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물기업 원봉, 정수기 불모지 日에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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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정수기 수출량 매달 증가일본은 아시아에서 ‘정수기 불모지’로 불린다. 정수기를 설치할 때 벽에 구멍을 뚫는 타공(打孔)을 꺼리는 경향이 강한 데다 생각보다 물이 깨끗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강한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일본에서는 대형 페트병을 이용해 물을 따르는 냉온수기가 널리 쓰이고 있다.
소비자 인식 바뀌며 수요 늘어
日 냉온수기 ODM 분야 1위
지난해 530억원 수출 달성
자체 브랜드 '루헨스' 판로 개척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은 정수기·냉온수기 전문기업 원봉이 일본 정수기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의 냉온수기 부문에서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시장 1위를 차지한 여세를 몰아 일본 정수기 ODM 시장까지 장악하겠다는 각오다.
“일본 정수기 판매망 집중 공략”
원봉은 지난해부터 일본 현지 기업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신규 정수기 판매망을 꾸준히 개척했다. 일본에서 비인기 제품으로 꼽히던 정수기의 소비층이 최근 두터워진 점을 포착한 결과다. 김영돈 원봉 회장(사진)은 “냉온수기의 대형 페트병을 매번 교체하는 방식에 번거로움을 느낀 소비자가 서서히 정수기 사용을 늘리는 추세”라며 “정수기 물도 안전하고 깨끗하다는 인식이 일본에 뒤늦게 퍼져나가며 이 제품 수요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이 덕분에 올해 수출량을 전년보다 늘리는 데 성공했다. 원봉의 일본 정수기 수출량은 올 들어 매달 증가하고 있다. 김 회장은 “정수기를 사용하는 일본인이 많아지면서 현지 정수기 기업이 원봉에 잇따라 ‘ODM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1990년대부터 일본에 진출한 원봉은 현지 냉온수기 ODM 시장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일본에만 4745만달러(약 530억원) 규모의 냉온수기를 수출했다. 일본 1~5위 냉온수기 브랜드가 전부 원봉 제품을 납품받는다. 원봉의 지난해 전체 해외 매출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74.8%에 이른다.
이처럼 일본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꾸준한 시장 분석과 제품 연구가 있었다. 김 회장은 “원봉 설립 당시부터 다양한 정수기를 분해·조립하고, 소비자가 선호하는 모델을 꾸준하게 분석하며 제품을 생산했다”며 “원봉의 냉온수기는 다른 제품에 비해 가격이 절반 미만이면서 품질이 뒤지지 않아 일본 기업들이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공청기·샤워필터 수출도 늘려”
일본 내 정수기·냉온수기 소비자는 현재 10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원봉은 이들을 겨냥해 정수기뿐 아니라 공기청정기·샤워필터 등 기타 제품군 판매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공기청정기는 원봉에서 정수기·냉온수기 못지않은 주력 제품이다. 지난해 공기청정기 수출액은 2019년보다 83% 늘었다. 해외 소비자 사이에서 실내 공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영향이라는 게 원봉의 설명이다. 김 회장은 “지난해 전체 매출의 64%가 해외에서 발생했을 정도로 원봉에 해외 시장은 중요하다”며 “믿을 수 있는 환경가전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앞세워 꾸준하게 현지 입지를 확장할 것”이라고 했다. 원봉은 현재 60개국에 ODM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ODM 전문기업’이라는 인식에서 탈피하기 위해 자체 브랜드인 ‘루헨스’ 제품군도 강화 중이다. 2008년 선보인 루헨스는 원봉이 직접 개발·생산한 환경가전을 판매하는 브랜드다. 초기에는 몇 종의 정수기를 판매하는 정도였지만, 최근 3년 새 제품군이 크게 늘었다. 현재는 정수기와 공기청정기, 샤워필터를 판매한다. 원봉 매출 중 루헨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다.
루헨스 수출에도 조금씩 시동이 걸리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 소비자의 선호도가 높다. 원봉의 싱가포르 수출 물량 중 루헨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32%에서 지난해 50%로 늘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