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친문, '원팀' 될까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널까 [홍영식의 정치판]

이해찬·이낙연 전 대표와 달리 통합·변화 행보 나선 송 대표
부동산 규제 완화 '총대', 친문은 강력 반발 '시험대' 올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취임 첫날인 5월 3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묘를 참배한 뒤 방명록에 “자주국방 공업입국 국가발전을 위한 대통령님의 헌신을 기억합니다”라고 쓰고 있다. /연합뉴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는 이해찬 전 대표, 이낙연 전 대표와 여러모로 비교된다. 이해찬 전 대표는 친문(친문재인)계 대부로 불릴 만큼 명실상부한 현 정부의 최대 주주다. 송 대표는 2018년 대표 경선에서 그런 이 전 대표와 붙어 패배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친문 범주에 속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서 친문의 지지를 업고 대표에 당선됐다.

송 대표는 범친문으로 분류돼 왔다. 하지만 대표 경선에서 친문과는 오히려 대척점에 섰다. 경쟁했던 홍영표 의원이 친문 주류로 분류됐고 우원식 의원은 조금 덜한 친문, 송 대표는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중도 또는 비문으로 편 갈림 당했다. 경쟁자들이 친문 지지표를 끌어들이기 위해 그를 비문으로 몰아세운 측면도 있다.송 대표는 억울한 듯 지난 5월 4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오찬 자리에서 “문재인 캠프 선대본부장까지 맡았는데 왜 날 비문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경쟁 상대에 의해 비문으로 분류된데 대한 억울함을 내비친 것이다.

그럼에도 대표 취임 이후 그의 언행을 보면 친문과는 확연하게 선을 긋는 모습이다. 적어도 시작은 친문과 쭉 한 배를 타고 그들에 얹혀 왔던 이해찬·이낙연 전 대표와는 180도 달랐다. 취임 첫날(5월 3일)부터 그랬다.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로를 언급했고 강성 친문의 문자 폭탄에 대한 견제 발언도 내놓았다. 강성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4·7 재·보궐 선거’ 참패의 민심을 수용해 통합과 변화의 행보에 나섰다는 것이 당 안팎의 분석이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의 글…친문과 선 긋기

그가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이승만·박정희·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방명록에 남긴 글은 이전 민주당 대표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그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해 “3·1 독립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기여한 애국 독립 정신을 기억한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선 “자주국방 공업입국, 국가 발전을 위한 헌신을 기억한다”고 썼다. 앞서 민주당 전 대표들도 이·박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지만 추모의 글은 남기지 않았다.또 “세월호는 챙기면서 제복 입은 분들에겐 소홀했다”는 취지의 언급을 하며 손원일 제독·김종오 장군 묘역도 참배했다. 송 대표는 “손 제독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주역이고 김 장군은 백마고지 전투의 영웅”이라고 했다. 당연하고 상식적인 발언으로 보이지만 강성 지지층의 입김이 강한 여당의 현실을 볼 때 파격이라는 것이 당내의 반응이다. 송 대표 측 관계자는 “최근 ‘문자 폭탄’ 사례에서 보듯 친문 강경파가 당 여론을 좌지우지하면서 당을 민심과 괴리된 채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다면 내년 대선도 어렵다고 보고 선을 그어야겠다는 것이 송 대표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친문 강경파의 반발을 뚫고 통합과 쇄신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느냐다.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친문 주류인 원내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송 대표를 포위하고 있다. 당장 첫 최고위원 회의에서부터 견제를 당했다. 송 대표는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국민과 소통을 확대해 민심을 받드는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말로 들지만 ‘문자 폭탄’으로 당 민주주의 훼손 논란을 불러일으킨 친문 강경 지지층을 겨냥한 것이다.

