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리수~임영웅·김호중…트로트에 담긴 눈물의 역사 [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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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였던 1927년 여름. 작곡가 겸 바이올린 연주자 전수린은 순회악극단과 함께 만주를 거쳐 황해도 배천에 도착했다. 여관방에 짐을 푼 그는 일행과 공연을 준비했다. 그러나 장마철이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허술한 가설극장에서 공연을 강행하는 건 불가능했다.
주린 배를 안고 여관방 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던 그는 폐허가 된 개성의 고려 왕궁터를 떠올렸다. 한때의 화려했던 영광은 간 데 없고 낡은 주춧돌과 잡초만 남아 있는 옛 도읍지…. 그 황량한 풍경이 나라 잃은 조선인의 처지와 너무나 닮았다고 느껴졌다. 그날 밤 그는 바이올린으로 악상을 다듬으며 노래 한 곡을 완성했다. 그 옆에서 작사가 왕평은 곡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린 가사를 썼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노래가 한국 트로트의 서막을 장식한 ‘황성옛터’다.
이 노래는 그해 가을 서울 단성사에서 처음 공개됐다. 연극 공연 막간을 이용해 가수 이애리수가 불렀다. 망국의 슬픔을 애조 띤 가락으로 풀어낸 이애리수의 노래에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고 발을 구르며 따라 불렀다. 일부는 극장 의자를 발로 차며 식민치하의 설움을 한꺼번에 토해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일본 경찰이 공연을 중단시키고 노래를 금지곡으로 묶어버렸다.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첫 장을 연 이 노래처럼 트로트에는 그 시대의 인물 군상과 사회상이 그대로 담겨 있다. 몇 년 전부터 다시 불붙은 트로트 열기도 마찬가지다. 구성진 선율로 가슴 속의 빈 구석을 채워주고 현실의 고단함을 달래주기 때문에 모두가 열광한다. 최근 『트롯의 부활-가요로 쓴 한국 현대사』를 펴낸 김장실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가요에는 시대정신이 밸 수밖에 없고, 시대정신은 당대의 굵직한 정치사회적 사건과 필연적으로 연관되는데, 트로트야말로 발생 초기부터 한국인이 겪어야 했던 숱한 풍상과 애환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 책에서 이애리수의 ‘황성옛터’를 비롯해 광복과 6·25 전쟁, 경제성장기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대중음악이라는 렌즈로 깊숙하게 조명했다. 18편의 시대별 히트곡을 통해 100년에 가까운 우리 역사의 이면을 비추면서 작곡·작사·편곡 등에 얽힌 사연까지 구수하게 들려준다.
1930년대 대표곡 ‘꽃마차’에는 망국의 한을 품고 만주로 향하던 한인들의 이민사가 담겨 있고, 1940년대 ‘귀국선’에는 광복과 새로운 세상을 향한 희망의 여정이 녹아 있다.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겪은 1950년대는 ‘가거라 삼팔선’과 폐허 속에서 사라져 간 청춘들의 아픔을 노래한 ‘봄날은 간다’, 휴전 이후 피란지 부산을 떠나는 사람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이별의 부산정거장’…. 1960년대 중반에는 월남전과 중동 건설, 해외 유학 등으로 가족이 흩어진 사회의 ‘기러기 아빠’, 1970년대 경제개발로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분위기를 담은 ‘님과 함께’, 1980년대 남북 이산가족 찾기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낸 ‘잃어버린 30년’에도 한 많은 민족사가 진하게 배어 있다.
그가 보여주는 역사의 앞뒤 장을 들추다 보면 행간에서 그의 노랫가락이 들리는 듯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노래를 즐기며 학업 스트레스와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랬다고 한다. 1979년 행정고시 합격 후에도 늘 그랬다. 1989년 하와이대 박사과정 때에는 미국 학계와 실업계, 정관계 인사들을 상대로 한국 대중가요에 대한 강의도 했다.
