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은의 정밀의료 이야기] 정밀의료의 원조, 테라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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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상은 서울대 의대 핵의학교실 교수(비아이케이테라퓨틱스 대표)테라노시스란 치료를 의미하는 테라피 (therapy)와 진단을 의미하는 다이아그노시스(diagnosis)의 합성어다. 즉 질병의 진단과 치료를 동일한 의약품을 이용하여, 또는 동일한 생화학적 기전의 진단의약품과 치료의약품을 이용하여 동시에 또는 순차적으로 시행하는 것을 말한다. 테라노시스를 위해 고안된 진단의약품과 치료의약품의 쌍을 테라노스틱이라 한다.
치료의약품의 효능·부작용 예측하고 치료 효과 모니터링
테라노시스에 이용하는 진단의약품(주로 영상 바이오마커 의약품)은 테라노스틱 쌍을 이루는 치료의약품의 표적 물질이 체내에 존재하는지, 어디에 분포하는지, 얼마나 활성화되어 있는지를 알려줌으로써 치료의약품의 효능과 부작용을 예측할 수 있게 하고 치료 효과의 모니터링을 가능하게 한다.갑상선암의 방사성요오드 치료는 테라노시스의 효시다. 요오드는 갑상선 세포막의 NIS라는 운반체를 통하여 갑상선 세포에 섭취되어 갑상선 호르몬 합성에 이용된다. NIS는 갑상선암 세포에도 많이 발현되기 때문에 갑상선암 세포에도 요오드가 섭취된다.
따라서 요오드에 방사성동위원소를 표지하여(방사성 요오드) 체내에 투여하고 방사성요오드가 방출하는 감마선을 이용하여 전신 영상을 얻으면 방사성요오드의 분포를 파악함으로써 갑상선암의 전이를 진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이암의 방사성요오드 섭취 정도를 평가할 수 있다.
방사성요오드 섭취가 많은 전이암은 방사성요오드가 방출하는 베타선을 이용하여 방사선 치료를 할 수 있다. 즉 방사성요오드를 이용하여 전이성 갑상선암을 찾아내(진단) 표적치료를 할 수 있다. 테라노시스의 대표적인 예다. 방사성요오드를 이용한 갑상선 기능항진증, 갑상선암 등 갑상선 질환의 테라노시스는 1941년 미국에서 시작했으며 우리나라에는 1960년에 도입됐다.진단·치료 의약품이 동일한 생화학적 기전에 바탕
테라노시스는 정밀의료의 원조다. 테라노시스에 이용되는 진단의약품과 치료의약품이 동일한 생화학적 기전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즉 진단의약품을 이용하여 치료의약품이 작용하는 질병 치료의 표적이 존재하는 지를 평가하고 표적이 확인된 경우에만 해당 치료의약품을 투여하여 치료 효과를 예측하고 치료 성공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아울러 치료 후 다시 진단의약품을 이용하여 치료의약품의 효능을 평가할 수 있다. 동일한 장기 또는 조직에서 생긴 암이라 하더라도 암 세포의 분자적·생화학적 특성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심지어 한 환자에서 발생한 원발암과 전이암도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질 수 있다.
치료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치료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질병의 분자적·생화학적 특성에 따른 맞춤형 치료를 해야 한다. 테라노시스를 통하여 치료 효과를 예측, 평가하고 치료 성공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정밀의료를 구현할 수 있다.
소마토스타틴 수용체를 표적으로 하는 의약품(DOTATATE)에 진단용 방사성동위원소인 ‘갈륨-68’을 표지한 ‘68Ga-DOTATATE’를 투여하면 소마토스타틴 수용체가 많이 발현돼 있는 종양 세포에 결합한다. 따라서 68Ga-DOTATATE를 환자에게 투여하고 종양 영상을 분석해 종양 집적을 평가하면 종 양의 소마토스타틴 수용체 발현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소마토스타틴 수용체가 많이 발현돼 있는 환자에게서는 DOTATATE에 치료용 방사성동위원소인 루테슘-177을 표지한 177Lu-DOTATATE를 투여하여 소마토스타틴 수용체 표적치료를 할 수 있다.
