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석탄재 사면 붕괴 자연재해 아닌 인재"…국가가 90% 배상(종합)

"군사시설 위해 조성된 사면 관리 불량으로 붕괴"…자연재해성은 10%만 인정
"정신적 손해 상당"…피해자 위자료도 인정
2019년 4명 목숨을 앗아간 부산 사하구 구평동 산사태(성토사면 붕괴사고)는 단순 자연재해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에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부산지법 서부지원 민사1부(임효량 부장판사)는 13일 구평동 성토사면 붕괴사고 희생자 유가족과 피해 기업들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 판결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피해 유가족과 기업들은 이번 산사태가 단순 자연재해가 아니라 국가(국방부)가 연병장을 만들면서 폐기물(석탄재)을 이용해 사면을 성토한 것이 붕괴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이 있다고 보고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유족과 피해기업 7곳이 감정평가를 토대로 제기한 소송의 총 피해 청구금액은 39억원 상당이다. 재판부는 자연재해에 따른 인과성인 책임 제한 10%를 제외한 90%에 달하는 35억원 상당의 금액을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인정했다.

피고인 정부는 이번 성토사면 붕괴가 국방부가 점유하고 있는 아래 지역에서 발생했고 연병장이 조성된 이후 수십년이 지난 뒤 발생한 사고라 설치 보존상의 하자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연재해로 인한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현장검증과 전문가 조사 등을 토대로 붕괴한 성토사면이 국방부가 점유한 연병장을 만들기 위해 조성해 그 연관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이번 붕괴가 집중적인 폭우로 인한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성토제(석탄제) 성질에 배수시설 불량 등이 오랜 시간 더해져 설치 보존상의 하자가 누적한 사고로 규정하며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고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피고가 적극적으로 조성한 성토사면이 붕괴한 사고이다"며 "국가는 국민의 재산 안전을 보호할 헌법적인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재산상 손해를 인정함과 동시에 이례적으로 정신적 피해에 따른 위자료도 인정했다. 법원은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피해가 상당하다며 사망자 1명당 위자료 1억5천만을 지급하고 유족과 피해 기업에도 일부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선고 후 원고 측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서면은 "이번 사고에서 법원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생각한다"며 "특히 자연재해에 따른 책임 제한이 10%밖에 인정되지 않은 것은 법원이 이번 사고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족은 "피해 보상을 받을 기회가 생겼지만, 돈으로 다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아직도 국방부 등은 사과조차도 하지 않았고 증거보전 등을 이유로 현장을 임시조처만 해놓고 보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10월 3일 부산에 내린 집중호우 다음날 사하구 한 야산이 붕괴해 주민 4명이 숨지고 산비탈 아래 기업들이 수십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원인을 조사한 대한토목학회 부산울산경남지회는 이번 사고가 일반적인 산사태가 아닌 성토사면(인위적 흙쌓기 비탈면) 붕괴 사고로 판단한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