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제품 찾는 AI, 비용 50분의 1로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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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비전, 23개국 58개 기업에 서비스브랜드 담당자들에게 ‘짝퉁(모조품)’ 시장은 끝없는 전쟁터다. 이커머스 플랫폼마다 수백만원대 명품부터 불과 몇만원짜리 화장품까지 가짜가 넘쳐난다. 기업마다 모니터링 담당자가 있지만 이들이 가품 유통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일일이 판매상품을 클릭해 위조 상품을 찾고, 플랫폼마다 따로 신고를 넣어야 해서다. 이렇게 일부를 색출해도 시장엔 날마다 새로운 짝퉁 판매자가 들어온다. 그간 가품 때문에 기업과 소비자가 피해를 입어도 실질적인 대응이 힘들었던 이유다.
브랜드 지식재산권(IP) 보호 솔루션 기업 마크비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지능(AI)을 활용했다. 자체 개발한 AI 알고리즘이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 곳곳에서 가품을 자동으로 탐지해 제거해준다.
◆ AI가 이미지·텍스트 분석해 가품 감별
마크비전은 이인섭 대표가 2019년 1월 창업했다.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에서 근무한 이 대표는 하버드 로스쿨 재학 중 만난 비니 메이 최고기술책임자(CTO), 글로벌 컨설팅기업 EY에서 디지털부문 컨설턴트로 일한 이도경 부대표 등과 함께 마크비전을 공동창업했다. 기업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는 자동화 플랫폼을 개발해 작년 3월 미국에서 첫 시범 서비스를 열었다. 국내엔 작년 7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마크비전의 AI 솔루션은 이미지와 텍스트를 기반으로 정품과 가품을 구별한다. 패션 식품 뷰티 등 산업마다 각각 10만 개가 넘는 정품 이미지 데이터를 딥러닝 기반 이미지 인식모델에 적용했다. 이를 통해 AI가 24시간 이커머스 플랫폼을 모니터링하면서 외관상 유사한 위조상품과 모조품을 찾아낸다.상품설명, 구매 리뷰, 가격 등 데이터도 분석한다. 가격이 정가에 비해 지나치게 저렴하거나, 구매 리뷰 중 ‘가짜인 것 같다’는 글이 수차례 나온 경우 가품 의심사례에 넣는 식이다. 이같은 기준 30여 가지를 아울러 적용해 가품 판별 정확도가 90%에 가깝다. 사진 기반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 채널에 대해선 정확도가 95%에 달한다. AI가 머신러닝을 통해 위조상품 사례를 패턴화하고, 알고리즘 정확도를 올리기 때문에 모니터링 기간이 길어질수록 정확도가 올라갈 것이라는게 마크비전 측의 설명이다. AI 기반 '셀러맵핑' 서비스도 제공한다. 여러 이커머스 플랫폼 데이터를 취합·분석해 위조상품 판매자간 연관 고리를 찾아내는 기능이다. 이를 통하면 가품 유통경로를 파악할 수 있어 ‘본체’를 단속할 수도 있다. 마크비전 관계자는 “한 글로벌 뷰티 브랜드를 분석한 결과 위조상품 판매자 30여 명이 유통망 하나를 공유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유통망에서만 위조상품 1300여 개가 팔렸고, 75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거뒀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말했다.
◆ “AI 쓰니 수작업 비용 50분의 1로”
마크비전 AI 솔루션은 선별한 가품 의심 사례를 모아 이용자에게 보여준다. 담당자가 최종 판단 후 신고 버튼을 누르면 봇 기반 마크비전 시스템이 개별 이커머스에 자동으로 신고를 접수한다. 사람이 가품을 일일이 찾아 신고할 때보다 시간이 훨씬 덜 걸린다.마크비전에 따르면 기업이 수동으로 가품을 찾아 신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드는 적발 비용은 약 2만원, 건당 소요시간은 30분가량이다. 반면 AI를 썼을 때 가품 식별에 드는 비용은 760원, 소요시간은 36초 정도다. 비용은 50분의 1, 시간은 30분의 1 수준으로 확 줄어든다는 얘기다. 위조상품 제조·유통사에 대한 법적 대응도 쉬워진다. 스크린샷을 일일이 찍어 증거자료를 모을 필요가 없다. 솔루션을 통해 구체적인 판매자 정보와 상품 내용을 확인할 수도 있다.
◆ IP 무단도용 제품도 ‘찾았다’
AI가 가품만 찾아내는 것이 아니다. 캐릭터나 콘텐츠 등 저작물에 대한 지식재산권(IP) 무단도용 제품도 식별한다. 지난 3월엔 미국, 중국, 동남아시아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 콘텐츠의 유명 웹툰 캐릭터를 무단 도용한 굿즈(기획상품) 900억원 어치를 적발해 제거했다. ‘킬링스토킹’, ‘야화첩’, ‘BJ알렉스’ 등 10여 개 작품 상표권·저작권을 침해한 상품 4000여 개다. 이중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신고를 기각한 제품은 단 2개에 불과해 99%가 넘는 적발 정확도를 기록했다. 마크비전은 국내 네이버·쿠팡을 비롯해 미국 아마존·이베이, 중국 알리바바·타오바오 등 여러 플랫폼에 걸쳐 위조상품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서비스 진출 범위가 23개국 58개 기업에 달한다. 랄프로렌코리아, 라코스테, 젠틀몬스터, 레진코믹스, 삼양식품 등 국내외 유명 브랜드 40여 곳이 고객사다. 작년 말엔 글로벌 유명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YC) 등으로부터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YC 투자육성 프로그램에 선발됐고, 베이스인베스트먼트·다날투자파트너스 등으로부터 투자금 총 36억원을 유치했다.마크비전은 이번에 확보한 투자금으로 사업 영역을 일반 상품에서 불법복제 콘텐츠 영역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 3일엔 글로벌 본사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세계 콘텐츠 산업 중심지 격이라 수요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이인섭 마크비전 대표는 “미국은 세계 최대 콘텐츠 시장으로 통하는 만큼 IP 보호에 대한 수요도 높다”며 “이번 본사 이전을 통해 사업 영역을 성공적으로 확장시키고, 마크비전의 AI 서비스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IT과학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