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경제 세계사] 자원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경제사 이야기

(33) 산유국의 좋은 예 나쁜 예
석유수출국기구(OPEC) 정기 총회 모습. 한경DB
역청은 요즘 말로 아스팔트나 타르를 가리키지만, 고대에는 석유를 통칭하던 말이다. 고대인들은 역청을 죽은 고래의 피나 유황이 농축된 이슬로 보았다. 시커멓고 먹을 수도 없는 데다 냄새가 심해 기피 대상이었다. 고대 전쟁에서 역청은 화공을 펼치는 전략 무기이기도 했다. 특히 동로마제국의 ‘그리스의 불’은 역청으로 만든 최종 병기로 유명했다. ‘그리스의 불’ 제조법은 제국의 일급기밀이어서 오늘날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BC 850년께 아시리아에서 유황, 기름, 역청을 혼합한 나프타에 불을 붙여 화공을 펼쳤다는 기록이 있다.

석유가 널리 알려진 것은 근대에 등불 연료로 쓰이면서다. 그러나 석유를 그대로 태우면 매캐한 연기와 냄새가 났고, 별로 밝지도 않았다. 석유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증류하면 연료용으로 적합하다는 생각은 17세기에도 있었지만 현실화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1858년 에드윈 드레이크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조명용 연료를 구하기 위해 땅을 굴착하다 석유를 발견했다. 드레이크는 최초의 유정 굴착자로 이름을 남겼다. 지표면에 고여 있는 역청을 이용하던 수준에서 땅속 채굴을 통해 대량 공급이 가능해진 것이다.

20세기 자동차 시대를 연 오일러시

드레이크의 채굴 목적은 등불용 연료를 찾는 것이었다. 석유를 정제해 나온 등유는 등불용으로 적합해 19세기 후반 세계에 널리 보급되었다.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 유전이 발견되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가는 ‘오일러시’가 일어났다. 이후에 석유를 골드러시 시대의 황금에 빗대 ‘검은 황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초기 석유산업은 등유를 추출하고 남은 검고 끈적끈적한 부산물의 용도를 찾지 못해 태워버리는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정제기술이 발달하면서 등유를 뺀 부산물에서 휘발유, 중유, 경유 등을 추출해냈다. 이것이 2차 산업혁명의 에너지 혁명을 가져왔다. 값싼 에너지가 공급되면서 이를 활용한 기계 발명이 이어졌다. 1885년 독일의 카를 벤츠와 고틀리프 다임러가 거의 동시에 휘발유로 작동하는 내연기관을 장착한 자동차를 발명했다. 1897년에는 루돌프 디젤이 디젤엔진을 개발해 특허를 냈다.

하지만 1900년까지도 휘발유 자동차는 비주류였다. 그해 미국에서 생산된 자동차 4192대 가운데 증기자동차 1681대, 전기자동차는 1575대였고, 나머지 936대만 휘발유 자동차였다. 1908년 헨리 포드가 가볍고 힘이 좋은 저가 승용차 모델T를 개발해 대량으로 보급했다. 이로써 본격적인 자동차 시대가 열렸다.

스탠더드오일에서 석유 메이저로

석유왕으로 불린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1860년대 석유 사업에 진출해 돈을 벌었다. 그는 축적한 자본으로 1870년 스탠더드오일을 설립했다. 록펠러는 1882년 34개 석유회사를 한데 묶어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를 결성했다. 트러스트가 시장을 좌우하면서 경쟁자들은 속속 도산했다. 급기야 1887년에는 반독점 소송이 제기되었고 1890년에는 반독점 셔먼법이 제정되었다.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는 7개 지역회사로 쪼개졌다. 1940년대 들어 일명 ‘일곱 자매’로 불리는 석유 메이저 시대가 시작되었다. 일곱 자매는 엑슨, 모빌, 소칼 등 스탠더드오일 계열 3개사를 비롯해 걸프, 텍사코와 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 영국과 네덜란드의 합작사인 로열더치쉘 등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산유국마다 국영 석유회사를 세워 시장을 주도했다.

‘악마의 배설물’이 잉태한 석유 독재

아랍권과 이스라엘 간 4차 중동전쟁을 기화로 1973년 1차 오일쇼크가 터졌다. 거기다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혁명이 발생하며 2차 오일쇼크가 벌어졌다. 배럴당 10달러 안팎이던 유가가 단숨에 30달러까지 치솟았다. 그 배경에는 1960년 출범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있었다. 석유 공급 과잉으로 인한 석유 메이저의 가격 인하를 막기 위해 결성된 국제기구다. OPEC 회원국은 석유산업을 국유화하고 가격을 인상함으로써 막대한 오일머니를 재정자금으로 확보했다. OPEC 설립을 주도한 베네수엘라의 페레스 알폰소 전 석유장관은 오일머니가 쏟아져 들어오자 ‘석유는 악마의 배설물’이며 국가의 파멸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산유국들은 넘치는 오일달러로 교육과 의료 등 모든 것을 공짜로 퍼주었다. 그러자 국민들의 근로 의욕은 실종되고, 석유 외에 다른 산업기반은 제대로 육성되지 못했다.

산유국일수록 독재국가가 많은데 이를 ‘석유 독재’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사례가 베네수엘라다. 산유국임에도 빈곤율이 높고 물가 폭등, 정국 불안, 생필품 부족, 치안 부재 등으로 사실상 국가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서 재정이 바닥나고 경제 시스템도 붕괴했다. 이처럼 석유가 ‘악마의 배설물’로 작용하는 것은 ‘자원의 저주’의 한 단면이다. 자원 부국일수록 자원 의존도가 높아 다른 산업과 기술이 발붙이기 어렵고 빈부격차가 극심해지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오일머니를 흥청망청 쓰지 않고 경제발전과 빈부격차 해소 등에 쓰는 모범 국가도 있다. 노르웨이는 세계 7위 석유 수출국이지만 다른 산유국과 달리 오일머니로 국부펀드를 만들어 자원 고갈 이후에 대비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국부펀드 규모는 1조달러에 육박한다. 이처럼 자원을 이용해 경제발전과 사회안정을 도모한다면 이는 ‘자원의 축복’이다.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NIE 포인트

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나 최근 일본과 중국 사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국가 간 갈등이 석유자원 확보를 위해서인 이유는 왜일까.

② 풍부한 자원에 지나치게 의존해 경제발전을 못 하는 ‘자원의 저주’와 자원을 바탕으로 성장을 거듭하는 ‘자원의 축복’ 등 두 상반된 결과를 낳는 이유는 무엇일까.

③ 석유와 식량 등 자원을 무기화해서 국가의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앞으로 코로나19 등 전염병 관련 백신도 자원 무기화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