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매장, 분명 한산한데 왜 대기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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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MO Insight“공장을 통제하면 품질을 관리할 수 있지만, 유통을 통제하면 브랜드 이미지를 관리할 수 있다.”
전주언 안양대 교수의 「1분 마케팅」
럭셔리 브랜드와 지각된 혼잡도
- 루이비통의 전 회장 겸 최고경영자 이브 카르셀(Yves Carcelle)
얼마 전 필자는 지난달에 개장한 ‘더현대 서울’에 입점해 있는 ‘구찌’ 매장 앞을 지나가다가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평일이라 백화점은 전반적으로 한산했지만 구찌 매장 앞에는 적지 않은 쇼핑객들이 키오스크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입력한 후 매장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코로나19 방역지침 때문에 매장 혼잡도를 관리하는 것인가 생각했지만 매장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구찌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럭셔리 브랜드 매장 안이 한산함에도 불구하고 쇼핑객들을 매장 밖에서 기다리도록 통제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쾌적한 쇼핑 환경을 제공하려는 서비스라 판단할 수 있지만 럭셔리 브랜드라면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매장 출입제안 정책은 럭셔리 브랜드 매장을 둘러보는 쇼핑객들에게 그 공간에 머무는 동안 사회적 지위(social status)에 따른 영향력(social power)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염두에 둔 서비스로 보고 있다. 매장 혼잡도를 다룬 기존 연구들을 살펴보면, 특정 공간에 수용 가능한 인원이 초과해 공간 기능을 상실한 경우의 여부로 혼잡도를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혼잡도는 다양하게 정의되지만 마케팅과 유통학에서는 지각된 혼잡도(perceived crowding)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각된 혼잡도란 개인이 지각하는 공간의 밀집도를 의미한다. 즉 동일한 크기의 공간이라 하더라도 개인이 지각하는 공간은 다르고 밀집도 역시 다르게 지각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사회적 지위에 따라 개인이 선호하는 공간의 크기는 다르다는 것이다. 높은 사회적 지위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개인이 활동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을 선호한다. 즉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집단 구성원들로부터 어느 정도의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두어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개인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넓은 공간을 찾는 것이다. 기업 임원실, 고위 공직자들의 집무실 그리고 대학 총장실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럭셔리 브랜드에서 시행하는 매장 출입제한 정책은 매장 안에 들어온 쇼핑객들에게 넓은 개인 공간을 제공해 그 공간 내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배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럭셔리 브랜드는 성취지향적이며(promotion focus), 이상적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필자는 위와 같은 사례를 논의할 때, 명품(名品)이 아닌 럭셔리 브랜드(luxury brand)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적절하다고 보고 있다. 명품은 국어사전에서 ‘뛰어나거나 이름이 난 물건이나 작품’으로 정의된다. 반면에 럭셔리는 ‘사치스러운’ 혹은 ‘호화로운’으로 정의된다.
명품과 럭셔리는 유사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다르다. KBS 장수 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에 등장하는 우리의 고미술품들을 럭셔리하다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마케터를 위한 지식·정보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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