반면에 종양의 소마토스타틴 수용체 발현이 적어 68Ga-DOTATATE의 집적이 보이지 않는 환자에게서는 177Lu-DOTATATE 소마토스타틴 수용체 표적치료의 효능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기존 항암치료 방법을 선택한다. 이처럼 진단의약품과 치료의약품의 테라노스틱 쌍을 이용해 최적의 치료를 수행하고 치료 효과를 평가할 수 있다.
맞춤형 치료로 확장 가능
테라노시스의 개념은 방사성의약품 등 영상 바이오마커 기반의 진단치료의약품을 중심으로 하는 협의의 영역을 뛰어넘어 동반진단 의약품에 기반한 맞춤형 치료로 확장할 수 있다.동반진단의약품 또는 동반진단이란 개별 환자 또는 질병의 생물학적 특성을 평가하여 특정 치료의약품 또는 치료법에 대한 개별 환자의 반응(효능 및 부작용)을 예측할 수 있는 진단의약품 또는 검사법을 말한다.
예를 들어 암세포의 특정 유전자 변이나 바이오마커의 발현을 조사함으로써 특정 항암제에 대한 효능과 부작용을 예측함으로써 투약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또한 동반진단을 신약 임상시험에 활용하여 신약후보물질이 효능을 낼 수 있는 유전자 변이나 바이오마커 발현 등을 보이는 임상시험 대상자를 선별함으로써 임상시험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소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테라노시스와 동반진단으로 특정 치료의약품 또는 치료법에 최적의 반응을 보이는 환자를 선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최적의 치료 방침을 결정해 치료 성과를 극대화하고 비용도 줄일 수 있다. 테라노시스는 동반진단과 함께 정밀의료의 원조이며 기폭제라 할 수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눈독 들이는 테라노스틱
글로벌 제약기업도 테라노스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최근 대규모 인수합병이 이뤄졌다.
노바티스는 2018년 신경내분비종양 테라노스틱인 177Lu-DOTATATE를 개발하고 있는 프랑스 제약기업 AAA를 39억 달러에 사들였다. 이어서 2018년 10월 전립선암 테라노스틱인 177Lu-PSMA-617을 개발하고 있는 미국 제약기업 엔도사이트를 21억 달러에 인수 합병했다.
로슈, 존슨앤드존슨, 아스트라제네카, GSK, 머크, 화이자 등과 같은 빅파마도 테라노스틱 관련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아울러 전 세계적으로 20여 개 스타트업이 제2의 AAA, 엔도사이트를 꿈꾸며 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현재 28개 이상의 테라노스틱 화합물이 2026년 이전 출시를 목표로 임상 개발 중에 있다.
휴먼게놈 프로젝트로부터 촉발된 정밀의료는 지금까지 유전체 의학 중심으로 논의되고 발전하여왔다. 하지만 1940년대 초에 이미 도입되어 정밀의료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영상 바이오마커 기반의 테라노시스는 약물 표적 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정밀의료의 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테라노시스는 정밀의료의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 잡아 현재 1000억 달러 규모인 정밀의료 시장을 획기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기대한다.
<저자 소개>
김상은 서울대 의대 졸업 후, 내과와 핵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해 서울대 의대 핵의학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 최초로 ‘신경화학영상’을 도입했고, 세계 최초로 ‘의약품 영상’을 신약 개발 현장에 실용화했다. 오랫동안 질병 진단과 치료를 위한 분자표적 연구에 헌신했다. ELITE 약물전달기술 플랫폼을 개발했으며, 이를 활용해 항암제 등을 개발 중인 비아이케이테라퓨틱스의 대표로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5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