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전조 스토킹]⑤ 과연 스토킹 제대로 막을까…"스토킹처벌법 곳곳 허점"

스토커들, '피해자 접근금지' 긴급조치 무시 일쑤…"솜방망이 '과태료' 처분, 징역형으로 강화해야"
'반의사불벌죄' 악용한 피해자 협박도 우려돼…미성년자 대상 스토킹, '가중처벌'도 없어
전문가들 "'피해자 보호법' 별도로 만들어 피해자 철저하게 보호해야"

살인의 전조 스토킹 / 연합뉴스 (Yonhapnews)
탐사보도팀 = 조주빈과 함께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성 착취물을 제작·공유한 혐의를 받는 강모(25) 씨는 공익근무요원 시절 조주빈에게 한 어린이집 원아를 살해해달라며 돈과 함께 어린이 신상 정보를 넘겼다.

이 어린이는 강씨의 고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의 딸이었다.

강씨는 7년간 이 교사에게 문자메시지 등으로 협박과 스토킹을 일삼았다. 교사의 집으로 협박 편지까지 보내 상습협박 등 혐의로 붙잡혔지만, 처벌은 징역 1년 2개월에 그쳤다.

출소 뒤 강씨는 구청에서 일하며 담임교사의 딸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강씨의 사례는 스토킹이 살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흉악한 범죄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데 오는 10월부터 시행되는 스토킹처벌법은 강씨와 같은 스토킹 범죄자를 확실하게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글쎄요"라고 말한다.

실제 일어났던 스토킹 사례를 통해 스토킹처벌법의 '구멍'과 보완해야 할 점을 살펴본다. ◇ '100m 이내 접근금지' 한다지만…"남자가 15초면 뛰어가는 거리"
30대 여성 A씨는 전 남자친구 B씨에게 이별을 통보했다가 지속적인 괴롭힘에 시달렸다.

사과하겠다며 찾아온 B씨는 A씨를 흉기로 협박하기까지 했다.

참다못한 A씨는 민사상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고, 이 신청이 받아들여져 B씨는 A씨로부터 100m 이내에 접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별 소용이 없었다.

이후 B씨는 1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A씨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자신을 지켜보는 B씨를 발견할 때마다 A씨는 소스라치게 놀라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B씨는 경찰이 출동하면 잠시 몸을 피했다가 다시 나타나곤 했다.

경찰에 아무리 신고를 해도 소용없었다.

A씨는 불안감에 시달려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법안 첫 발의 후 22년 만에 오는 10월부터 시행되는 스토킹처벌법은 스토킹 행위로부터 피해자를 즉시 보호하기 위해 경찰이 '긴급응급조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스토킹 가해자가 피해자에 100m 이내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고, 전화·문자메시지·이메일 등 전자기기를 통한 연락도 금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피해자 보호에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우선 100m가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인 거리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A씨 사례처럼 이 조항을 교묘하게 회피해 1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스토킹을 계속할 경우 막을 방법이 없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00m는 성인 남성이 15초면 접근할 수 있는 거리"라며 "필요한 경우 스토킹 가해자와 피해자를 더 멀리 떨어뜨려 놓을 수 있도록 유연하게 법 조항을 만들어 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보호 긴급응급조치의 최대 기한이 6개월에 불과하다는 점도 허점으로 꼽힌다.

스토킹 행위를 신고받은 경찰은 우선 긴급응급조치를 한 뒤 검찰에 잠정조치를 신청하고, 법원에서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후 2개월 범위에서 두 번 연장이 가능해 최장 6개월 동안 피해자 보호 조치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너무 짧다는 의견이 많다.

법무법인 진실의 박진실 변호사는 "스토킹 범죄는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이어질 정도로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범죄"라며 "이를 고려해 최장 6개월의 긴급응급조치 기간이 끝나더라도 재연장이 가능하도록 법규를 다듬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대학에서 처음 만난 후배로부터 스토킹을 당한 한 여성의 경우 후배의 구애를 거절한 후 무려 30년 동안 이 후배로부터 스토킹을 당했다고 한다.

이수경 법무법인 더도움 변호사는 "스토킹 가해자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6개월 이내에 모두 끝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을 수 있다"며 "이 경우 긴급응급조치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법원에서 허가해 스토킹 피해자를 확실하게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접근금지 어겨도 '과태료' 처분 불과…'반의사불벌죄'도 논란 불러
몇 달간 스토킹에 시달리던 직장인 C씨는 가해자를 경찰에 고소했으나, 고소 이후에도 수백 통의 전화와 문자메시지에 시달렸다.

