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성 큰 韓 증시…"퇴직연금, 수익률·안전성 동시에 고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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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논란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제도(사전지정운용제)의 근본 취지는 가입자들이 퇴직연금을 예금에만 넣어두지 말고 주식형펀드 등에 투자하도록 유도해 수익률을 높여주자는 것이다. 그래서 디폴트옵션으로 실적배당형만 포함하자는 게 여당과 증권·자산운용업계의 입장이다. 하지만 보험업계 전문가들은 퇴직연금 제도가 시행된 지난 15년 동안 실적배당형과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수익률 격차가 크지 않다고 지적한다. 높은 증시 변동성 탓에 투자 및 회수 시점에 따라 실적배당형이 오히려 수익률이 낮은 사례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디폴트옵션, 실적배당형이냐
원리금 보장형이냐
퇴직연금펀드 과거 성적표 보니
최근 15년 평균 수익률 5.1%
정기예금 2.9%의 두 배 안돼
2008년 등 4년은 '마이너스'
2018년 펀드가 예금보다 수익률 낮아
20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된 2005년 12월 이후 지난해 말까지 15년간 퇴직연금 공모펀드(2020년 말·399개)의 1년 수익률 평균은 5.12%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정기예금 이자율 평균(연 2.90%)과 2.22%포인트 차이다. 반면 이 기간 퇴직연금 펀드가 마이너스 수익률(1년 수익률)을 기록한 해는 2008년(-8.44%) 2011년(-0.10%) 2016년(-0.33%) 2018년(-5.08%) 등 4개 연도에 달했다. 5년 동안 보유했을 때 누적 수익률 기준으로도 2008년과 2018년 각각 정기예금보다 오히려 낮은 성과를 보였다.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2008년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특수 상황으로 인정해주더라도 2011년과 2016년, 2018년에는 그만한 위기가 없었음에도 실적배당형이 원리금보장형보다 성과가 저조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위험 회피 성향의 근로자가 퇴직연금에 대해 스스로 운용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무조건 실적배당형으로 운용하는 것은 수급권 보호에도 문제가 된다”고 주장했다.
김대환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도 “선진국에서 주식시장이 좋지 않을 때 디폴트옵션은 수많은 송사에 휘말리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며 “그때마다 사업자는 물론 (이를 허용해준) 정부까지 곤욕을 치르는데 시장 변동성이 큰 한국에서 실적배당형 중심의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면 혼란은 불 보듯 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형도 포함하도록 한 법안을 발의한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실적배당형 위주의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미국 호주 등과는 사정이 크게 다르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2025년이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서는 등 저출산 고령화 추세가 가팔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호주 등 선진국과 같은 경제 활력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며 “항상 이직 또는 퇴직을 고민해야 하는 근로자로서 마지막 보루와 같은 퇴직연금은 안전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퇴직연금은 안전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
물론 금융투자업계도 할 말은 있다. 우선 디폴트옵션 조항이 발동되기까지 안전장치가 충분하다는 것이다.강민호 금융투자협회 연금지원부장은 “디폴트옵션 대상이 되는 ‘적격 연금상품(펀드)’은 정부 당국의 승인을 받아 원금 손실 가능성을 최소화한 상품으로만 구성한다”며 “근로자가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에 가입할 때 이미 이들 상품 가운데 후보를 선택해 놓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 상품의 만기가 다 됐는데도 가입자가 후속 상품을 결정하지 않을 경우 두세 차례 사전 고지도 하고 총 한 달 반의 숙려 기간이 지난 뒤에서야 앞서 스스로 선택했던 적격 연금상품에 투자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적격 연금상품에는 은퇴 시점 및 시장 상황 등에 따라 자산배분 기능이 내재된 ‘타깃데이트펀드(TDF)’나 밸런스드펀드, 안정적으로 시장 금리 수준의 수익률을 낼 수 있는 ‘SVF(Stable Value Fund)’, 부동산인프라펀드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여기에 원리금보장형이 포함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현상 타파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지금도 DC형 가입자가 실적배당형이든 원리금보장형이든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대부분 원리금보장형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느냐”며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는 취지 자체가 수익률을 조금이라도 더 높여보자고 하는 것인데 현행과 별로 다를 게 없는 상황이 된다면 제도를 바꾸는 의미가 크게 퇴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윤창현 의원은 “실적배당형 상품이 아무리 안전하게 운용되더라도 원리금이 보장되는 상품과 질적으로 다르다”며 “은행 예금도 장기적으로 ‘복리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실적배당형 대비 누적 수익률이 크게 낮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호기/정소람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