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먹방' 찍고, SNS선 농담·막말…회장님이 달라졌다 [도병욱의 지금 기업에선]

외부와 소통 늘려가는 대기업 총수들
재계 3대 소통왕은? 정용진, 박용만, 정태영
최태원, 정의선 등도 소통 보폭 넓혀
실무진들은 "긍정적 영향 많다"면서도 "말실수 할까 걱정도"
야구장을 찾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그를 닮은 캐릭터 '제이릴라'
SNS에 수시로 글을 올리고, 직원들을 만나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사내 방송에는 물론 TV 예능 프로그램에 직간접적으로 나오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대기업 회장들 얘기다. 과거에도 대기업 회장들은 세상과 소통을 했지만, 그 방식은 지금과 꽤 달랐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 같은 딱딱한 자리에서 무거운 메시지를 내놓거나 해외 출장을 마친 뒤 공항에서 기자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는 일반적이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그랬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 몇 년 동안 바뀌었다. 가장 활발하게 소통을 하고 있는 대기업 총수 중 한 명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다. 정 부회장은 최근 신세계푸드의 캐릭터 '제이릴라'를 비난하는 글을 SNS에 올렸다. 이 캐릭터는 정 부회장을 모티브로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캐릭터를 홍보하기 위해 역으로 이 캐릭터를 비난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정 부회장은 "진짜 나랑 하나도 안 닮았다", "내가 싫어하는 고릴라" 등의 표현을 썼다. 정 부회장은 수시로 SNS에 글을 올리고 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음성 기반 SNS인 클럽하우스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SNS에 자신이 찾은 식당, 자신이 먹은 음식 등 소소한 일상을 공유한다. 때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을 직접 거론하는 등의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야구단(SSG 랜더스)을 홍보하기도 했다. 방송인 백종원씨가 TV 예능프로그램 촬영 중에 전화를 걸어 농수산물 대량 구매를 부탁할 때마다 선뜻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TV 시청자들과도 소통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소통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박용만 회장이 인정한 '재계 소통 왕'이다. 두산그룹 회장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지낸 박 회장(현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지난 3월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대기업 총수나 최고경영자(CEO)들이 소통을 많이 한다고 하지만, 아직 문화가 완전히 바뀐 건 아니다"라며 "그러니 매번 정용진, 박용만, 정태영 이렇게만 이름이 거론되지 않나"라고 말했다.

박 회장도 SNS에 글을 수시로 쓴다. 정 부회장처럼 일상적인 글도 많이 쓰지만, 사회 및 경제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할 때도 있다. 특히 기업을 옭아매는 불필요한 규제 등에 대해서는 에둘러가지 않고 정면으로 정부나 정치권을 비판한다. 그는 2010년 한 TV 다큐프로그램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적도 있다. 내부 소통도 거리낌이 없다. 두산그룹이나 대한상의의 임직원들과 편안하게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는 일도 종종 있었다. 박 회장이 '재계 3대 소통 왕'이라고 꼽은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클럽하우스를 가장 열심히 하는 인사 중 한 명이다. 페이스북 등 다른 SNS에서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일상을 소개하는 글부터 자사 상품을 홍보하는 글까지 주제도 다양하다.
직원들에게 직접 육개장을 끓여 대접한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들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대기업 총수들도 조금씩 소통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회사에 20년 이상 일한 직원 6명을 초대해 직접 만든 육개장을 대접하고, 2030세대 직원들과 ‘번개(즉흥모임)’를 하는 등 파격을 선보였다. 사내 방송에 직접 라면을 끓여먹는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최 회장은 올해 초 대한상의 회장을 맡아 외부와 소통을 더욱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임직원들의 질문에 직접 답을 하는 '타운홀 미팅'을 두 번 개최했다. 사내 방송에 직접 출연해 수소전기차 넥쏘의 자율주행 모델을 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직원들을 팀 또는 부서단위로 만나는 행보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함영준 오뚜기 회장은 딸인 방송인 함연지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다.
플라스틱 줄이기 캠페인에 참여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눈에 띄는 행보를 하지 않는 총수들도 과거에 비해서는 외부 노출을 조금씩 늘리는 추세다. 최근 유행하는 여러 '챌린지'에 동참하는 총수가 늘어난 게 대표적이다. 강호찬 넥센타이어 부회장과 문창기 이디야커피 회장은 어린이 교통 안전 릴레이 챌린지에, 정의선 회장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고고챌린지에 참여했다. 재계 관계자는 "취지가 좋은 행사이다보니 참여하는데 부담이 크지 않고, 과거에 비해 총수들이 이런 참여에 몸을 사리는 경우도 줄었다"고 설명했다.

총수들이 소통에 적극적이면 회사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된다. 활발한 내부 소통은 임직원들의 사기를 높여주는 계기가 된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총수가 있는 기업의 실무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총수가 적극적으로 외부와 소통하면 기업 이미지 개선에는 분명 득이 되지만, 자칫 말실수를 할까봐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며 "어느 누구도 총수에게 말을 조금 조심하라고 조언할 수 없는 상황이라 자칫 큰 문제가 발생할까 걱정도 된다"고 토로했다. 다른 기업의 관계자는 "내부 소통을 적극적으로 하면 회사 분위기가 좋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임금 갈등이나 대형 사고 등이 발생하면 총수의 소통이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며 "지금까지 총수가 '입에 발린 말을 해온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우려에도 소통에 적극적인 대기업 총수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많은 젊은 총수들이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회사 내부 또는 외부와 소통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도병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