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부활한 '그랜드 투어'…'현대판 귀족'의 열망을 담다[김동욱의 하이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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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상류층 자제들은 '그랜드 투어'라고 불리는 유럽 대륙 여행을 즐겼습니다. 고대 로마 유적지와 르네상스 예술작품이 풍부한 이탈리아 주요 도시들과 문화의 중심지 프랑스 파리 등이 주요 대상이었습니다. 이동 경로에는 '로만틱 가도'로 불리는 일부 독일 도시들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같은 교통 요지들도 포함됐습니다, 고전 문화와 귀족사회의 교양을 비롯해 견문을 넓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게 주된 여행의 목표였습니다. 귀향길에 구입한 미술품, 서적과 현지에서 만난 귀족들과의 서신 교환은 유럽 문화교류에도 적잖은 역할을 담당했습니다.귀족과 대상인 가문의 자제들인 이들은 홀로 배낭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학문과 승마, 춤, 펜싱 등을 가르칠 가정교사는 물론 통역과 전용 마차를 몰 인력, 짐 나르는 하인 등 딸린 식솔이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일정도 몇 달에서 몇 년이 소요되는 만큼 비용도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자연스레 '그랜드 투어'는 상류 사회의 전유물이자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 됐습니다.산업화와 대중사회의 도래로 과거 귀족사회의 한 장면으로 치부됐던 럭셔리 여행이 다시 살아나는 듯한 모습입니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여행이 사실상 막히면서 국내 초호화 여행시장이 확장되는 것입니다. '귀족 생활'로 대변되는 상류 사회의 삶에 대한 갈망에 일종의 '보복적 소비'까지 겹친 듯한 양상입니다. 한진관광의 'KALPAK', 하나투어의 '제우스' 같은 프리미엄 패키지여행에 눈을 돌리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두드러지게 럭셔리 여행 상품 분야를 강화하고 나선 것은 KALPAK입니다. 2010년대 초 2000만 원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음악회 투어' 등의 상품을 선보였던 KALPAK은 최근 해외여행을 갈 수 없는 회원들을 위한 국내 럭셔리 상품을 들고 나왔습니다. 유명 한식 셰프인 조희숙 명장과 동행해 3박 4일 동안 부산과 안동 등을 둘러보는 상품을 선보인 것입니다. 안동의 전통 한옥 리조트에 머물고, 하회마을의 풍산 류씨의 대종가에서 종손과 함께 다과 시간을 가지면서 유명 셰프의 안동 찜닭 쿠킹 클래스에 참여하는 식입니다. 이밖에 울산 친환경 목장에서 발효 막걸리를 체험하고, 5성급 호텔(파크하얏트 부산) 투숙하며, 프라이빗 요트 체험하는 등 그야말로 '그랜드 투어'의 한국형 축소판인듯한 모습입니다.과거 같으면 해외여행을 하기에 충분했던 1인당 300만 원의 고가에도 초호화 관광상품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다는 게 여행사 측 설명입니다. 고급숙소에서 프라이빗한 여행을 즐기도록 해 '현대판 귀족'이 되고픈 열망을 자극한 것인데요. 이 회사는 지난해 말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국내 5성급 호텔 숙박권으로 교환할 수 있는 상품을 출시하는 등 럭셔리 여행 시장의 불씨를 이어가고,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입니다. 의식주에 대한 기본 욕구가 해소된 이후 인간이 갖는 기본 욕구 중 하나가 여행이라고 합니다. 세계화로 바깥세상에 대한 경험이 증폭했다가 코로나19로 손발이 묶인 현대인이 언제까지고 여행의 욕망을 억누를 수는 없어 보입니다. 코로나19 확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를 비롯한 국내 주요 관광지와 주요 공항이 인파로 북적이는 모습은 이런 상황을 대변합니다. 국내뿐 아니라 노동절 연휴를 맞은 중국, 골든위크 연휴의 일본에서도 여행수요가 폭발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억눌린 여행욕이 한계에 다다른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코로나19의 공포가 여전한 가운데 여행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해집니다. 그 속에서 현대판 '그랜드 투어'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 어떤 모습으로 변신에 갈지 주목됩니다.
김동욱 기자
최근 들어 두드러지게 럭셔리 여행 상품 분야를 강화하고 나선 것은 KALPAK입니다. 2010년대 초 2000만 원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음악회 투어' 등의 상품을 선보였던 KALPAK은 최근 해외여행을 갈 수 없는 회원들을 위한 국내 럭셔리 상품을 들고 나왔습니다. 유명 한식 셰프인 조희숙 명장과 동행해 3박 4일 동안 부산과 안동 등을 둘러보는 상품을 선보인 것입니다. 안동의 전통 한옥 리조트에 머물고, 하회마을의 풍산 류씨의 대종가에서 종손과 함께 다과 시간을 가지면서 유명 셰프의 안동 찜닭 쿠킹 클래스에 참여하는 식입니다. 이밖에 울산 친환경 목장에서 발효 막걸리를 체험하고, 5성급 호텔(파크하얏트 부산) 투숙하며, 프라이빗 요트 체험하는 등 그야말로 '그랜드 투어'의 한국형 축소판인듯한 모습입니다.과거 같으면 해외여행을 하기에 충분했던 1인당 300만 원의 고가에도 초호화 관광상품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다는 게 여행사 측 설명입니다. 고급숙소에서 프라이빗한 여행을 즐기도록 해 '현대판 귀족'이 되고픈 열망을 자극한 것인데요. 이 회사는 지난해 말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국내 5성급 호텔 숙박권으로 교환할 수 있는 상품을 출시하는 등 럭셔리 여행 시장의 불씨를 이어가고,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입니다. 의식주에 대한 기본 욕구가 해소된 이후 인간이 갖는 기본 욕구 중 하나가 여행이라고 합니다. 세계화로 바깥세상에 대한 경험이 증폭했다가 코로나19로 손발이 묶인 현대인이 언제까지고 여행의 욕망을 억누를 수는 없어 보입니다. 코로나19 확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를 비롯한 국내 주요 관광지와 주요 공항이 인파로 북적이는 모습은 이런 상황을 대변합니다. 국내뿐 아니라 노동절 연휴를 맞은 중국, 골든위크 연휴의 일본에서도 여행수요가 폭발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억눌린 여행욕이 한계에 다다른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코로나19의 공포가 여전한 가운데 여행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해집니다. 그 속에서 현대판 '그랜드 투어'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 어떤 모습으로 변신에 갈지 주목됩니다.
김동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