그의 노래 실력은 수준급이다. “1990년 10월 직원 몇 분과 함께 강남구 안세병원 사거리 근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곳에 갔을 때다. 그곳에서 조미미의 ‘여자의 꿈’을 부르고 내려오는데 나이 드신 어떤 분이 오라고 손짓했다. 그 자리에 갔더니 ‘자네 노래를 누구한테 배웠나’하고 물었다. 그래서 ‘특별히 지도받는 분이 없이 라디오 등에서 나오는 것을 따라 부르며 배웠다’고 말씀드렸더니 ‘노래를 참 잘하네. 나는 작사가 정두수네. 매주 금요일 등 이틀은 오니까 여기 와서 노래를 좀 불러주게’라고 말씀하셨다.” 미국 공연장에서 노래한 적도 있다. 국회의원이던 2015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광복 70주년 기념 ‘대중가요로 본 한국 근대사회의 발전상’ 콘서트에서 한국 정치인 최초로 노래를 불러 카네기홀 와일 리사이트홀을 메운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는 우리 트로트의 열기가 세계로 확산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전 세계에서 인기 있는 K팝에‘K트로트’까지 합류하면 한류의 영향력이 그만큼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류 열풍이 우연히 터진 게 아닙니다. 과거와 연결이 돼있고, 끊임없이 융합하고 변신하면서 오늘에 이른 겁니다.”
그러고 보니 트로트는 우리 전통 음계를 담은 대중음악이면서 서양 음계까지 자유롭게 넘나드는 폭넓은 음악이다. 초창기 트로트는 7음계 중심의 서양음악과 달리 5음계를 주로 사용했다. ‘라시도미파’의 단조 5음계나 ‘도레미솔라’의 장조 5음계 중 ‘라’ 비중을 높인 음계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5음계뿐 아니라 7음계와 발라드, 록, 댄스 리듬까지 접목하며 다양한 음률을 만들어내고 있다.
TV 예능 트로트 프로그램으로 일약 스타가 된 임영웅도 트로트의 구성진 멜로디를 발라드라는 감성 위에서 활짝 꽃피워낸 경우다.
트로트가 성악 분야를 넘나들기도 한다. ‘트바로티’로 유명한 테너 김호중은 성악 특유의 풍부한 음량에 트로트의 ‘꺾기 창법’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동서양을 잇는 하모니를 창출해냈다. 모처럼 살아난 트로트 열기가 국내를 넘어 해외로 널리 뻗어나가기를 기원하며 수많은 히트곡으로 우리를 울리고 웃긴 음악인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그 물꼬를 이 책으로 열어 준 김장실 전 차관과 책을 읽고 흘러간 옛 노래를 흥얼거리는 독자들에게도 봄꽃처럼 환한 날들이 펼쳐지길 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주린 배를 안고 여관방 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던 그는 폐허가 된 개성의 고려 왕궁터를 떠올렸다. 한때의 화려했던 영광은 간 데 없고 낡은 주춧돌과 잡초만 남아 있는 옛 도읍지…. 그 황량한 풍경이 나라 잃은 조선인의 처지와 너무나 닮았다고 느껴졌다. 그날 밤 그는 바이올린으로 악상을 다듬으며 노래 한 곡을 완성했다. 그 옆에서 작사가 왕평은 곡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린 가사를 썼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노래가 한국 트로트의 서막을 장식한 ‘황성옛터’다.
이 노래는 그해 가을 서울 단성사에서 처음 공개됐다. 연극 공연 막간을 이용해 가수 이애리수가 불렀다. 망국의 슬픔을 애조 띤 가락으로 풀어낸 이애리수의 노래에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고 발을 구르며 따라 불렀다. 일부는 극장 의자를 발로 차며 식민치하의 설움을 한꺼번에 토해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일본 경찰이 공연을 중단시키고 노래를 금지곡으로 묶어버렸다.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첫 장을 연 이 노래처럼 트로트에는 그 시대의 인물 군상과 사회상이 그대로 담겨 있다. 몇 년 전부터 다시 불붙은 트로트 열기도 마찬가지다. 구성진 선율로 가슴 속의 빈 구석을 채워주고 현실의 고단함을 달래주기 때문에 모두가 열광한다. 최근 『트롯의 부활-가요로 쓴 한국 현대사』를 펴낸 김장실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가요에는 시대정신이 밸 수밖에 없고, 시대정신은 당대의 굵직한 정치사회적 사건과 필연적으로 연관되는데, 트로트야말로 발생 초기부터 한국인이 겪어야 했던 숱한 풍상과 애환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 책에서 이애리수의 ‘황성옛터’를 비롯해 광복과 6·25 전쟁, 경제성장기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대중음악이라는 렌즈로 깊숙하게 조명했다. 18편의 시대별 히트곡을 통해 100년에 가까운 우리 역사의 이면을 비추면서 작곡·작사·편곡 등에 얽힌 사연까지 구수하게 들려준다.