이후 민사상 접근금지 가처분이 이뤄져 전자기기를 통한 연락 등이 금지됐지만, 가해자는 전화와 문자를 멈추지 않았다.

지속적인 협박에 시달리던 C씨는 결국 직장과 주거지를 옮겨야 했고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긴급조치가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가해자를 C씨와 같은 피해자로부터 완전히 분리하고, 모든 형태의 접촉을 차단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피해자에게 집착해 정신적, 물리적 가해를 계속하는 스토커들이 적지 않다.

물론 피해자의 소송 제기를 통해서만 가능한 '민사상 접근금지 가처분'과 달리 스토킹처벌법은 경찰의 판단에 따라 즉각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접근금지 등 경찰의 긴급조치를 어겼을 경우 처벌이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에 불과한 것은 그 실효성에 의문을 품게 한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스토킹 가해자의 피해자에 대한 집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긴급조치가 실효성을 지니려면 가해자가 의도적으로 이를 어긴 사실이 드러날 경우 과태료가 아닌 징역형 등 형사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스토킹처벌법이 '반의사불벌죄'이라는 점도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를 말한다.

이를 악용해 가해자가 스토킹 범죄를 신고하지 못하도록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고소 취하, 합의 등을 강요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과거에 성범죄 피해자들이 반의사불벌죄로 인해 고통당한 사례가 많다.

가해자가 성폭력 고소를 취하하라고 피해자나 그 가족에게 압박과 협박을 일삼고, 이를 견디다 못한 피해자가 고소 취하 등에 합의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스토킹 피해자도 이러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은) 스토킹처벌법을 만들 때 스토킹을 '지인 간에 벌어지는 애정 문제' 등으로 취급하던 기존 관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폭력 처벌에 관련된 법률의 경우 2013년 개정을 통해 친고죄(범죄 피해자 등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범죄)와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모두 폐지했다.

◇ 미성년자가 피해자여도 '가중처벌' 없어…전문가들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 만들어야"
20대 남성 D씨는 전 여자친구인 고등학생 E양과 헤어진 뒤 "다시 사귀어달라"고 계속 연락하면서 E양이 다니는 학교와 학원, 집을 수차례 찾아갔다.

E양이 학교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교문 앞에 차를 대고 기다리기도 했다.

E양이 "한 번만 더 찾아오면 스토킹으로 신고하겠다"고 하자 I씨는 "이게 무슨 스토킹이냐"며 되레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피해자가 미성년자라고 하더라도 가해자를 가중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은 스토킹처벌법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꼽힌다.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청소년기에 스토킹을 당하면 평생 이어질 정신적 외상을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18세 미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스토킹을 가중처벌하며, 통상 3∼5년의 징역형을 피할 수 없다.

특히 미시간주는 미성년 피해자보다 5살 이상인 가해자가 가중처벌 사유가 있는 스토킹을 하면 10년 이하 징역 등 엄벌에 처한다.
신민영 법무법인 예현 변호사는 "미성년자를 스토킹한 범죄자에 대한 별도의 가중처벌 조항이 없다는 것은 스토킹처벌법의 한계 중 하나"라며 "미성년자에 대한 스토킹 범죄를 엄단할 수 있도록 양형 기준을 정하고, 미성년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로 불리는 스토킹 범죄의 피해자들을 철저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스토킹처벌법과 별도로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보호 법규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법'과 같은 강도 높은 피해자 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1998년부터 시행된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법은 개정 등을 통해 피해자를 철저하게 보호할 수 있는 각종 내용을 담았다.

가정폭력의 경우 과거에는 접근금지 상태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면 과태료를 부과했으나, 지금은 '징역형'까지 처할 수 있도록 했다.

피해 당사자로 한정됐던 접근금지는 그 '가족'까지 범위를 확대됐다.

조사를 마친 가해자는 귀가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지금은 상황에 따라 구속해 조사한다.

나아가 경찰에게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고 피해자 임시숙소를 마련토록 하는 '응급조치 의무'를 부여하며, 경찰이 관련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그 이유를 소명하도록 했다. 신민영 변호사는 "기존의 법안으로는 가정폭력 피해자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법이 제정되고 강화된 것"이라며 "이러한 선례를 따라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을 만들어 스토킹 범죄의 피해자를 철저하게 보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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