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유동성 '피크'의 불안한 징후들

미 중앙은행(Fed)이 제기한 테이퍼링 논의는 20일(현지시간) 월가에선 더 이상 큰 이슈가 아니었습니다. 이날 뉴욕 증시는 큰 폭 반등했습니다. 다우는 0.55%, S&P 500지수는 전장보다 1.06% 올랐고 나스닥지수는 전장보다 1.77%나 급등했습니다. 한 때 2%가 넘게 오르기도 했습니다. 전날 오후 2시 발표된 Fed의 4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이 나온 뒤 시장이 지수 하락폭을 대폭 줄였던 연장선상에서 반등이 이뤄졌다고 보면 될 듯합니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도 이날 1.64% 수준으로 떨어져 어제 장 초반 수준으로 복귀했습니다. 또 어제 회의록 발표 직후 반등했던 달러화 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ICE 달러인덱스는 다시 89대로 내려왔습니다. 89는 강력한 저항선으로 그 밑으로 떨어질 경우 상당한 약세가 이어질 것이란 기술적 분석이 나옵니다. (달러화 약세는 기본적으로 유럽에서 백신 보급이 빨라지면서 유로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이는 Fed가 회의록을 통해 4월 FOMC 회의에서 테이퍼링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는 걸 밝혔음에도 ① 하반기 논의가 시작된다는 건 이미 예상됐다 ② 여러 조건과 가정을 달아놓았다 ③ 파월은 동참하지 않았을 것이다 ④ 4월 FOMC는 실망스런 4월 고용지표 발표 전 열렸었다는 등 (전날 전해드린) 네 가지 시장을 안심시키는 요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시장은 Fed가 테이퍼링 논의를 시작하기를 원하고 있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고문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Fed의 대응이 너무 지연되면서 경기 과열과 인플레이션, 자산 버블 생성을 걱정했는데 테이퍼링 이슈를 꺼내줘 오히려 반겼다는 논리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이날 시장에서는 Fed보다는 최근 나오는 경제 지표에 대한 걱정이 있었는데, 그게 이날 좀 누그러졌다"고 말했습니다. 이달 발표된 4월 신규 고용은 100만 명 수준이 기대됐지만 26만6000명에 그쳤었습니다. 소비자물가(PCI)는 4.2%까지 치솟았고 5월 ISM 구매관리자지수(PMI)는 3월 65로 정점을 찍고 4월에는 60.7를 기록했습니다. 또 가장 활황을 보이고 있는 주택 시장에서도 4월 신규주택 착공 건수도 전월보다 9.5% 감소하는 등 최근 미국의 경제 지표는 정점을 찍고 꺾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씨티그룹이 경제 지표들을 모아 보여주는 경제 서프라이즈 지수(Citi Economic Surprise Index)는 이날 1년여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미국의 경기 개선세가 인플레이션, 구인난 등으로 예상보다 순탄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걱정이 있었죠. 이날 전주 실업급여 청구건수 발표를 앞두고 개장 전 선물시장에선 주요 지수들이 약보합권에 머물렀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오전 8시 반 발표된 실업급여 청구건수는 이런 우려를 어느 정도 덜어줬습니다. 15일로 끝난 지난주 청구건수가 그 전주보다 3만4000건 감소한 44만4000건으로 작년 3월 팬데믹이 본격화된 이후 가장 적은 수치로 나온 겁니다. 월가 예상(45만2000건)보다도 더 적었습니다. 옥스포드이코노믹스는 "고용 회복세가 시작된 뒤 가장 낮은 수치로 계속 낮아지는 추세를 확인시켜줬다"며 "최소 22개주에서 연방정부의 팬데믹 실업급여 지급을 6월 초 중단하기로 한 점 등을 감안하면 앞으로 몇 주간 신청건수 감소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다만 40만 건은 여전히 팬데믹 이전에 비하면 매우 많은 편입니다. 팬데믹 이전엔 주당 20만건 안팎에 머물렀었지요. 게다가 지난 8일로 끝난 주간까지 일주일 이상 연속으로 실업급여를 청구한 건수가 11만1000건 늘어난 375만1000건을 기록했습니다. 올 들어 처음 증가세입니다. 이날 실업급여 청구건수는 4월 고용지표로 인한 경기 걱정을 덜어주긴 했지만 여전히 일부 우려는 남아있는 셈입니다.

콘퍼런스보드가 발표한 지난 4월 미국의 경기선행지수도 1.6% 오른 113.3으로 월가 예상치(1.4% 상승)보다 좋았습니다. 전달엔 0.1% 감소했었습니다. 다만 경기 동행지수는 0.3%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전달엔 0.9% 상승했었지요. 5월 필라델피아 제조업 지수는 전월 50.2에서 31.5로 떨어져 예상보다 둔화했습니다. 세부지수 중 5월 가격지불지수는 전월의 69.1에서 76.8로 크게 올랐습니다.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크게 늘었다는 뜻입니다. 이날 업종, 종목별로 보면 기술주가 일제히 강세를 보였습니다. 지난 사흘간 하락세를 보인 데 따른 기술적 반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이날 금리가 하향 안정된 영향도 크겠지요. 애플(2.1%)과 넷플릭스(2.86%)는 2% 이상 올랐고 다른 거대기술주도 대부분 1% 이상 상승했습니다. 테슬라 주가는 4.14% 이상 올랐고, 코인베이스 주가는 3.83% 이상 상승했습니다. 반도체주와 클라우드주 등도 오랜만에 강세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돈이 몰렸던 분야에서는 계속 빠져나가는 분위기입니다. 이날도 유가가 2% 가량 내렸고 옥수수 커피 등 원자재 가격도 내린 게 많았습니다. 한 때 1000보드피트당 1700달러를 웃돌았던 미국 목재 가격은 1200달러 선이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또 전날 3만 달러까지 급락했던 비트코인은 한 때 9% 오른 4만2000 달러까지 반등했으나 지금은 3% 가량 오른 4만 달러 선에서 등락하고 있습니다. 어제 비트코인이 폭락한 데 대해선 '돈을 빌려 비트코인을 샀던 개인 투자자들이 아케고스캐피털처럼 마진콜에 걸려 강제매매를 당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가상화폐 정보업체인 Bybt.com은 "지난 24시간 동안 77만5000명 이상의 트레이더가 86억 달러 상당의 암호화폐 강제청산을 당했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사실 그렇게 급락했으면 기술적으로 이날은 강하게 반등했어야하는데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겁니다. 이는 미국 재무부의 규제와 Fed의 가상화폐 관련 발표가 잇따랐기 때문입니다.

