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벌과 인류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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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9
날아다니는 벌 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무엇일까. 아마도 많은 이가 쏘일지 모른다는 두려움, 혹은 달콤한 꿀부터 떠올릴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이 ‘벌=꿀벌’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벌 중에는 쏘지 않는 벌도 꽤 있다. 잎벌, 고치벌, 맵시벌과 같은 종은 침이 없다. 벌침은 암컷의 산란관이 변한 것이다. 따라서 수벌은 종류와 무관하게 모두 쏘지 못한다. 다른 벌이나 곤충을 잡아먹는 말벌처럼 꿀을 모으지 않는 벌도 있다.
전 세계에는 10만 종이 넘는 벌이 있으며, 우리에게 친숙한 꿀벌 종류만도 5700가지나 된다. 기원전 7000년께 스페인 동굴벽화가 그려진 것을 보면 양봉의 역사는 근 1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에는 인도 중국을 거쳐 1세기 초 고구려에 양봉술이 전해졌다고 한다.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꿀을 귀한 식품이자 약으로 써왔지만 정작 벌에 대해서는 양봉 관리 차원 이상의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그런데 2000년대 초반 양봉업자들은 꿀벌 수가 급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08~2013년 미국 전역에서 야생 꿀벌의 4분의 1 정도가 사라졌다는 논문도 있다. 지구의 극이동부터 공해, 살충제, 바이러스, 기생파리, 전자파, 와이파이 등 여러 원인이 지목됐지만 아직도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문제는 벌이 사라지면 꽃가루를 옮기는 수분에 막대한 지장이 생긴다는 점이다. 유엔환경계획(UNEP)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작물의 70%가량이 벌에 의존한다고 한다. 아이슈타인의 발언으로 알려진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4년 내 멸망한다”는 경고가 새삼 피부에 와닿는다.
지난 20일은 생태계에서 벌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유엔이 정한 ‘세계 벌의 날’이었다. 할리우드 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이날 몸에 페로몬을 바르고 벌을 유인해 18분간 벌에 뒤덮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하찮은 존재로 여겼던 벌의 소중함을 환기하기 위한 행사였다.정말 벌이 멸종하면 인간이, 혹은 지구 전체 생명이 위험할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꽃가루받이의 30~40%가량은 나비, 파리와 같은 다른 곤충, 그리고 새와 박쥐 등이 담당한다고 한다. 분명히 생태계에 적잖은 충격이 있겠지만 ‘인류 멸망’은 다소 과장됐다는 얘기다. 다만 그런 날이 오면 진짜 ‘꿀맛’은 다시는 맛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전 세계에는 10만 종이 넘는 벌이 있으며, 우리에게 친숙한 꿀벌 종류만도 5700가지나 된다. 기원전 7000년께 스페인 동굴벽화가 그려진 것을 보면 양봉의 역사는 근 1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에는 인도 중국을 거쳐 1세기 초 고구려에 양봉술이 전해졌다고 한다.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꿀을 귀한 식품이자 약으로 써왔지만 정작 벌에 대해서는 양봉 관리 차원 이상의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그런데 2000년대 초반 양봉업자들은 꿀벌 수가 급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08~2013년 미국 전역에서 야생 꿀벌의 4분의 1 정도가 사라졌다는 논문도 있다. 지구의 극이동부터 공해, 살충제, 바이러스, 기생파리, 전자파, 와이파이 등 여러 원인이 지목됐지만 아직도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문제는 벌이 사라지면 꽃가루를 옮기는 수분에 막대한 지장이 생긴다는 점이다. 유엔환경계획(UNEP)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작물의 70%가량이 벌에 의존한다고 한다. 아이슈타인의 발언으로 알려진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4년 내 멸망한다”는 경고가 새삼 피부에 와닿는다.
지난 20일은 생태계에서 벌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유엔이 정한 ‘세계 벌의 날’이었다. 할리우드 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이날 몸에 페로몬을 바르고 벌을 유인해 18분간 벌에 뒤덮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하찮은 존재로 여겼던 벌의 소중함을 환기하기 위한 행사였다.정말 벌이 멸종하면 인간이, 혹은 지구 전체 생명이 위험할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꽃가루받이의 30~40%가량은 나비, 파리와 같은 다른 곤충, 그리고 새와 박쥐 등이 담당한다고 한다. 분명히 생태계에 적잖은 충격이 있겠지만 ‘인류 멸망’은 다소 과장됐다는 얘기다. 다만 그런 날이 오면 진짜 ‘꿀맛’은 다시는 맛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