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예술혼을 바친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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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프롤로그>
나라의 위상은 경제력과 올림픽 메달 숫자로 쉽게 가늠할 수 있지만 진정한 선진국의 품격은 예술, 지식산업 등 축적된 정신문화의 가치로 판단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동란 같은 암울한 역사로 우리만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성장시키는 데는 큰 제약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소장가 손창근 씨가 추사 김정희의 불후의 명작 '세한도'를 국립 중앙 박물관에 기증하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일생 동안 모은 세계적 컬렉션을 나라에 기증하고, 한국화 거장 산정 서세옥 화백이 대표 회화. 전각 2,300점과 평생 모은 미술품 990점을 사회에 기증하면서 국민들에게 문화 예술 향유의 큰 행복감을 선사하게 되었다. 영화<우먼 인 골드(Woman in gold), 2015>는 과거 나치에 빼앗긴 숙모의 초상화를 되찾기 위해 8년간 오스트리아 정부와 투쟁한 주인공의 돈보다 귀한 아름다운 추억을 되찾기 위한 지난한 과정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적 발전 위에 정신문화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예술과 학문에 대한 깊은 이해와 대중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소중한 문화유산을 기증한 분들의 고귀한 선의를 존경하고 발전시키는 문화적 토양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오스트리아의 화가로 아르누보 계열의 장식적인 양식을 선호하며 전통적인 미술에 대항해 '빈 분리파'를 결성했다. <키스>, <연인>같은 관능적인 여성 이미지와 찬란한 황금빛, 화려한 색채를 특징으로 성과 사랑, 죽음에 대한 알레고리로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킨 황금의 화가라 불렸다]<영화 줄거리 요약>
추정가만 1,500억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우먼 인 골드' 초상화의 주인공이었던 아델로 블로흐-바우어의 조카인 마리아 알트만(헬렌 미렌 분)은 유명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의 주인공이던 숙모의 초상화를 되찾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그녀의 숙부이자 아델레의 남편이었던 페르낭드가 자신의 조카인 마리아에게 아델로의 초상화를 상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그림은 오스트리아의 박물관에 국가적인 관심을 받으며 보관 중이었고 그녀의 숙모인 아델레가 박물관에 초상화를 기증했다는 유언장을 근거로 그림을 돌려주지 않는다. 마리아는 이에 대한 법정 싸움을 시작하지만 무려 180만 달러의 소송 위탁금이 필요하여 소송을 포기하고 홀로 조용히 여생을 마감하고자 했지만 변호사 랜디 쇤베르크(라이언 레이놀즈 분)의 설득으로 오스트리아 정부와 기나긴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관전 포인트>
A. 마리아가 숙모의 초상을 되찾고 싶어 한 이유는?
어린 시절 자신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자신을 귀여워해 주던 숙모는 너무도 아름답고 고귀했으나 단명했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소중한 유품들은 오스트리아를 침공한 나치들에 의해 강탈 당했다. 저항할 수 없던 마리아는 남편과 필사적으로 미국 LA로 탈출했고 그로부터 50년이 흐른 후 캘리포니아에 살던 언니의 장례식에서 유품인 편지를 통해 이 작품의 존재를 알게 되고 나치에게 빼앗겼던 아름다운 추억을 되찾고, 가족들, 친지들, 이웃들의 억울한 죽음을 기리고 싶었다. 또한 미국으로 망명 후 받았던 슬픔과 고통에 대한 치유를 받고자 했다.
B. 오스트리아의 반응은?
마리아는 오스트리아 정부에게 "초상화를 그대로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박물관에 둘 테니 불법적으로 취득했다는 사실만 인정하라고" 양보 조건을 제시했지만, 오스트리아 당국은 마리아의 순수한 의도를 왜곡하고 돈에 집착한 늙은 여인이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뜻있는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소송을 통해 오스트리아 정부의 나치 독일에 대한 협조, 아니 오히려 나치보다 더 독하게 자국의 유대인을 학대했던 부끄러운 역사를 사과하고 알리는데 협조한다. 그런 국민들이 있었기에 오스트리아는 유럽의 강소 국가로 도약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점의 반성 없이 역사의 왜곡을 계속 시도하는 몰염치한 일본과는 대비되는 점이다.
C. 숙모의 목걸이는 어디로 갔나?
아델 블로흐 바우어 숙모가 죽자 숙부는 마리아에게 숙모의 목걸이를 선물로 준다. 하지만 나치가 침공하면서 숙부가 아끼던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와 다이아몬드 목걸이까지 몰수당한 후 목걸이는 나치의 이인자 헤르만 괴링의 부인 목에 걸리게 된다. 클림트가 그린 숙모의 초상화도 유대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우먼 인 골드(황금빛 옷을 입은 여자)'로 이름을 바꾸면서 숙모의 정체성도 도둑맞게 된다. 마리아가 오스트리아를 탈출하기 전 마지막 인사에서 숙부님 부부는 "자신들을 잊지 말아 달라며(Remember us)" 눈물의 석별을 한다.
D. 마리아가 예술품 반환 위원회에서 한 연설은?
아픈 악몽이 있는 오스트리아에 가고 싶지 않았던 마리아는 변호사 랜디의 간곡한 설득으로 학회에 참석하여 "사람들은 이 초상화에서 유명한 화가를 떠올리겠지만 나에게는 숙모가 보인다"라는 연설을 마치고 비엔나 벨베데레 미술관에 걸린 숙모의 초상화를 보자 자연스레 어린 시절 숙모와 지낸 감회에 젖는다. 마침내 숙모의 초상화인 예술품 환수에 오스트리아 중재 위원회가 마리아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로 불리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초상화와 클림트가 그린 작품은 나치가 강탈 후 68년 만에 마리아를 따라 미국으로 왔다. 금으로 치장한 아델 블로후 바우어 초상화는 마리아의 요청에 의해 미국 뉴욕 노이에(NEUE)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E. 마리아를 크게 도운 2인은?
@변호사 랜디 쇤베르크: 처음에는 엄청난 가격의 예술품 환수에 관심이 있어 시작한 변호였지만, 유명한 음악가였던 자신의 증조부가 학살당한 오스트리아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직접 보고 오열하며 자신의 뿌리에 대해 자각하게 되면서 왜 마리아가 그토록 작품 환수에 집착했는지 공감하게 된다. 그는 마리아가 마지막에 힘들어 포기하려던 예술품 반환 소송을 혼자서 오스트리아까지 가서 진행하는 집념을 보이기도 한다.
@ 오스트리아 잡지사 취재기자 후베르투스 첼린: 나치였던 아버지의 잘못에 대한 속죄로 마리아를 진심으로 돕게 된다. 과거 오스트리아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예술품 반환 과정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에필로그>
2019년 김환기 화백의 작품 '우주'가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무려 132억 원에 낙찰되었다. 그의 작품 속 서글픔, 그리움, 애틋함을 세계인들이 공감한 것이다. 예술세계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고흐의 작품에서 삶에 대한 엄청난 고뇌와 영감을 느끼게 되고, 모네의 수련 연작에서 자연에 대한 우주적인 시선을 통해 삶에 지친 우리에게 치유의 빛을 주듯이 우리는 작품 하나에서 희망, 자유, 평화, 창조, 미래를 배우고 공감하게 된다. 그러한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예술가들과 기증자들의 선의에 경의를 보내며, 지속적인 문화 예술작품의 대중화를 통해 우리나라가 문화 선진국을 통한 초일류 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해본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서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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