강성 친문계 최고위원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김용민 최고위원은 “국민과 당원들께서는 저를 최고위원으로 일하게 해 주셨고 그 뜻이 민주당의 개혁이 더 필요하다는 명령”이라며 “당심과 민심이 다르다는 어떤 이분법적 논리가 이번 선거 결과를 통해 근거 없음이 확인되었다”고 했다. 송 대표에게 견제구를 날린 것이다. 그는 강성 지지층의 ‘문자 폭탄’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하는 분들의 의사는 당연히 권장돼야 한다”며 “정치인으로서는 감내해야 할 일”이라고 두둔한 바 있다. 다른 최고위원들도 대부분 김 최고위원을 두둔하는 투였다.

송 대표는 주요 당직에는 비문 성향의 의원들을 발탁했다. 친문이 장악한 최고위원들을 견제하고 자신의 당 지휘 구상과 방침을 원활하게 뒷받침하려는 의도다. 인천시장 시절 시 대변인을 지낸 윤관석 의원을 사무총장에, 정책위원회 의장에 비주류 박완주 의원을 각각 발탁한 게 대표적이다. 고용진 수석대변인, 김영호 대표 비서실장, 이용빈 대변인 모두 계파색이 옅다.

송 대표와 친문 간 각을 세우는 또 하나의 분야는 부동산이다. 송 대표는 당초 취임 이튿날 이전 민주당 대표들이 으레 첫 일정으로 경남 봉하로 내려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는 것도 이틀 미룬 채 부동산 문제부터 챙겼다. 송 대표가 경선 기간 중 꺼낸 대표적인 부동산 정책은 신혼부부와 청년이 생애 첫 주택을 살 때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지금의 40%에서 90%까지 올리자는 것이다.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을 올리자는 것에 대해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고령층과 장기 보유 1주택자의 종부세 공제 한도는 늘리자고 했다. 문재인 정부들어 급격하게 오른 공시 지가에 대해선 상승률 속도 조절론을 제기했다. 송 대표 측이 대표 경선 전에 작성한 ‘2021년 주요 경제 정책 현안’ 문건을 보면 임대 주택을 공급하는 2주택자에 대해선 다주택 규제를 완화하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1가구 1주택 이외엔 무조건 세금 중과 등 규제를 조이자는 당내 친문 주류와는 배치되는 것이다. 송 대표가 민주당의 부동산 정책 기조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는 부동산 특위 위원장에 진선미 의원을 빼고 김진표 의원을 투입한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김진표 특위위원장 임명, 부동산세 부담 완화 시동

친문인 진 의원은 2020년 서울 동대문구 임대 주택 현장에서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면 임대 주택으로도 주거의 질을 마련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김진표 의원은 5선의 중진으로 민주당 내에서 합리적인 경제통으로 꼽힌다. 특히 그는 부동산 규제 완화론자다.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해 다주택자들이 가지고 있는 집을 내놓게 하는 게 중요하고 이를 위해선 양도세 중과 감면 등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 의원은 노무현 정부 경제부총리 시절엔 법인세 인하를 주도했다. 2019년 12월 한경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법인세율은 경제 상황에 따라 정책 변수로 쓸 수 있어야 한다”며 인하 불가론을 비판한 바 있다.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선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공급 확대에 무게를 두기도 했다. 이에 따라 송 대표 체제에서 민주당은 부동산 세 부담 및 규제 완화 정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송 대표의 부동산 구상에 친문들의 반발이 거세다. 한 친문계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잘못돼 집값이 올라갔고 4·7 보궐 선거에서 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혁이 미진해 그렇다”며 확연한 시각차를 보였다. 검찰 개혁에 대해서도 송 대표는 속도 조절론을 제기한 데 반해 친문계는 개혁 가속을 주장하면서 양측은 전방위로 충돌하고 있는 양상이다. 송 대표가 대통령 앞에서 “왜 날 비문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취임 초반 그의 언행을 보면 비문으로 확실하게 낙인 찍혔다. 문 대통령은 송 대표에게 줄곧 원팀을 강조했다. 친문-비문 갈등을 벌이지 말라는 우회적 경고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송 대표나 친문 최고위원들을 보면 원팀이 어려울 것 같다. 양측이 격렬하게 충돌할 때 문 대통령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송 대표는 친문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홍영식 논설위원 겸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