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고래사냥 부족'도 못 피한 변화의 파도

마지막 고래잡이

더그 복 클락 지음
양병찬 옮김 / 소소의책
488쪽| 1만9000원
“발레오(사냥이 시작됐다)! 발레오!” 해변의 남자들이 마을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마을 곳곳에 흩어져 있던 주민들이 일제히 “향유고래가 발견됐다”고 합창을 했다. 주민들은 14척의 배를 바다에 띄우고 향유고래를 쫓았다. 선원들이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으면 라마파(작살잡이)들이 일제히 향유고래를 향해 작살을 던졌다.

인도네시아 동쪽에 자리 잡은 렘바타 섬에는 지구촌 최후의 생계형 고래잡이 부족이 살고 있다. 라말레라 부족이다. 이들은 약 5세기 전에 화산섬 남부의 척박한 땅에 정착했다. 바위투성이 해안은 메말라서 농작물을 재배할 수 없다. 이들은 앞바다에 떼 지어 노는 향유고래 한 마리만 잡으면 모두가 몇 주 동안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길이가 9m가 넘고 몸무게가 20t에 달하는 향유고래는 현존 최대의 이빨 달린 육식동물이다. 300명에 달하는 부족의 사냥꾼들은 1년에 평균 스무 마리의 향유고래를 잡아 총 1500명의 부족원에게 육포를 공급한다.《마지막 고래잡이》를 쓴 작가 더그 복 클락은 2011년 라말레라 마을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여섯 차례 방문했다. 그는 모두 합쳐 약 1년간 사냥을 참관하고 시장에서 물물교환하며 이들과 같이 살았다. 그리고 전통적 방식인 목선을 타고 대나무 작살로 고래를 사냥하는 라말레라 부족의 삶과 문화를 책에 생생하게 담아냈다.

라말레라 사람들의 종교는 가톨릭과 조상 숭배가 결합된 정령신앙이다. 향유고래는 조상님들이 보내주신 선물이라고 믿는다. 개인의 행운을 부족과 공유해야 한다는 조상님의 가르침을 따른다. 고래를 사냥한 뒤 조상님들이 정해 놓은 방식으로 직접 사냥에 나서지 않은 과부, 고아, 불운한 친척에게까지 모두 고래고기를 배분한다. 고래 사냥의 불확실성 때문에 부족 내 협동과 공유는 수렵채집 사회에서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라말레라 부족의 전통과 문화는 다른 원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서서히 변하고 있다. 현대적인 삶을 추구하느라 고래 사냥을 포기하는 청년, 해양 동물의 씨를 말리는 기업형 저인망 어선, 이들의 고래잡이를 막으려는 환경단체들까지…. 라말레라 부족은 내외부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저자는 부족의 여러 인물을 등장시켜 이들이 겪는 풍파를 마치 소설처럼 써 내려간다. 고래잡이 생활방식을 유지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해지는 변화의 물결 속에 젊은이들은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들이 겪는 일상의 고민은 산업사회의 청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