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석상 안나오던 남양유업 홍원식 회장, 오늘 '직접 사과'

홍원식 회장, 4일 오전 10시 입장 표명
'무리수 코로나 마케팅' 후폭풍…불매운동 확산·경찰 압수수색
사진은 2013년 남양유업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장 당시 모습.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은 당시 본인 명의의 사과 입장문을 냈으나 기자회견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사진=한경 DB
침묵을 지키던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결국 대국민 사과에 나선다.

'불가리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마케팅' 역풍이 거세지자 2013년 '대리점 갑질' 사태에도 직접 나서지 않던 홍 회장이 공식석상에 서기로 한 것이다. 앞서 이광범 남양유업 대표이사가 책임을 지고 사임을 결정한 만큼 홍 회장의 거취에도 관심이 쏠린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첫 '대면' 대국민 사과

홍 회장은 4일 오전 10시 최근 자사 유제품 불가리스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다는 발표로 빚어진 논란에 대해 입장을 표명한다. 사실상 대국민 사과인 셈이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개발' 심포지엄이 열린 지 3주 만이다.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오너가 직접 입장을 발표할 만큼 위기의식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사진=한경 DB
남양유업에 따르면 홍 회장은 이날 서울 논현동 본사 대강당에서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다. 입장문에는 불가리스 논란 관련 사과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홍 회장이 직접 현장에 나와 입장을 표명한다는 점에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과거 2013년 대리점 갑질 사태, 2019년 외조카 황하나 씨의 마약 범죄 혐의 당시에도 남양유업은 홍 회장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대국민 사과를 했으나 홍 회장 본인이 공식석상에서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홍 회장은 사장 시절이던 2003년 건설사 리베이트 사건과 관련해 구속된 후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이후 공식석상에는 잘 나오지 않았다"며 "2013년 대국민 사과 당시에도 기자회견에는 안 나왔는데 이번에는 직접 나온다니 거취 관련 입장도 내놓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고 전했다.

앞서 이광범 대표 책임 지고 사임

사진=뉴스1
남양유업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이광범 대표이사가 사임하기로 했다. 그는 지난 3일 임직원에게 사내 이메일을 보내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난 뜻을 전했다.

이 대표는 이메일에서 "최근 불가리스 보도와 관련해 참담한 일이 생긴 것에 대해 임직원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 사태 초기부터 사의를 전달했고, 모든 책임은 제가 지고 절차에 따라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다만 "유의미한 과학적 연구 성과를 알리는 과정에서 연구 한계점을 명확히 전달하지 못해 오해와 논란을 야기하게 된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부적절한 회삿돈 사용 논란에 휩싸인 홍 회장의 장남 홍진성 상무도 해임된 것으로 확인됐다. 홍 상무는 지난달 회삿돈 유용 의혹이 불거지며 보직 해임됐다. 홍 상무는 그동안 회사 비용으로 외제차를 임대,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의혹을 받아왔다.

'불가리스 무리수'에 전방위 역풍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판매 중인 남양유업 불가리스. [사진=연합뉴스]
불가리스 코로나19 마케팅으로 전방위 역풍을 맞고 있는 남양유업은 1964년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13일 한국의과학연구원 주관으로 열린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개발' 심포지엄이 발단이 됐다. 남양유업 측 항바이러스면역연구소는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 발효유 제품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국내 최초로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처음엔 좋았다. 일부 매장에서 불가리스가 품절 사태를 빚는가 하면 남양유업 주가도 급등했다. 하지만 잠시였다. 질병관리청이 직접 나서 제품을 접촉시키는 방식의 연구 방법으로는 코로나19 예방 및 사멸 효과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해당 연구가 동물시험이나 임상시험 등을 거치지 않은 점, 심포지엄과 남양유업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남양유업이 사실상 불가리스 제품 홍보를 진행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관련 행정처분을 의뢰했다. 남양유업은 식약처가 고발 조치한 뒤인 지난달 16일에야 입장문을 내고 "소비자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며 사과했다.

그러나 세종시는 같은날 남양유업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세종공장의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결정, 사전통보했다. 경찰도 수사에 돌입해 지난달 30일 남양유업 본사 사무실과 세종연구소 등 6곳을 압수수색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 직원들이 지난달 30일 서울 논현동 남양유업 본사 압수수색을 마치고 압수품이 담긴 박스를 옮기고 있다. 사진=뉴스1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2013년 '대리점 갑질 사태'로 이어지던 불매운동에 다시 불이 붙었다. 흔히 맘카페라 불리는 지역 커뮤니티에서는 남양유업 제품에 대한 정보를 나누며 불매운동을 하자는 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남양유업이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의 자체브랜드(PB) 제품으로 제조사를 잘 드러내지 않는 전략을 취하자 '가려내기'에 나선 것이다.

남양유업은 2013년 대리점 갑질 사태로 대국민 사과까지 했지만 이후에도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홍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이 온라인에 경쟁사 매일유업에 대한 비방글을 올리도록 한 것으로 드러나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되기도 했다. 남양유업은 앞서 2009년과 2013년에도 경쟁사 비방글을 올려 경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반복되는 논란 배경은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종전 사례와 처벌에서도 남양유업이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을 오너 일가 중심의 폐쇄적 조직 문화 때문으로 짚었다.

표면적으로는 오너인 홍 회장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지만 오너 일가의 회사 지배력이 절대적이다. 남양유업은 최대주주인 홍 회장의 지분(51.68%)을 포함해 총수 일가 지분이 53.85%에 달한다.

논란이 불거진 후 뒤늦게 진화에 나서는 '늑장 대응'이 반복되는 점도 이같은 평가가 나오는 맥락이다.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2013년 대국민 사과 이후에도 남양유업은 다양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이번 마케팅 역시 폐쇄적 경영시스템에서 내부에서 제대로 된 의견 개진이 어려웠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