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문제는 마케팅의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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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신간 서적 저자 기고■ 「플라스틱은 어떻게 브랜드의 무기가 되는가」저자, 김병규 연세대 교수
소비재 시장의 제조사와 유통사들이 최근 가장 어려워하는 문제는 플라스틱일 것이다. 언론에서는 버려진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 오염 문제를 다루는 기사가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고, 정부의 규제책은 나날이 강화되고 있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달라는 소비자의 요구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플라스틱 용기나 포장재의 사용을 무작정 줄이기도 어렵다. 플라스틱만큼 경제적이고 내구성이 높은 소재를 찾기도 어렵고, 재활용이 쉽도록 용기나 포장 디자인을 변경하는 것은 자칫 제품의 가치를 낮출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많은 기업은 마케팅적으로 ‘플라스틱 위기’를 벗어나려는 선택을 하기가 쉽다.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 문제에 대한 실질적으로 기여하기 보다는 기업에 ‘그린’ 이미지를 만들어서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플라스틱 문제를 마케팅적으로 풀어내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한 방법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역효과를 내서 기업에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도 있다.
기업이 환경 문제를 마케팅적으로 접근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환경 문제의 해결이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많은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에 나서고 있고 일회용품 분리 배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환경 피해도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언론 보도도 계속 증가할 수 밖에 없고, 환경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는 소비자들도 많아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환경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질수록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과 마케팅적으로 ‘그린 이미지’를 만들려는 기업을 분명하게 구분지으려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밖에 없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그린 워싱(Green washing)’이라는 용어의 사용이다. 그린 워싱은 미국의 환경운동가 제이 웨스터벨트(Jay Westervelt)가 제안한 것으로 실제로 환경 문제에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마치 도움이 되는 것처럼 기업의 활동을 과장하거나 거짓으로 속이는 마케팅 활동을 말한다. 미국의 언론과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그린 워싱이 오래 전부터 기업의 환경 관련 활동을 평가할 때 중요한 기준으로 여겨진 반면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그린 워싱이라는 말 자체가 잘 사용되지 않았다. 그만큼 실질적인 환경 보호 활동과 마케팅적 활동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언론이나 소비자들 사이에서 그린 워싱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하고 있다.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사람들이 진정성 있는 환경 보호 활동과 그린 워싱을 분명하게 구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환경 문제를 마케팅적으로 해결해서는 안되는 또 다른 이유는 MZ 세대의 특성이다. MZ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지칭하는 말로 1980~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사람들을 말한다.
MZ세대는 소비 빈도가 높고 온라인에서 강한 구전 효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소비재 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소비자층이다. 그리고 이들은 기존 세대들과 비교하여 진실성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가지는 세대다.
시대를 막론하고 젊은 소비자들은 자신이 기성세대와는 다르다고 느끼고 싶어해 왔다. 기성세대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기존 것들과는 다른 제품이나 브랜드를 소비함으로써 자신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시대마다 젊은 소비자들이 기성세대와 자기 자신을 다르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요인은 다르기 때문에 현재의 젊은 소비자들이 스스로를 기존 세대와 다르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요인이 새로운 유행과 문화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MZ세대에게는 진실성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들은 기업이 보다 진실되기를 원하고, 진실된 기업의 제품을 소비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기존 세대와는 다르다고 인식한다.
MZ세대의 소비자들은 진실된 브랜드를 원한다. 기업의 운영 방식이 윤리적이길 바라고, 사회 문제에 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바란다. 특히 환경 문제에 있어서 기업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이들은 환경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브랜드를 응원하고, 이런 브랜드의 제품을 소비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게 된다. 반면 진실되지 않다고 여겨지는 브랜드는 아무리 제품의 품질이 좋고 가격이 저렴해도 거침없이 비판을 하고 등을 돌리게 된다.
2020년 여름, 소비자 환경단체 ‘쓰담쓰담’은 ‘스팸 뚜껑 반납 운동’을 벌였다. 해외에서 판매되는 스팸에는 뚜껑이 없는데 국내 제품만 플라스틱 뚜껑이 있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MZ세대를 중심으로 퍼진 ‘제로웨이스트 챌린지’와 맞물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결국 스팸 제조 업체는 소비자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 그해 추석 스팸 선물세트에서 노란 플라스틱 뚜껑을 없앴다.
브랜드가 MZ세대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는 환경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필수적인 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이제 소비재 기업에게 필요한 것은 ‘그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환경 보호를 위해 기여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플라스틱 용기와 포장재를 많이 사용하는 소비재 제조기업과 유통사들은 어떻게 환경 보호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다음 화에서 찾아보도록 하자. 마케터를 위한 지식·정보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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