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경제 세계사] 자유의 여신상이 푸른 빛을 띠는 이유는

경제사 이야기

(32) 인류가 가장 오래도록 사용한 금속
미국 뉴욕 허드슨강 어귀의 리버티섬은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에서 주인공 에디 레드메인이 가방을 들고 입국 수속을 기다리던 곳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에 도착한 이민자들이 가장 먼저 볼 수 있었던 것이 자유의 여신상이다.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 계획을 수립하고 10년 뒤 1886년 미국에 선물한 것이다. 정식 명칭은 ‘세계를 비추는 자유’다. 이 거대한 여신상은 높이 46m, 무게는 225t에 달한다. 받침대까지 합치면 높이가 93.5m이고, 손가락 하나가 2.44m에 달할 만큼 거대한 규모다. 7개의 뿔이 달린 왕관은 7대륙을 상징한다. 오른손에는 세계를 비추는 자유의 횃불을, 왼손에는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다. 내부에는 전망대와 박물관도 있다. 프랑스 조각가 프레데릭 바르톨디가 제작했고, 내부 철골 구조물은 에펠탑 설계자인 구스타브 에펠이 설계했다. 1884년 완성돼 잠시 파리에 있다가 이듬해 배로 옮겨져 1886년 현재 위치에 세워졌다.

자유의 여신상은 페인트칠을 하지 않았는데도 푸른빛을 띠고 있다. 주철 조형물에 구리를 덧씌웠기 때문이다. 구리에 끼는 청록색 녹을 녹청이라고 한다. 공기 중 수분과 이산화탄소 작용으로 구리 표면에 푸른 피막이 형성된 것이다. 녹청의 화학성분은 염기성 탄산구리, 또는 산화구리다. 녹청이 끼면 더 이상 산화가 진행되지 않아 반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다. 박물관에 가보면 철기시대 유물은 형체가 훼손될 만큼 녹이 슨 반면, 청동기 유물은 비교적 원형이 보전돼 있는 까닭이다.

‘아이스맨 외치’가 지닌 무기는 구리로 만든 도끼

고대부터 인류가 사용해 온 7가지 금속은 구리, 납, 은, 금, 주석, 철, 수은이다. 바로 이 순서대로 금속의 성질을 알게 됐다. 인류는 탄생 이래 200만 년 이상을 석기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BC 5000년께 최초로 이용한 금속이 바로 구리다. 구리는 지구에 여덟 번째로 많이 존재하는 금속원소다. 지표면에서 발견되는 자연동은 가공이 용이해 중동과 유럽 일대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원시시대에는 석기가 기본 도구였지만 무기와 장신구 등에는 동기(銅器)를 사용했다. 석기와 동기를 함께 쓴 시대를 금석병용기, 또는 동기시대라고 한다. 시기적으로는 BC 5000~BC 3200년으로,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중간 과도기다. 그 증거가 1991년 알프스 빙하지대에서 발견된 BC 3300년경 선사시대 남자의 냉동 미라다. 오스트리아 외치 계곡에서 발견돼 ‘아이스맨 외치’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이스맨과 함께 발견된 물품은 고고학계에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아이스맨은 이탈리아에서 나는 부싯돌과 간석기 단검, 돌 화살촉, 곰 가죽, 구리로 만든 도끼를 지녔다.

구리를 가리키는 copper는 로마시대의 주된 구리 생산지가 키프로스섬인 데서 유래했다. 청동을 뜻하는 bronze 역시 로마시대의 청동 생산지이자 무역항인 브룬디시움에서 따왔다. 채굴한 구리를 주석과 섞어 청동기를 만들려면 다른 부족과의 교역이 필수였다. 구리 산지와 주석 산지가 멀리 떨어져 서로 거래가 없으면 섞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청동기는 전혀 만난 적이 없는 집단 간의 교류를 나타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주석 산지는 지금도 제한적이다. 말레이시아, 영국 콘월 등지가 주석 산지로 유명하지만 그 옛날에 이렇게 멀리 주석을 구하러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주석은 터키반도, 크레타 등지에서 소량 생산됐기에 귀한 물품일 수밖에 없었다. 고대 해양 민족 페니키아인이 지중해를 누빈 이유 중 하나가 주석을 구하는 것이었다. 주석을 구할 수 없는 지역에서는 석기시대가 이어지다가 곧바로 철기시대로 넘어간 경우도 적지 않다.

구리에 주석, 아연, 니켈 섞으면 청동, 백동, 황동으로

구리가 인류 최초의 금속이면서 최고의 금속이 된 것은 쉽게 구부리거나 펼 수 있고, 자를 수 있으며 열과 전기를 전하는 성질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부식되지 않고 항균 및 살균 효과도 있다. 구리는 약 7000년의 문명사에서 가장 널리 쓰인 실용적인 금속이다. 이런 특성 덕에 구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무른 금속인 구리는 주로 합금해서 이용했다. 구리에 주석을 섞으면 청동이지만 아연을 섞으면 황동이 되고 니켈과 합금하면 백동이 된다.

구리의 내부식성(부식에 저항하는 성질)은 배를 만들 때 필수였다. 고대의 목선은 가장 큰 문제가 바닷물에 의해 나무가 썩거나 배 밑바닥에 따개비, 홍합 등이 붙어 나무를 갉아먹는 것이었다. 그래서 배 밑바닥에 구리를 씌워 이런 문제를 해소했다. 또한 19세기에 전기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자 구리는 전선의 필수 재료로 각광받았다. 구리는 펴거나 얇게 늘려 가공하기 쉽고, 전도성이 은 다음으로 높기 때문이다.

1976년 발생한 재향군인병은 구리의 용도를 더욱 확장시켰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재향군인대회 참석자들 사이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해 34명이나 사망한 일이 있었다. 원인은 냉방장치의 냉각수에 서식하는 레지오넬라균 때문으로 밝혀졌다. 이를 계기로 에어컨 배관, 수도관 등을 항균 효과가 있는 동 파이프로 대체했다. 군수품에도 구리가 없어서는 곤란하다. 총알만 해도 대부분 구리로 돼 있다. 항공기, 군함 등에 장착되는 레이더와 각종 전자 장비에도 구리가 필수다.이렇다 보니 구리의 국제 가격은 세계 경제와 긴밀한 상관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구리 수요가 늘어 가격이 오르면 경기 호황 징후로, 가격이 떨어지면 경기 침체 징후로 해석된다. 이 때문에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는 ‘구리 박사’라는 뜻의 ‘닥터 코퍼(Dr. Copper)’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실물경제 판단 지표로 유용한 구리를 경제 전문가처럼 의인화한 것이다. 청동기시대는 수천년 전에 끝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구리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NIE 포인트

① 철보다 강한 금속이 있었다면 석기→청동기→철기시대 이후의 시대가 있었을까.

② 고조선은 전기에는 청동기, 후기에는 철기문화가 발달했는데 만주는 물론 베이징 근처에서까지 고조선 유물이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③ 구리는 많은 분야에 사용되는데 소장 가치 외에 특별한 쓰임새가 없는 금보다 싼 이유는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