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 후계자는 그레그 아벨…8844억달러 굴릴 '거래의 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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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내게 무슨 일 생기면 아벨이 벅셔 이끌 것"“오늘 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일 아침 그레그 아벨(58)이 벅셔해서웨이 경영권을 승계하기로 이사들이 동의했다.”
후계자 지목된 아벨 부회장
애물단지였던 에너지 자회사
美 최대 전력기업으로 키워
버핏 "그는 혁신가" 무한 신뢰
WSJ "기민한 거래 해결사"
"버핏을 대신할 수 없다" 평가도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90)은 3일(현지시간) CNBC방송에 이렇게 말했다. 수년간 베일에 싸여 있던 후계자가 결정됐음을 공표한 것이다.캐나다 출신으로 비보험 부문 부회장인 아벨은 벅셔해서웨이를 이끄는 다섯 명의 임원 중 가장 젊다. 애물단지로 꼽혔던 에너지 부문을 맡아 미국 최대 전력회사로 키웠다. 일각에서 그를 ‘버핏의 록스타’로 부른 이유다.
시대를 흔든 ‘투자 거인’ 버핏은 후계자를 지목하면서 자신의 시대가 끝나감을 시사했다. “아벨의 능력이 충분하겠지만 누구도 버핏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실수로 공개된 후계자
벅셔해서웨이 차기 최고경영자(CEO)를 아벨이 맡게 될 것이란 사실은 우연히 공개됐다. 찰리 멍거 벅셔해서웨이 부회장은 지난 1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회사 시스템이 나와 버핏보다 오래갈 것”이라며 “아벨이 기업 문화를 잘 지켜갈 것”이라고 했다. 관리하기 어려운 회사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이후 버핏은 이사회가 아벨을 차기 CEO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그는 “하늘에서 반대해 아벨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아지트 자인이 후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자인은 벅셔해서웨이 보험부문 부회장이다. 아벨과 함께 후계자 후보로 꼽혀왔다.벅셔해서웨이의 자산 규모는 8844억달러(연결 기준)에 달한다. 기업가치(시가총액)는 6424억달러로 세계 9위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정보기술(IT) 기업을 제외하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아벨은 벅셔에서 철도, 수도·전기·가스 등 유틸리티, 자동차 판매업 등을 이끌고 있다.
전단 배포 알바하며 꿈 키운 ‘하키광’
1962년 캐나다 앨버타의 에드먼턴에서 태어난 아벨은 안전장비 공급업체 레빗세이프티에 근무하던 월급쟁이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학창 시절 빈 병을 팔고 광고 전단을 돌리며 용돈을 벌던 그에게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선수인 삼촌 시드 아벨은 영웅이었다.그는 앨버타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뒤 컨설팅업체인 PwC에서 회계사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지열발전 업체인 칼에너지로 옮기면서 에너지업계에 발을 들였다. 벅셔해서웨이가 1999년 칼에너지(현 벅셔해서웨이에너지) 지분을 인수하면서 버핏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2008년 이 회사 CEO를 거쳐 2018년 1월 벅셔해서웨이 비보험 부문 부회장에 올랐다.아벨은 2018년 호레이쇼 앨저상을 받았다. 앨저는 역경 속에서 성장한 자수성가 이야기를 미국 사회에 전파한 신화적 인물이다. 아벨의 성공담이 미국을 지탱하는 자수성가 성공담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다.
버핏, 여러 CEO 조언자 역할 할 것
월스트리트저널은 아벨을 “기민한 거래 해결사(astute dealmaker)”라고 평했다. 버핏은 2013년 “아벨이 전화할 때 항상 시간을 낸다”며 “그는 대단한 아이디어를 가져다주고 정말로 혁신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신뢰를 보냈다.아벨이 CEO를 맡으면 버핏은 직접 경영에 관여하는 대신 각 사업부가 잘 돌아가도록 조언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월가에서는 내다봤다. 가드너루소앤드퀸의 토머스 루소 경영 파트너는 “버핏의 역할은 CEO에게 경영을 직접 알려주는 대신 질문에 답하고 자금 배분을 돕는 것”이라고 했다.나이 때문에 현장을 자주 찾지 못한 버핏보다 현장 방문이 잦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폴 룬지스 룬지스자산운용 대표는 “아벨은 벅셔를 이끄는 데 완벽한 사람”이라면서도 “버핏을 대신할 사람은 없다”고 했다.
다만 올해 90세인 버핏이 5년 안에 물러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많다. 아벨이 CEO에 오르더라도 회장직은 버핏의 장남인 하워드 버핏이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버핏은 그동안 무보수인 회장직은 CEO를 견제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얘기해왔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