서 분쟁 빈도가 훨씬 높습니다.

바이아웃 투자는 50% 이상의 지분을 인수하는 대신 특별한 조건이 없는 보통주 투자 위주로 진행되는 반면, 소수지분 투자는 받는 입장에서는 매각하는 지분율이 낮아서 언뜻 안심이 될 수 있으나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와 조건을 걸고 투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중에 의견 충돌이 생겼을 때 계약 조건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고 결국 대립하거나 분쟁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어떤 성격의 투자자인가?

PE가 우리 회사에 왜 투자를 하고 싶어 하고 투자 이후에 어떻게 수익을 내려고 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금의 소스를 알게 되면 투자자의 성격도 자연스럽게 파악이 됩니다. 투자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기 마련입니다.

회사의 스토리에 감동해서 조건 없이 회사에 투자하고 싶다는 말은 믿기 어려운 말이겠죠. 상대적으로 소액을 여러 회사에 조금씩 분산해서 투자하는 벤처 투자라면 그럴 수도 있으나 상당한 규모의 자금을 몇 개의 회사에 집중해서 투자하는 PE투자의 경우는 투자 목적이 분명하고 엑싯 계획이 명확한 것이 정상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뭔가 찜찜해야 합니다.

육상에서 장거리 선수가 단거리까지 잘하기 힘들고 그 반대도 매우 어려운 것처럼 PE운용사도 여러 종목에서 전부 뛰어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바이아웃, 그로쓰캐피탈, 벤처 투자는 운동으로 치면 각각 다른 근육을 써야 하는 종목에 가깝고 그래서 전문 운용사들이 그 분야를 더 잘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투자를 이전에 많이 해본 경력과 경험이 있는 회사이고 팀인지를 잘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PE투자는 상장주식 투자나 스타트업 벤처 투자와는 달리 철저하게 팀스포츠이기 때문에 조직력과 팀워크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뛰어난 개인 한사람의 능력과 노력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종목이고 열정과 의지만으로는 잘하기가 정말 힘든 것이 PE투자입니다. PE운용사의 팀워크와 조직력을 살펴봐야 합니다.

Too Good To Be True = Not Good or Not True

영어 표현에 “too good to be true” 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믿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좋은”이란 뜻으로 쓰입니다. 그러나 비즈니스 세계, 특히 투자의 세계에서는 too good to be true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누가 그런 제안을 한다면 그 제안은 알고 보면 좋은 제안이 아니거나 또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거짓 제안 둘 중 하나일 겁니다.

모든 조건을 다 만족시키는 PE 파트너는 찾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가격은 최저가임에도 품질은 제일 좋고 게다가 서비스도 최고인 상품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상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제일 비싼 가격을 쳐주면서 투자에 까다로운 조건도 걸지 않고 투자 이후에 열심히 회사를 지원해 주기까지 하는 그런 완벽한 투자자는 찾기 힘듭니다.투자 파트너를 선택할 때 내가 제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와 내가 정말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두 가지를 먼저 명확히 하고 나서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고 걱정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에 집중하세요. 그리고 투자 자금이 확보되어 있는지 꼭 확인하시고 투자 자금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시고 자금 집행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과 대화하세요.

이상 슬기로운 PE사용 설명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