1930년대 대표곡 ‘꽃마차’에는 망국의 한을 품고 만주로 향하던 한인들의 이민사가 담겨 있고, 1940년대 ‘귀국선’에는 광복과 새로운 세상을 향한 희망의 여정이 녹아 있다.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겪은 1950년대는 ‘가거라 삼팔선’과 폐허 속에서 사라져 간 청춘들의 아픔을 노래한 ‘봄날은 간다’, 휴전 이후 피란지 부산을 떠나는 사람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이별의 부산정거장’…. 1960년대 중반에는 월남전과 중동 건설, 해외 유학 등으로 가족이 흩어진 사회의 ‘기러기 아빠’, 1970년대 경제개발로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분위기를 담은 ‘님과 함께’, 1980년대 남북 이산가족 찾기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낸 ‘잃어버린 30년’에도 한 많은 민족사가 진하게 배어 있다.
그가 보여주는 역사의 앞뒤 장을 들추다 보면 행간에서 그의 노랫가락이 들리는 듯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노래를 즐기며 학업 스트레스와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랬다고 한다. 1979년 행정고시 합격 후에도 늘 그랬다. 1989년 하와이대 박사과정 때에는 미국 학계와 실업계, 정관계 인사들을 상대로 한국 대중가요에 대한 강의도 했다.
그의 노래 실력은 수준급이다. “1990년 10월 직원 몇 분과 함께 강남구 안세병원 사거리 근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곳에 갔을 때다. 그곳에서 조미미의 ‘여자의 꿈’을 부르고 내려오는데 나이 드신 어떤 분이 오라고 손짓했다. 그 자리에 갔더니 ‘자네 노래를 누구한테 배웠나’하고 물었다. 그래서 ‘특별히 지도받는 분이 없이 라디오 등에서 나오는 것을 따라 부르며 배웠다’고 말씀드렸더니 ‘노래를 참 잘하네. 나는 작사가 정두수네. 매주 금요일 등 이틀은 오니까 여기 와서 노래를 좀 불러주게’라고 말씀하셨다.” 미국 공연장에서 노래한 적도 있다. 국회의원이던 2015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광복 70주년 기념 ‘대중가요로 본 한국 근대사회의 발전상’ 콘서트에서 한국 정치인 최초로 노래를 불러 카네기홀 와일 리사이트홀을 메운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는 우리 트로트의 열기가 세계로 확산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전 세계에서 인기 있는 K팝에‘K트로트’까지 합류하면 한류의 영향력이 그만큼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류 열풍이 우연히 터진 게 아닙니다. 과거와 연결이 돼있고, 끊임없이 융합하고 변신하면서 오늘에 이른 겁니다.”
그러고 보니 트로트는 우리 전통 음계를 담은 대중음악이면서 서양 음계까지 자유롭게 넘나드는 폭넓은 음악이다. 초창기 트로트는 7음계 중심의 서양음악과 달리 5음계를 주로 사용했다. ‘라시도미파’의 단조 5음계나 ‘도레미솔라’의 장조 5음계 중 ‘라’ 비중을 높인 음계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5음계뿐 아니라 7음계와 발라드, 록, 댄스 리듬까지 접목하며 다양한 음률을 만들어내고 있다.
TV 예능 트로트 프로그램으로 일약 스타가 된 임영웅도 트로트의 구성진 멜로디를 발라드라는 감성 위에서 활짝 꽃피워낸 경우다.
트로트가 성악 분야를 넘나들기도 한다. ‘트바로티’로 유명한 테너 김호중은 성악 특유의 풍부한 음량에 트로트의 ‘꺾기 창법’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동서양을 잇는 하모니를 창출해냈다. 모처럼 살아난 트로트 열기가 국내를 넘어 해외로 널리 뻗어나가기를 기원하며 수많은 히트곡으로 우리를 울리고 웃긴 음악인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그 물꼬를 이 책으로 열어 준 김장실 전 차관과 책을 읽고 흘러간 옛 노래를 흥얼거리는 독자들에게도 봄꽃처럼 환한 날들이 펼쳐지길 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