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한 달만에 0.9% 치솟은 물가…Fed 흔들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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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관계자는 "근원 물가가 한 달 만에 물가가 0.9% 올랐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라며 "매달 이렇게 나온다면 산술적으로 한 해 물가가 10% 넘게 오를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습니다.숫자가 나온 직후의 시장 반응은 생각보다는 차분했습니다. 다우 선물은 200포인트 가량 떨어졌고,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연 1.61%에서 연 1.64% 수준으로 3bp(1bp=0.01%포인트) 가량 올랐습니다.
세부 항목을 보면 미 중앙은행(Fed)이 주장하듯 '일시적' 일 수 있는 항목들이 CPI 상승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입니다.
좀 더 장기적 영향을 주는 주거비는 전달보다 0.4% 올랐습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CPI 품목 중 경기 사이클에 민감한 요소들이 여전히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라며 "이 보고서가 인플레이션 압력이 '일시적'이라고 생각하는 Fed의 시각을 바꿀지는 의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백악관은 기저효과를 빼면 헤드라인 CPI가 4.2%가 아니라 2.2%라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투자자들이 CPI 지표를 소화하면서 채권 시장의 금리는 꾸준히 올라 연 1.693%에 마감됐습니다. 이날 상승폭은 3월18일 이후 가장 컸습니다. 금리는 한 때 연 1.708%에 달했습니다. 1.7%대는 지난 3월 말 이후 처음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높은 CPI 수치를 감안하면 채권 수익률 1.7%는 제한된 반응으로 본다"며 "지난 2~3월에 수익률이 급등했었고, Fed가 이번 발표에도 완화적 자세를 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올해 고점이 1.74%였으니 잘 소화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증시의 충격은 채권 시장보다 더 컸습니다. 채권 시장은 지난 2~3월 큰 폭의 조정을 받은 반면 증시에선 올 들어 별다른 조정이 없었던 탓일 겁니다.
거래량이 급증한 가운데 시간이 갈수록 매도세가 가팔라졌습니다. 특히 금리와 인플레이션 상승에 취약한 기술주들의 급락세가 두드러졌습니다. 거대 기술주들마저 대부분 2% 넘게 내리면서 3월 말 수준으로 돌아갔습니다. 애플과 아마존, 그리고 아크 이노베이션펀드(ARKK)는 모두 200일 이동평균선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반면 금리와 물가 상승의 수혜를 누리는 은행, 에너지주 등은 상대적으로 내림폭이 적었습니다. 에너지 업종은 11개 업종 중 유일하게 플러스권(+0.11%)을 지켰습니다. 또 헬스케어, 필수소비재 등 경기방어적 성격을 지닌 업종도 선방을 했습니다.
제임스 나이틀리 ING 이코노미스트는 "4월 CPI가 고점을 찍은 게 아니다. 인플레이션은 앞으로 몇 달간 더 오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광범위한 물가 압력의 증거가 있다. 이를 일시적이라고 보는 Fed의 입장에 대해 점점 더 의심하고 있으며, 결국 Fed가 2024년보다 훨씬 더 빨리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손성원 로욜라메리마운트대 교수는 "컴퓨터칩에서 닭날개까지 모른 게 오르고 있는 가운데 빨리 오르지 않는 유일한 것은 임금과 급여"이라며 "공급이 모자라는 노동 시장을 볼 때 CPI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임금 상승과 기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고문은 "일시적일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오를 가능성이 50대 50"이라고 말했습니다.
Fed에서도 일부 '놀랍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리처드 클라리다 Fed 부의장은 이날 "4월 CPI는 내 예상을 훨씬 웃돌았고, 인플레이션 지표에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그는 "지금 나오는 경제지표에는 상당한 소음이 있다. 정책을 바꾸기 전에 추가 증거를 모으는 게 신중하고,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 상승은 일시적일 가능성이 크지만, 지속하면 Fed는 주저하지 않고 조치할 것"이라고 기존 논리를 반복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이렇게 높아진다면 투자자들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의 크리스 하이지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인플레이션과 기업 이익의 관계를 지켜보라"고 조언합니다.
기업들에게 현재 물가 상승 요인은 넘칩니다. 구리 철강 등 원자재 가격은 최근 랠리를 이어가면서 사상 최고치나 그 수준까지 올라갔습니다. 유가도 팬데믹 이전보다 더 높아졌습니다. 또 공급망 혼란 등으로 인한 물류비와 부품 가격(반도체 등) 등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이런 비용 상승 요인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면 이익이 늘어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익이 줄어들 겁니다.
임금(고용 비용)도 상승하고 있습니다. 소비자에게는 좋은 징조입니다. 게다가 현재 미국 소비자들은 2조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저축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더 높은 가격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이지 CIO는 "이는 가치주, 경기민감주에는 좋은 징조"라고 말합니다.이는 기업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1분기 실적 발표를 보면 기업들의 이익은 전년대비 평균 20% 이상 상승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따르면 가치주는 지난 1분기 성장주에 비해 약 16%(연율)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하이지 CIO는 물가가 오르는 시기에 가격결정력을 가진 경기민감주, 가치주에 관심을 둘 것을 조언했습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