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복수는 정의로운가…주저하는 햄릿, 망설임 없는 탄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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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1
'인간'의 조건을 되묻다
고전의 색다른 해석 - 햄릿 x 귀멸의 칼날
셰익스피어 '햄릿'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가족복수 두 작품의 주인공
고뇌하는 '인간' 햄릿이
판타지적 '인물' 탄지로보다
비루한 일상의 현대인에
낯설지 않은 존재
내 지난 선택 실패의 역사를 떠올리며 ‘누르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민할 때, 오른쪽 엄지에 확신을 준 것은 친구들의 입소문이었고, 황사에 단비처럼 오랜만에 며칠 밤을 새워 정주행했다. 나아가 극장판까지 보고 온 중년의 열성이라니.
‘귀멸의 칼날’의 기본 소재는 ‘복수’다. 그중에서도 ‘가족의 복수’는 무협만화 주인공의 가장 주요한 행동 동기로 많은 무협소설과 만화에서 반복돼 왔다. 가족을 위해 인간이 변형된 괴물인 혈귀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은 마치 좀비 무비처럼 우리에겐 익숙하다. 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폭발적 관심은 기본적인 작품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팬데믹 시대에 ‘나’ ‘우리 가족’을 위협하는 ‘외부의 적’이라는 현재 상황과 그로 인한 집콕시대 환경이 흥행을 가속화한 결과로도 분석된다.그런데 하나하나씩 혈귀를 해치우며 전투력도 상승해가는 무적의 탄지로도 극한 상황에서 회의한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난 늘 참았어. 난 장남이라서 참아냈지만 둘째였다면 못 참아냈을 거야. 난 장남이야, 장남이야”라며 인간적 두려움을 드러내지만 곧 가족을 위한 행위의 당위성으로 승화시킨다. 다른 한편 “혈귀도 추악한 괴물이 아니라 나와 같은 인간”이었고, 그래서 “공허하고, 슬픈 생물”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악당에게서도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 대한 믿음’을 발견하는 주인공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끝없이 맑고 정의로운 소년에게서 인간미가 없어 보인다면 내가 너무 의심하는 자라 그럴까. 그러나 다행히도 탄지로의 회의가 ‘햄릿’처럼 이어지지는 않는다. 해치워야 할 악귀가 끊임없이 나타나니까!
‘가족 복수’ 역사의 대표작은 물론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다. ‘햄릿’을 안 읽은 독자는 있어도 그 유명한 ‘햄릿’의 대사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못 들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인공인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로, 죽은 선왕이 유령으로 나타나 동생에게 독살당한 자신의 복수를 당부한다. 선왕의 죽음 후 삼촌 클로디어스와 결혼한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에게 분노와 배신을 느낀 햄릿은 미친 척하며 이들의 음모를 파헤치고, 결국 모두가 죽는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된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돌팔매를 맞느냐, 끝장을 내느냐” 중 어느 것이 더 고귀한 것인지를 고민하는 햄릿의 행동의 귀결은 유추되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햄릿’은 단순히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죽어서가 아니라 주인공의 이 내적 갈등으로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로 불리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두 주인공의 행위 동기가 ‘장남들이 가족의 복수를 대신한다’는 것인데 적이 존재하는 위치가 다르다. ‘귀멸의 칼날’에 외부의 배신(적)이 있다면, ‘햄릿’에는 내부의 배신(적)이 있다. 싸우는 대상이 밖에 있는 탄지로가 판타지적이라면 싸우는 대상이 안에 있는 햄릿은 설정부터 비극성을 내재하고 있다.몇백 년 전의 희곡인 ‘햄릿’의 내용이 지금도 낯설지 않은 것은 ‘인간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비극 명제로부터 기인하는 것일 게다. 그런 면에서 끝없이 맑은 탄지로-파란 하늘과 맑은 물만 있는 평화로운 탄지로의 내면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철저히 판타지적 인물이다. 주인공이 승리한다고 믿는 것이 판타지가 된 우리의 현실은 그래서 비루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현대인도 복수를 꿈꾼다.
그러나 현시대 우리에게는 되갚아야 할 사회적 복수는 사라지고 개인적인, 너무나도 개인적인 일상적 비극과 그에 대한 소심한 복수가 그 자리를 대신한 지 오래다. 급작스러운 퇴사 통보로 내 섭섭한 분노를 불러낸 직원의 카톡을 잠깐 못 본 척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복수 같은 것 말이다. 오늘 나의 비극은, 책의 상태를 보아하니 소전서림에서 첫 번째로 ‘햄릿’을 읽은 자라는 것이다. 햄릿적 복수를 할 대상도 없는, 이렇게 오늘도 복수는 나만의 것이 된다. “생각 말자-약한 자여, 네 이름은 인간이로다.”(햄릿 1막2장 146행 변형)
황보유미 < 소전서림 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