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하나에 설명서 84장?"…'종이먹는 하마' 된 금소법

'ESG 경영 역행' 논란
당정이 법정 최고금리 인하를 추진한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이 ESG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금융사는 금소법에 따라 투자상품에 가입하는 소비자에게 약관과 계약서, 투자 설명서 등을 의무적으로 제공해야하는데, 대부분을 종이 출력물 형태로 교부하고 있다.

30일 은행권에 따르면 은행 창구에서 ‘피델리티글로벌배당인컴펀드’에 가입할 경우 챙겨야 할 투자설명서가 A4지 84장 분량에 달한다. 여기에 투자정보확인서, 결과표 사본 등 추가 서류 9장을 더하면 소책자 한 권 분량인 93장의 서류를 받아야 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비자들 대부분이 받은 서류를 창구에 두고 간다”며 “‘누굴 바보로 아느냐’며 항의하는 일도 종종 있다”고 했다. 은행 창구에선 “금소법 시행 전보다 최소 1.5배는 서류가 늘었다”고 설명한다. 투자상품의 난도가 높아질수록 서류가 많아진다는 설명이다. 소비자가 상품 가입 후 마음이 바뀌어 ‘청약철회권’을 행사하면 가입 때 교부했던 서류 만큼을 다시 출력해야한다.

금융당국은 “각종 서류를 이메일 등 전자문서 형태로도 소비자에 교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강화된 ‘상품 설명 의무’를 다하려면 결국 출력물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은행들의 항변이다. 또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사고 시 설명의무 이행 책임을 금융사에 지도록 해 이메일로 교부를 한 소비자가 ‘못받았다’고 하면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금소법 늘어난 종이 출력물이 ESG 경영, 비대면 금융 트렌드와 동떨어진다는 데 있다. 최근 국내 은행들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페이퍼리스(종이 없는 업무환경)’ 선언하고 있지만 금소법 관련 출력물이 늘어나 빚이 바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금소법에 더해 고난도투자상품에 대한 숙려제도까지 시행되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최근 파생결합펀드(DLF) 등의 상품 판매를 중단한 은행들이 문제다. 이들이 영업을 재개하려면 자산운용사에서 규정에 맞는 설명 서류를 제공해야 한다. 고객 유치를 위한 종이 출력물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금소법을 도입할 때부터 모바일 서류교부와 페이스 ID, 지문인증을 활용한 인증 등 다양한 방식을 고민하지 못한 점이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