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인간 사회 꼭 닮은 '꿀벌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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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꿀 공장시골의 한 양봉업자가 벌을 치는 일상을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린다. 그런 콘텐츠를 누가 보겠나 싶지만 채널의 영상 누적 조회수는 6000만 회를 넘는다. 29만여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프응TV’ 얘기다. 시청자 대부분이 양봉장을 실제로 본 적도 없는 2030 세대라는 점이 더 놀랍다. 그런가 하면 출판시장에서는 한 달이 멀다 하고 벌의 생태를 다룬 책이 쏟아진다. 과학은 물론 인문학부터 경제학까지 분석 도구도 다양하다.
위르겐 타우츠, 디드리히 슈텐 지음
유영미 옮김 / 열린책들
320쪽│1만6000원
벌은 왜 인간의 호기심을 이토록 자극하는 걸까. 독일의 세계적인 꿀벌 생물학자 위르겐 타우츠와 25년 경력의 양봉업자 디드리히 슈텐이 쓴 《벌꿀 공장》을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꿀벌 군락이 인간 사회와 놀랍도록 흡사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벌집을 벌꿀 공장에, 꿀벌을 직원에 비유한다. 공장의 종사자는 평균 5만여 마리. 이들의 직무는 인간이 세운 첨단 공장 못지않게 다양하다. 생산자와 경비원은 물론 교육 담당, 난방 담당까지 있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도 있지만 게으름뱅이도 있다는 점까지 비슷하다.
꿀벌 군락이 보여주는 능력은 인간 못지않다. 벌집을 구성하는 육각형의 두께는 오차범위가 0.01㎜ 미만으로 거의 균일하다. 표면은 인간이 컴퓨터로 제어하는 첨단 공작 기계로 깎은 것보다 매끈할 정도다. 이 때문에 현대 천체물리학의 기초를 닦은 17세기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꿀벌이 수학을 안다고 굳게 믿었다. 인간보다 나은 부분도 있다. 꿀벌 사이에는 빈부 격차가 없다. 서로 생산물을 아낌없이 나누기 때문이다. 소련의 볼셰비키가 꿈꾸던 이상적인 집단농장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한편 저자들은 경영전략 수립을 담당하는 기업가인 양봉업자의 역할에도 주목한다. 봄이 오면 벌의 번식 욕구가 거세지면서 개체 수가 증가한다. 살 공간이 부족해진 벌들 중 일부는 뛰쳐나와 인근의 나무 등에 새집을 만드는 분봉(分蜂)을 시도한다. 양봉업자로서는 벌꿀 공장 직원이 그만큼 줄어드니 달가울 리 없다. 그래서 양봉업자들은 자연적인 분봉을 최대한 억제하고 새 벌통에 벌들이 들어가도록 인공 분봉을 유도한다. 본능까지 억눌러 가며 생산물을 착취한다는 비판이 나올 법도 하다.하지만 인공 분봉이 없다면 꿀벌들은 생존을 위협받게 된다. 양봉업자들이 인공 분봉을 하면서 살균 작업을 하지 않으면 꿀벌들이 ‘바로아 진드기’에 감염돼 떼죽음을 당하기 때문이다. 이 진드기에 피를 빨린 유충은 허약한 꿀벌로 자라나고, 장애를 가진 벌이 많아지면서 군락은 2년 내에 전멸하게 된다. 자연 분봉을 하면 각 군락의 경쟁력이 약화돼 외부의 위협에 취약해진다는 이유도 있다. 경제주체 각자의 이기심이 효용을 극대화한다는 ‘보이지 않는 손’이나 능력 있는 경영자의 중요성 등을 떠올리게 된다.
저자들은 어떤 주제의식이나 사상에 대한 언급 없이 꿀벌의 생태와 과학적 지식을 쉽게 풀어내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벌의 여러 면모를 다층적으로 보여주는 덕분에 읽는 사람에 따라 인간 사회에 대한 다양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여타 교양서들처럼 꿀벌의 능력을 신비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최신 연구 결과를 인용해 그 비결을 낱낱이 풀어낸 점도 평가할 만하다. 예컨대 벌집의 정교한 육각형 구조는 벌이 의도한 것이라기보다는 물리 법칙이 작용한 결과다. 이 사실은 2004년 열 적외선 카메라를 사용한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둥그스름한 방을 만든 뒤 난방을 담당하는 벌이 방을 데우면 밀랍이 장력을 받아 팽팽해지고, 이로 인해 저절로 반듯한 육각형이 된다는 설명이다. 정찰을 맡은 벌이 춤을 통해 동료에게 꽃의 위치를 알려준다는 상식도 반박 대상이다. 2000년대 들어 연구자들은 벌이 춤을 해석하는 게 아니라 정찰 벌을 직접 따라가 꽃을 발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