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뻐서 카드 만들었다가, 한 달만에 해지합니다"

카드업계 'PLCC' 열풍…소비자 이득은 "글쎄"
'제휴카드'와 달라 기본 혜택 '無'

전월 이용실적도 낮지 않아
장기적으로 소비자 비용 오를 수 있단 지적도
사진=현대카드
지난해 12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배달의민족 사용이 급증하자, 배민 현대카드를 발급받았다는 A씨. 이번 달까지 최대 5.5% 포인트 적립 혜택이라는 말에 혹해 발급했는데, 다음 달에는 관련 혜택을 전부 받을 수 없게 됐다. 이달 실적이 20만원에 그쳤기 때문이다. 배민 현대카드의 경우 당월 이용실적이 30만원으로, 그 이상을 써야만 혜택이 제공된다.

올해만 'PLCC' 12개 나온다…'현대카드' 성공 영향

최근 카드업계에는 특정 기업에 혜택을 몰아주는 '상업자 표시 신용카드'(PLCC) 열풍이 불고 있다. 배민 현대카드와 스타벅스 현대카드는 물론 무신사카드, 커피빈카드, 메리어트카드 등 수많은 PLCC가 쏟아지고 있다. PLCC카드는 일반 제휴카드와는 다르다. 카드사 브랜드가 아닌 제휴 기업의 이름을 앞세우고, 모든 혜택을 한 기업에 '올인'하는 게 특징이다.올해 PLCC 출시량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1월부터 5월 중순까지 출시된 PLCC만 9개다. 이달 출시 예정인 카카오페이·삼성카드, 하반기에 출시될 해피포인트·KB국민카드, 네이버·현대카드까지 합하면 올해에만 총 12종의 PLCC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대카드가 2015년 이마트와 손잡고 국내 첫 PLCC를 내놓은 이래 최고치다. PLCC 출시량은 2017년 2개, 2018년 6개, 2019년 7개, 2020년 9개의 추이를 보여왔다.
사진=현대카드
카드업계 전체가 PLCC에 달려든 데에는 현대카드가 성공을 거둔 영향이 컸다. 현대카드는 지난해 대한항공, 스타벅스, 배달의민족 등과 손잡고 PLCC를 집중적으로 출시했다. 이에 힘입어 현대카드의 지난해 실질 회원 수는 870만명에서 930만명으로 7%가량 확대됐다. 실적도 크게 증가했다. 현대카드는 지난해 전년 대비 56.2% 증가한 2536억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빅4 카드사' 중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파급력도 좋았다. 특히 스타벅스 현대카드는 출시 3주 만에 5만장을 발급하면서 깜짝 성과를 냈다. 통상적으로 새로 출시된 카드의 경우 한 달간 1만개 발급도 쉽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카드사들이 PLCC에 목을 매는 이유도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다.카드업계 관계자는 "현대카드의 성공 영향뿐만 아니라, 탄탄한 고객층을 확보한 기업과 제휴하면 신규 고객 확보와 락인(Lock-in) 효과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PLCC 열풍을 일으킨 요소"라며 "최근에는 기업들과 데이터 제휴까지 맺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PLCC로 창출할 수 있는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PLCC 쏟아지고 혜자카드 사라진다…소비자에 이득일까?

카드업계의 효자 상품으로 몸값을 올리고 있는 'PLCC'. 그러나 이 같은 현상이 소비자에게도 이득으로 작용할지에 대해선 의문점이 적지 않다. 자신이 애용하는 브랜드가 명확할 경우 집중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를 제외하면 이득을 기대할 만한 게 없어서다.

먼저 PLCC는 제휴카드와 달리 기본 혜택이 없다. 일반적으로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카드사 포인트가 적립되거나, 결제일에 청구할인이 되는 것이 '기본 혜택'이다. 그런데 PLCC의 경우 전월 실적을 모두 충족해도 현대M포인트, KB포인트리 등의 카드사 포인트 적립은 1원도 받을 수 없다. 신용카드 사용에 따라 적립된 카드 포인트가 계좌 입금, 카드 이용대금 결제 등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에 따라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사진=KB국민카드
이처럼 기본 혜택이 전무한데 충족해야 하는 전월 이용실적이 낮은 편도 아니다. 스타벅스 현대카드는 전월 20만원 배민 현대카드는 당월 30만원, 커피빈 KB국민카드는 전월 50만원을 사용해야 포인트 적립 등의 혜택이 제공된다. 대부분 신용카드 상품의 평균 전월 이용실적 기준이 3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같거나 높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PLCC가 소비자에게 '혜자카드', 즉 낮은 연회비에 비해 혜택과 서비스가 좋은 카드 자리를 대체하긴 쉽지 않다. 오히려 밥 먹을 때, 커피 마실 때, 여행 갈 때, 영화 볼 때 모든 곳에서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혜자카드의 입장을 막는 요소가 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카드사 입장에서 일반 신용카드, 제휴카드를 개발해 출시하는 것보다 PLCC를 내놓는 게 영업비용 절감 차원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7개 전업 카드사에서 220여종의 카드가 비용 절감을 이유로 단종됐다. 이 중에는 롯데카드의 '라이킷펀', 우리카드의 '카드의정석 위비온플러스', KB국민카드의 '탄탄대로 미즈앤미스터 티타늄' 등 소비자들에게 '혜자카드'로 불리던 신용카드들이 다수 포함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휴카드의 경우 카드사가 상품, 카드 혜택, 마케팅 등을 전담하지만 PLCC는 기업과 협업을 통해 개발하기 때문에 카드사의 마케팅 비용이 절반가량으로 줄어든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제휴사와 함께 운영해 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제휴사의 충성 고객까지 흡수할 수 있어 매력적인 요소도 많다. 카드사들이 PLCC 출시에 전념할수록 혜자카드의 입장 가능성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범용 혜택 카드가 시장에 나와 있는 상황에서 몇 개의 카드사가 PLCC를 출시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나 모든 카드사들이 PLCC에 공격적으로 나서는 것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다양한 혜택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추후에는 더 큰 비용을 치르고 카드를 가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