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상습추행 목사 "신체특징 아는지 물어보자" vs "2차 가해"

신체 감정 신청 두고 변호인단과 검찰·피해자 변호사 간 공방
항소심 재판부 "2차 피해 우려돼 고민" 서면 검토 후 결정키로
"피고인의 신체에 제삼자가 봐도 정말 눈에 띌만한 특징이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피고인에 대한 신체 감정과 함께 피해자들에게 확인할 기회를 주십시오."
"어떤 특징인지 모르겠지만, 피해 당시 어린 피해자들이 눈을 똑바로 뜨고 목격했을 거라고 보기 어렵고 신체 감정 신청 자체가 충격적입니다.

2차 가해로까지 느껴집니다. 불필요한 절차입니다.

"
교회와 지역아동센터에 다닌 아동들을 상습적으로 추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70대 목사 측이 재판부에 신체 감정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찰과 피해자 변호사가 2차 피해를 우려해 반발하면서 법정에서는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이에 재판부는 변호인의 신청서와 검찰과 피해자 변호사의 의견서를 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26일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박재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A(70)씨의 청소년성보호법상 청소년 강간 등 혐의 사건 항소심 두 번째 공판에서 A씨 측은 신체 감정을 요청했다.

A씨의 변호인단은 "신체에 누가 봐도 눈에 띌만한 신체적 특징이 있어 피해 주장이 사실이라면 기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어린 피해자가 갑자기 당한 일에 신체 특징까지 정확히 보기 어렵다"며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피해자의 변호사도 1심 재판 당시에도 이 같은 질문이 나왔으나 재판부에 제지당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신체 감정 자체가 충격이고, 2차 가해로 느껴진다"며 "불필요한 절차"라고 맞섰다.
항소심 재판부도 "10년도 더 된 일이고, 피해자들로서는 지우고 싶은 기억일 텐데 특징을 기억해야만 범죄 사실을 믿을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난색을 보였다.

그러나 A씨 측은 "피해자들이 유사성행위만 50∼100회 있었다고 주장하는 등 굉장히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어 피해 주장이 사실이라면 피고인의 특징을 알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신체 감정 후 서면질의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신체 감정 허가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자 재판부는 "2차 피해 우려가 있어 절차상 고민이 된다"며 서면으로 신청서와 의견서 등을 검토한 뒤 결정하기로 했다.

A씨 측은 또 이날 공판에서 "피해자들과 증인들이 당시 A씨가 운영한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사실조회를 신청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다만 A씨 측이 요청한 교회 관계자에 대한 증인신문은 보류하고, 현장검증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2008년 여름 B(당시 17세)양을 사무실로 불러 유사성행위를 하고, 비슷한 시기 B양의 동생 C(당시 14세)양을 상대로도 가슴을 만지거나 사무실로 불러 끌어안은 뒤 입을 맞추는 등 상습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2019년 피해자들의 고소로 법정에 선 A씨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1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추행 경위와 방법, 범행 장소의 구조, 범행 전후 피고인의 언행, 범행 당시 느낀 감정 등을 일관되게 진술한 점 등을 근거로 유죄라고 판단했다.

판결에 불복한 A씨는 항소했고,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명령 청구 기각에 불복한 검찰도 항소했다.

한편 기독교반성폭력센터는 이날 서울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 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씨에게 면직과 제명의 징계를 내리고, 교회 내 성폭력 문제를 침묵으로 회피하지 말고 성폭력 전담 기구 설치와 가해자 처벌에 관한 규정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A씨에 대한 다음 공판은 6월 23일 열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