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칼럼] 배임죄 빼닮은 중대재해법

의무·처벌 기준 모호하고 포괄적
'걸면 걸리는' 한국식 기업 징벌법
경사노위 테이블서 재논의해야

이건호 편집국 부국장
내년 1월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에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요즘 산업계에 발등의 불이다. 시행령 제정을 위한 고용노동부의 의견수렴 기간이 이달 말 끝나기 때문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깜깜이’ 법 내용을 보완할 마지막 기회여서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경제단체들이 기업 애로사항을 전달하는 등 총력전에 나섰다. 이 법은 근로자가 1명 이상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경영자를 1년 이상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시한폭탄과도 같다. 애매한 법 조항에 걸려 사업주나 최고경영자(CEO)가 감옥에 갈지도 모르는 만큼 기업들은 ‘초비상’이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규정 탓에 “도대체 뭘 지키라는 거냐”는 불만이 기업들 사이에서 쏟아져 나온다. 사업주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큰 중소기업들로선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기업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고용부가 시행령안 마련을 위해 구성한 전문가 태스크포스(TF)에 기업과 근로자 대표가 제외됐다. 산업현장을 잘 아는 노사 당사자를 뺀 것이다. “입법예고 전 노사 의견 수렴 기회를 마련하겠다”는 게 고용부 입장이지만, 시행령에 산업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고용부는 애초 ‘징벌적’ 중대재해처벌법 제정보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이 낫다는 태도를 취하다가 여권의 강경론에 밀려 입장을 슬그머니 바꿨다.

사업주나 대표자의 의무인 ‘관리상의 조치’는 지나치게 확대 해석될 여지가 크다. 사업장 내 모든 사고에서 ‘관리상의 조치’ 의무 위반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관리 책임’에서 자유로운 경영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걸면 걸리는 것이다. 처벌 대상을 ‘경영책임자 등’으로 포괄적으로 규정한 점도 기업들로선 ‘찜찜’하다. 경영책임이 있는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처벌 대상에 올라 조사를 받을 수 있어서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사법처리 대상이 되는 기업인은 고의성이 없는 과실범인데, 형량 상한선은 없고 하한선(1년)을 정해 무겁게 처벌하도록 한 것도 기업의 불만을 사고 있다.

현행 산안법만 해도 지켜야 할 의무조항이 1200여 개에 달한다. 법 위반으로 근로자를 사망하게 한 사업주는 ‘7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까지 더해지면 전담인력조차 없는 중소기업들은 멘붕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원청업체가 사내하청 근로자를 지휘·감독하지 못하도록 한 파견법과 상충하는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산업안전과 관련한 지시는 불법파견으로 보지 않는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구분이 애매할 수 있다. 오히려 법적 다툼 등 노사갈등만 키울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하면 중대산업재해로 규정하고 있다. 재해강도(요양기간)를 고려하지 않고 있어 경미한 질병까지 중대재해로 간주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통원치료만으로 회복가능한 피부질환자가 3명 이상 나와도 중대산업재해에 해당한다고 기업들은 하소연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이대로 시행되면 경영 불확실성을 키우고 기업가 정신을 크게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 많은 기업인을 범죄자로 만든 배임죄와 같은 ‘한국식 징벌죄’가 또 하나 추가될 게 뻔하다. 배임죄는 처벌기준이 포괄적이고 모호해 “법조문보다 판사 성향에 따라 유무죄가 갈린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기업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이지만, 입법 과정에서 충분한 토론과 여론 수렴 절차가 없었다는 게 기업들의 지적이다. 노사 양측과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라도 진지하게 논의를 거쳐야 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는 산업계 현실과 의견을 제대로 반영해 기업인들이 ‘교도소 담벼락 위를 걷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