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앞두고 대북전단 살포에…경찰, 강제수사

정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차질 우려…'北눈치만 봐' 지적도
경찰이 6일 대북 전단을 살포했다고 밝힌 탈북민 단체에 대한 강제수사에 착수한 것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 간 긴장감을 높여서는 안 된다는 정부 판단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대는 이날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의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경찰 관계자는 "박 대표의 대북전단금지법 위반 혐의 수사에 필요한 증거를 얻기 위한 압수수색"이라며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탈북민인 박 대표는 지난달 25∼29일 비무장지대(DMZ)와 인접한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2차례에 걸쳐 대북 전단 50만장, 소책자 500권, 미화 1달러 지폐 5천장을 대형 풍선 10개에 담아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고 지난달 30일 발표했다. 정부는 이달 21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대북 전단 살포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북미 대화 재개를 설득해 임기 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 계획을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해 실제적·불가역적 진전을 이룬 역사적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루 빨리 북미 양국이 마주 앉는 것이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대북 전단 살포가 북한을 자극해 문 대통령의 이 같은 구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대북 전단 살포 사실이 공개된 지 이틀만인 이달 2일 탈북단체와 우리 정부를 싸잡아 강하게 성토했다. 김 부부장은 "남조선 당국은 탈북자 놈들의 무분별한 망동을 또다시 방치해두고 저지시키지 않았다"면서 "우리가 어떤 결심과 행동을 하든 그로 인한 후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더러운 쓰레기들에 대한 통제를 바로 하지 않은 남조선 당국이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통일부는 곧바로 입장문을 내고 "경찰이 전담팀을 구성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남북관계발전법 개정 법률이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위한 취지에 부합되게 확실히 이행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김창룡 경찰청장은 관련 부서에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엄정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김 청장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 대북 전단 살포를 막기 위한 초동조치가 미온적이고 소홀했던 것 아니냐"고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표는 경찰의 신변보호 대상이다.

경찰은 그가 신변보호를 거부하고 잠적한 뒤 대북 전단을 살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전단 살포 등을 금지한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대북전단금지법)은 올해 3월 30일 시행됐다.

법 위반 시 최대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이번 전단 살포는 대북전단금지법이 시행된 뒤 첫 사례다.

일각에서는 풍향 등을 고려하면 전단 대부분이 남쪽에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박 대표에 대한 강제 수사가 북한 인권을 중시하는 국제 사회 일각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북한 눈치를 보느라 대북 전단에 과민 반응한다는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