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 푸르지오 헤리시티, 힙지로·노포와 이웃이라니[이송렬의 맛동산]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 들어서는 '세운 푸르지오'
빠르게 변하고 있는 을지로서 찾은 한 청국장집
인류 역사를 통틀어 생존의 기본이 되는,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들어본. 맞습니다. 의(衣)·식(食)·주(住)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생 숙원인 '내 집 마련'. 주변에 지하철은 있는지, 학교는 있는지, 백화점은 있는지 찾으면서 맛집은 뒷전이기도 합니다. '맛동산'을 통해 '식'과 '주'를 동시에 해결해보려 합니다.

맛집 기준은 기자 본인의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맛집을 찾는 기준은 온라인,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매체를 활용했습니다. 맛집으로부터 어떠한 금액도 받지 않은 '내돈내먹'(자신의 돈으로 직접 사 먹는 것)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오랜만에 서울에 아파트가 공급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대우건설이 중구 인현동 2가 세운지구에 공급하는 세운 푸르지오 헤리시티(세운 푸르지오)입니다. 지하 9층, 지상 26층 규모로 지어지는 이 단지는 임대주택 40가구를 포함, 총 321가구가 들어올 예정입니다. 작년에 공급했던 건 도시형 생활주택이었고, 이번에는 아파트가 들어온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습니다.을지로4가 역에서 내려 9번 출구로 나와 직접 세운 푸르지오가 들어서는 곳까지 걸어봤습니다. 야구 명문 덕수중학교를 지나 시끄럽지 않은 가구거리가 이어지고, 5분 정도 걷자 바로 세운 푸르지오 공사 현장이 나타납니다. "이게 바로 시내 아파트의 장점이구나"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바로였습니다.

단지는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니 약 10분 정도면 다 돌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중구청 사거리에 인근으로 큰 길에 위치에 있다는 점은 장점입니다. 다만 가구와 인쇄물을 실어 나르기 위한 오토바이와 택배차량이 많이 오가고 있어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설 현장 바로 옆에는 서울시가 2017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세운상가 일대 공중보행로 조성사업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세운상가-청계상가-대림상가 구간은 개통됐습니다. 대림상가-삼풍상가-호텔PJ-인형상가-진양상가를 잇는 구간은 올 9월 개통할 예정입니다. 공중보행로의 높이는 건물 2~3층 정도 높이였습니다. 사람이 몰리는 을지로의 특성상 향후 공중보행로가 만들어지면 세운 푸르지오 저층 주민들은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세운상가를 빠져나와 을지로3가역과 충무로역에 가까워질수록 먹을 곳도 많고 볼거리도 많았습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종로 3가에 있는 익선동 거리까지 걸어갈 수 있습니다. 조용한 동네인 줄 알았는데 '힙지로'(힙스터+을지로)라는 명성처럼 반전의 매력이 나타납니다.

인근을 돌아다니다 보니 슬슬 배가 출출했습니다. 어떤 식당을 갈까 한참을 고민하다 청국장을 파는 한 노포(老鋪)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원래의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좁은 골목길에 청국장 색깔의 '충무로 청국장'이라는 간판이 보였습니다. 15년째 한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이 집은 메뉴가 두 가지뿐입니다. 점심에는 청국장 정식을, 저녁에는 더덕 낙지(생굴) 보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따로 주문을 할 필요 없이 인원수만 말하면 자연스럽게 음식이 나옵니다. 구수한 보리차로 입맛을 돋우며 기다리자 음식이 나왔습니다. 저녁 메뉴인 더덕 낙지 보쌈에 포함된 메뉴는 보쌈·순대·더덕구이·굴전·조개전·낙지·대패삼겹·영양부추무침·새우·무말랭이·보쌈김치·절인배추와 상추·계란찜·청국장·옛날도시락 등 총 17가지 음식입니다.
대표 메뉴인 청국장부터 한 숟갈 떴습니다. 사실 콤콤한 냄새 때문에 청국장을 즐기는 스타일을 아닙니다만 이 집의 청국장은 냄새가 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맛이 약하지도 않습니다. 한 마디로 아주 깔끔한 청국장입니다. 함께 나온 보쌈도 아주 부드럽고 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보쌈 고기를 마늘 양념에 24시간 숙성해 매일 하루 세 번 가마솥에 삶아낸다는 게 주인장의 설명입니다.

굴과 홍합 등이 들어간 전과 빨간 양념의 더덕구이, 부드러운 계란찜 등 주메뉴 못지않은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로 입안이 지겨울 새 없이 즐겁습니다. 처음 음식이 나왔을 때는 ‘이걸로 양이 찰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다 먹고 나니 포만감도 상당했습니다.청국장을 정석으로 맛보고 싶다면 점심을, 청국장과 함께 술을 찾는다면 저녁에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격도 합리적입니다. 청국장 정식은 인당 8000원, 더덕 낙지(생굴) 보쌈은 인당 1만4000원입니다.
식사를 하면서 밖의 풍경을 상상해봤습니다. 아파트, 오피스텔 등이 새로 들어서고 그 사이사이에는 오래된 노포들이 있고…. 최근 신도시나 역세권 주변과는 확연하게 다른 풍경이 예상됩니다. 문정동이나 마곡지구 주변에도 이처럼 새로 들어선 1~2인 가구 주택들이 많습니다. 주변은 프랜차이즈 식당이나 배달음식으로 대변되는 고칼로리 음식들이 즐비합니다. 이 곳의 풍경과는 확연하게 차이납니다.

먹고 살기에 착한 물가, 시내로 출퇴근하기에도 부담없는 거리이니 교통비도 적게 들겠네요. 집은 어떨까요? ‘세운 푸르지오 헤리시티’ 아파트의 분양가는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아 3.3㎡당 평균 2906만원으로 책정됐습니다. 최고가를 기준으로 전용 24㎡A는 3억6310만원, 24㎡C는 3억8850만원, 28㎡A는 4억3180만원, 29㎡A는 4억6250만원, 29㎡C는 4억6770만원, 42㎡는 6억7820만원입니다.

모처럼 만나는 아파트에 착한 분양가다보니 청약자들도 넘쳤습니다. 서울 2년 이상 거주자를 대상으로 하는 1순위 해당지역 청약에서 141가구 모집에 4126명이 신청한 겁니다. 평균 29.3대 1로 모든 주택형의 청약을 끝냈습니다. 7가구가 배정된 전용 42㎡에서는 2754명이 몰려 393.4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습니다.단지 명에서 '헤리시티(Hericity)'는 문화유산을 뜻하는 헤리티지(Heritage)와 시티(City)의 합성어하고 합니다. 세운지구가 가지고 있는 역사와 전통이라는 유산적 가치를 반영한 혁신적 주거공간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소형에 나홀로 아파트라는 점은 아쉬웠지만, 직장 생활의 고단함을 풀어줄 수 있는 이같은 입지는 서울에서 드물다고 생각됩니다. 참! '힙지로'는 덤입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