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건순의 제자백가] 느린 말도 열흘 걸으면 천리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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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出於藍이란 사자성어의 주인 荀子학생들은 그런 말을 하곤 한다. 우리 부모님은 같은 말을 하고 또 해서 너무 지겹고, 선생님들 역시 같은 잔소리 반복해서 싫다고. 아이들 키우고 가르치는 분들에게 물어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들 하는데, 좋은 교육자는 좀 다르다. 같은 요지의 말을 반복하면서도 기막힌 비유를 들어 이해시키고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면서 가르친다. 제자백가 사상가 중에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도 재미있는 비유와 사례 제시로 학생을 가르쳤던 사람이 있다. 성악설의 아이콘으로만 기억하는 순자다.
인간을 믿고 후천적 노력 긍정한 참스승
好學 모범 보이며 공부 독려한 점도 빛나
순자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의 주인인데, 그 말의 뜻만 생각해 봐도 순자가 교육자라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노력하면 이 선생보다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독려는 선생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가 만든 성어로는 마중지봉(麻中之蓬)이란 말도 있다. ‘삼밭에 난 쑥’이란 뜻으로 ‘좋은 사람과 사귀면 긍정적인 영향을 받아 자연히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는 뜻이다. 특히 학생이 자라나는 환경을 강조한 성어인데 이 말의 원주인도 순자다. 다양한 사례와 비유로 학생들을 가르친 선생이었다는 것은 이런 사자성어만 봐도 알 수 있다.순자 텍스트 총 32편은 사실 강의록이다. 그것도 주제별 강의록이다. 예론(禮論)은 예에 대한 강의록, 부국(富國) 편은 경제에 대한 강의록, 악론(樂論)은 음악과 예술에 대한 강의록이다. 선생이 수업하고 그것을 제자들이 속기해서 차후 기록물들이 정리되면서 텍스트 순자가 된 것인데, 순자 텍스트를 하나하나 읽어보면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그가 기울인 노력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순자는 사실 유가의 적통이 아니기에 안티가 많은 사람이다. 그 안티들도 문장 실력만큼은 인정했다. 유려함과 웅장함을 동시에 갖춘 보기 드문 대문장가로 호평했다. 어떻게든 학업성취도를 올리고, 수업성취도를 높여야겠다고 애면글면했던 사람이라 훌륭한 문장들이 그의 텍스트에 가득 찬 것인데, 문학가로서의 재능과 문장가로서의 실력 이전에 교육자로서의 성실함이 그의 유려한 문장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순자는 주술과 미신적 사고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비상(非相) 편이라고 따로 한 편을 할애해 주술적 사고와 운명론적 사고를 공격했다. 선생의 입장에 서면 학생이 관상이 나쁘다고, 체격이 작다고, 장애가 있다고, 사주가 나쁘다고 안 될 사람이라고 단정하며 제자의 미래를 비관할 수 있을까? 외려 그런 것들과 인간의 성장은 아무 상관이 없으니 그저 노력하라는 말만 할 것이다. 선생이란 그런 존재다.그가 말했다. 군자는 나면서부터 남달랐던 사람이 아니다. 길거리의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준마만이 아니라 느린 말도 꾸준히 열흘을 걸어간다면 역시 천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성악설로만 기억되지만 그는 인간을 믿었고 인간의 노력을 긍정했다. 후천적 노력을 강조한 선생이 바로 순자다.
교육자로서 순자가 가장 빛나는 부분은 호학의 모범을 보인 것이다, 나이 칠십에 초나라에 가서 그는 남방의 노래 초사(楚辭)를 배웠다. 초사는 그가 배웠던 북방의 노래 시경(詩經)과 이질적인 문학인데도, 요새로 치면 백세 가까운 나이에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성상(成相)과 부(賦)라는 문학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가 쓴 부 편은 한나라 때 부라는 독자적 문학 장르로 발전했다. 늘그막까지 학구열을 불태운 사람, 선생이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는 것만큼 제자들을 독려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순자가 말했다. 높은 산에 올라가 보지 않으면 하늘이 높은 것을 알지 못하고 깊은 계곡 가까이에 가보지 않으면 땅이 두터운 것을 알지 못한다고. 그리고 옥이 산에 있으면 풀과 나무들이 윤택해지고 못에 진주가 나면 언덕이 절대 마르지 않는다고 했다. 스스로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되려고 했던 사람, 제자들을 옥과 진주로 키우려고 했던 사람. 며칠 전 스승의 날이었는데, 스승의 날에는 순자를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 학자, 사상가, 철학자이기 전에 선생이었던 사람, 좋은 교육자가 되기 위해 늘 치열하게 살았던 인물 말이다.
임건순 < 동양철학자·‘제자백가 인간을 말하다’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