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째 반복되는 '금융범죄의 클래식'…폰지 사기를 경계하라

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 폰지 사기

신규 투자자가 맡긴 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 줄 돈 '돌려막기'
언젠가는 탄로날 수밖에 없어

1920년대 美 사기범 이름서 유래
금융위기 직후 73조원 피해사례도
"고수익을 쉽게 버는 방법은 없어"
지난달 14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교도소에서 한 82세 노인이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2009년 징역 150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던 버나드 메이도프(사진)다. 그는 역사상 최악의 금융 사기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이다. 공식 집계된 피해액만 650억달러, 우리 돈으로 73조원에 달했다.

메이도프는 1970년대 초부터 2008년까지 월 10% 안팎의 고수익을 미끼로 136개국 3만7000여 명에게서 투자금을 모았다. 자신의 이름을 딴 ‘버나드 메이도프 투자증권’을 세워 투자 전문가로 행세했다. 그런데 그는 투자자가 맡긴 돈으로 주식을 사지 않고 은행 계좌에 넣어뒀다. 신규 투자자가 맡긴 돈으로 기존 투자자의 수익금을 지급하는 돌려막기만 했다.

유명한 사기꾼 이름에서 따온 말

경기가 어려울 때도 입금이 꼬박꼬박 이뤄진 데다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까지 지낸 메이도프의 ‘후광’ 때문에 투자자들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직후 투자금 반환 요구가 빗발치면서야 사기극의 실체가 드러났다. 메이도프가 저지른 수법은 전형적인 ‘폰지 사기(Ponzi Scheme)’다.

폰지 사기라는 말은 1920년대 찰스 폰지라는 사람이 미국에서 벌인 사기 범죄에서 유래했다. 폰지는 해외에서 사들인 국제우편 쿠폰을 미국에 들여오면 환율 차를 이용한 차익거래(arbitrage)가 가능하다는 점을 내세웠다. 이를 미끼로 ‘45일 뒤 원금의 50%, 90일 뒤 원금의 100% 수익’을 약속하자 4만 명이 1500만달러(약 170억원)를 맡겼다. 그러나 실상은 아무런 사업을 하지 않으면서 나중에 들어온 사람 돈으로 먼저 들어온 사람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다단계 사기였다. 폰지의 정체는 신규 투자자 유입이 뜸해지면서 1년 만에 탄로나고 말았다. 그는 징역 3년을 살고 출소한 이후 다시 부동산 사기를 벌이는 등 구제 불능의 삶을 살았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런 범죄를 폰지 사기로 부르기 시작했다.

메이도프 사건은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배우 케빈 베이컨, 전설적 투수 샌디 쿠팩스 등 유명 인사들이 피해자 명단에 대거 포함돼 파장을 일으켰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엘리 위젤은 “우리는 메이도프를 신으로 여겼고, 그의 손에 모든 것을 맡겼다”고 했다. 메이도프와 가족은 고급 저택과 요트, 전용기 등을 사들여 호화 생활을 누렸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수차례에 걸쳐 그의 행적을 조사했지만 문제점을 적발하지 못한 대목은 의문으로 남아 있다.메이도프는 지난해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만성질환을 이유로 법원에 석방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역사상 가장 지독한 금융범죄를 저질러 아직도 피해자들이 고통받고 있다”며 기각했다. 피해자들의 배상 요구를 견디다 못한 메이도프의 장남은 2010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차남은 2014년 병으로 사망했다.

저위험 고수익은 존재하지 않는다

폰지 사기는 시공을 초월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금융 범죄의 클래식’이다. 지난해 경제신문을 연일 장식했던 ‘라임 사건’도 여러 펀드를 만들어 자금을 돌려막다가 뒷감당을 못한 사례다. 최근 불어닥친 암호화폐 투자 광풍도 비슷한 논란에 휩싸여 있다. 한쪽에선 암호화폐를 “미래의 디지털 자산”으로 치켜세우지만 다른 한쪽에선 “실체가 없는 코인으로 폭탄을 돌리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누구 얘기가 맞는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고수익에 고위험이 따른다는 것은 투자의 기본 상식이다. 폰지 사기는 쉽게 돈을 벌고 싶어 하는 ‘호구’들을 공략한다. 19세기 미국에서는 술집들이 식사를 덤으로 제공하는 마케팅이 유행했다. 저녁에 술을 한 잔 마시면 다음날 점심이 무료였다. 여기에 혹해 많은 애주가가 몰려들었는데, 음식 간이 꽤 짭짤해서 조금씩 먹다 보면 결국 맥주를 연거푸 시켜야 했다. 공짜인 줄 알았던 식사가 술값에 모두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을 손님들은 영수증을 받아들고 나서야 깨달았다. 여기서 탄생한 말이 “공짜 점심은 없다”이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