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코로나 면역유전자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알기 한참 전부터 아프리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본격 식민지화한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아프리카, 특히 사하라사막 이남을 그때까지 유럽인으로부터 지켜줬던 것은 다름 아닌 풍토병이었고, 일등공신(?)은 말라리아였다.

아프리카인들은 말라리아에 면역을 가진 사람이 많다. 반면 이게 없었던 유럽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19세기 초 아프리카 주둔 백인 군인의 77%가 풍토병으로 사망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키니네라는 말라리아 치료제가 19세기 중반 본격 보급되면서 비로소 아프리카는 유럽인의 지배에 들어갔다.아메리카 대륙에선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15세기 말 콜럼버스의 상륙을 기화로 유럽인이 몰려든 이후 약 100년간 현지 원주민의 80~90%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 학살 등의 이유도 있지만 유럽인들이 가져온 천연두, 홍역 등 전염병이 주원인이라고 한다. 이런 질병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었던 원주민들은 속절없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 애리조나대 연구팀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코로나 감염·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이 지역 사람들이 유전적으로 코로나에 잘 대응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눈길을 끈다. 동아시아인이 2만 년 전 지금 코로나와 비슷한 전염병에 감염돼 완전하지는 않지만 유전자 내에 면역세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반론도 있지만 “인간은 치명적 감염질환에 걸리지 않도록 유전적으로 진화해 왔고, 그 결과 기존 질환에는 내성이 생겼지만 새로운 질환에는 취약해졌다”(네덜란드 라드바우드대 연구팀)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뱀을 잡아먹는 몽구스나 전갈을 먹이로 삼는 미어캣이 치명적인 뱀독과 전갈독에 각각 면역력을 가진 것과도 일맥상통한다.특정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꼭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말라리아 저항 유전자는 동맥경화 같은 심장질환과 연관이 있어 아프리카인은 이런 질병에는 타지역 사람들보다 훨씬 취약하다고 알려졌다.

한국에서 코로나가 상대적으로 억제되는 것이 국민 협조 때문인지, 면역 유전자 때문인지는 계속 논란거리가 될 듯하다. 중요한 것은 선례에서 알 수 있듯이 치명적 역병과 면역 유전자가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코로나가 어떻게 세계 역사를 바꿀지 자못 궁금하다.

김선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