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코로나 면역유전자
입력
수정
지면A35
![](https://img.hankyung.com/photo/202105/AA.26314891.1.jpg)
아프리카인들은 말라리아에 면역을 가진 사람이 많다. 반면 이게 없었던 유럽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19세기 초 아프리카 주둔 백인 군인의 77%가 풍토병으로 사망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키니네라는 말라리아 치료제가 19세기 중반 본격 보급되면서 비로소 아프리카는 유럽인의 지배에 들어갔다.아메리카 대륙에선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15세기 말 콜럼버스의 상륙을 기화로 유럽인이 몰려든 이후 약 100년간 현지 원주민의 80~90%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 학살 등의 이유도 있지만 유럽인들이 가져온 천연두, 홍역 등 전염병이 주원인이라고 한다. 이런 질병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었던 원주민들은 속절없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 애리조나대 연구팀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코로나 감염·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이 지역 사람들이 유전적으로 코로나에 잘 대응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눈길을 끈다. 동아시아인이 2만 년 전 지금 코로나와 비슷한 전염병에 감염돼 완전하지는 않지만 유전자 내에 면역세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반론도 있지만 “인간은 치명적 감염질환에 걸리지 않도록 유전적으로 진화해 왔고, 그 결과 기존 질환에는 내성이 생겼지만 새로운 질환에는 취약해졌다”(네덜란드 라드바우드대 연구팀)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뱀을 잡아먹는 몽구스나 전갈을 먹이로 삼는 미어캣이 치명적인 뱀독과 전갈독에 각각 면역력을 가진 것과도 일맥상통한다.특정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꼭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말라리아 저항 유전자는 동맥경화 같은 심장질환과 연관이 있어 아프리카인은 이런 질병에는 타지역 사람들보다 훨씬 취약하다고 알려졌다.
한국에서 코로나가 상대적으로 억제되는 것이 국민 협조 때문인지, 면역 유전자 때문인지는 계속 논란거리가 될 듯하다. 중요한 것은 선례에서 알 수 있듯이 치명적 역병과 면역 유전자가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코로나가 어떻게 세계 역사를 바꿀지 자못 궁금하다.
김선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