미 재무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가상화폐는 탈세 등 이미 광범위한 불법 행위로 상당한 탐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며 시장 가치가 1만 달러 이상 가상화폐를 거래할 때는 국세청(IRS)에 신고해야한다"고 밝혔습니다. Fed는 올여름 디지털 달러의 도입을 위한 일정을 논의하기 시작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제롬 파월 의장은 홈페이지에 이례적으로 비디오 메시지를 올려 암호화폐와 핀테크 혁신 등이 "적절한 규제와 감독의 틀에 관심을 기울어야만 한다"며 "올여름 디지털 결제에 대한 생각을 개괄적으로 보여주는 논문을 출간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게리 겐슬러 위원장은 이날 연설에서 "노동자 가계의 저축을 가지고 노는 나쁜 금융시장 참여자를 공격적으로 추적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트레이딩의 게임화를 막고, 거래정보 판매 등 시장 구조를 개선하며 공매도 등과 관련된 투명성 강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월가에서는 이런 정부의 규제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가상화폐 시장이 갑자기 너무 커지는 바람에 중국처럼 한 번에 금지시키거나 누를 수는 없는 상태"라면서 "미 정부는 이를 꾸준히 조금씩 규제하면서 거품을 뺀 뒤에 Fed가 자체 가상화폐를 내놓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가상화폐, 원자재 등이 본격적인 하락세를 타기 시작한 게 지난 5월 7일입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의 금리 상승 경고가 있은 뒤 사흘 뒤이며, 4월 고용지표가 매우 실망스럽게 나타났던 날입니다. 전자는 막대하게 풀렸던 유동성이 정점을 찍을 수 있다는 뜻이었고, 후자는 경기 회복세가 예상보다 순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JP모간은 "암호화폐는 결국 넘치는 유동성에 의한 투기의 전형(poster child)이었고, 이게 지금 위축되고 있다는 사실은 위험자산 시장이 이제 다가오고 있는 유동성의 피크에 적응하기 시작했다는 생각에 믿음을 준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상황을 매우 냉소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Fed가 말만할 뿐 정말 긴축하는 건 어려울 것이고, 이는 가상화폐 가격을 부추길 것이란 분석입니다.

즉 Fed는 미국 경제를 너무 쉬운 돈(easy money)에 중독시켜 놓아 이를 회수하기 시작할 경우 금융시장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테이퍼링을 하겠다,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등 말로만 자산 버블이 생기는 걸 막으려할 뿐 실제 양적긴축(QT)이나 금리 인상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특히 미국은 '401K'로 불리는 연금자산의 상당액이 미국 증시에 투자되어 있기 때문에 Fed의 긴축으로 인해 증시가 무너질 경우 미국인들의 연금 자산도 동반 부실화될 위험도 큽니다. Fed가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도박을 하지 않을 것이란 논리입니다.

도이치뱅크는 이날 보고서에서 "미국의 테이퍼링 논의와 별개로 Fed의 자산은 미래에 훨씬 더 커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짐 리레이드 전략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미국의 재정적자의 비율(GDP 대비 30~35%)이 계속 유지된다고 가정한다면 Fed의 자산은 현재 8조 달러 이하에서 2050년에는 40조 달러 안팎으로 불어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지난 1년간 Fed의 대차대조표가 5조 달러 가까이 증가했다"며 "2050년 40조 달러는 그리 많은 액수도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재정 지출을 보면 재정적자 확대 국채 발행 Fed의 자산매입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물론 증세를 추진해서 적자를 메우겠다는 계획이지만 그만큼 증세가 가능할 지에 대해선 민주당 내부에서도 부정적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입니다.

달러가 계속 뿜어져 나올 가능성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는 사라지지 않을 것’(사모펀드 칼라일의 데이비드 루빈스타인 설립자)이란 전망에 힘을 싣습니다. 가상화폐 투자자인 루 커너 퀀텀이노코믹스 총괄은 CNBC에 출연해 "가상화폐는 변동성이 크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지속적으로 상승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며 "몇 년 뒤 비트코인이 100만 달러에 달할 것이란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CNBC의 켈리 에반스 앵커가 '그렇다면 가상화폐 시장이 25조 달러가 되어 S&P 500의 시가총액 35조 달러와 맞먹는데 말이 되느냐'고 묻자 그는 "앞으로도 수많은 달러가 몰려나와 자산 버블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