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바그너 장인'의 팔순 기념공연이 전하는 메시지 [김동욱의 하이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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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리 타이지로(飯守泰次郎)라는 일본 지휘자의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한국에선 낯선 이름입니다. 유명 레이블의 음반이나 내한 공연으로 접한 분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선 지명도가 적지 않은 분이라고 합니다. 특히 바그너 전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요.
이분이 얼마 전 '팔순' 기념으로 도쿄시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리하르트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하이라이트를 연주했습니다. '팔순' 잔치마저 연주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극도로 아름답지만 가수들을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는다는 바그너 곡의 성찬으로 마련한 것입니다. 수차례에 걸쳐 일본에서 바그너 주요 작품을 전곡 연주했던 '바그네리안'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모리 타이지로 도쿄시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명예 지휘자는 휴식시간 포함 4시간 반에 걸쳐 바그너의 반지 4부작 중 주요 곡을 일본 내 유명 바그너 가수들과 함께 선보였습니다.일본 언론과 평론가들은 "지휘자의 인생을 응축한 연주회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비상사태에도 불구하고 이뤄진 게 꿈만 같다"거나 "지휘대 위의 거장이 혼신을 다해 바그너에게 모든 것을 바쳐 선율 하나하나, 구석구석까지 끝없는 감동을 불어넣었다"는 호평을 내놨습니다.
이 연주를 직접 접하지 않은 이상, 공연에 대한 평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 언론들이 전하는 이 지휘자의 이력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1940년생인 이모리 타이지로는 미국 유학 중 미트로폴로스 국제 지휘자 콩쿠르와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쿠르에 입상하면서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후 독일로 활동무대를 옮겨 바이로이트 축제 음악 조수를 맡고, 만하임과 레겐스부르크 등 각지의 오페라 극장에서 활동했다고 합니다.
1972년 일본에 귀국한 후에는 요미우리일본교향악단, 나고야 필아모니, 도쿄 시티 필하모닉, 간사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의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도쿄 시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는 베토벤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전곡 녹음 음반도 내놨습니다.특히 주목받는 행보는 바그너와의 인연입니다. 2000년부터 4년에 걸쳐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전곡 공연을 했습니다. 니벨룽의 반지 전곡 공연은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를 제외하면 접하기 힘든 대작 공연입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2004년에는 '로엔그린', 2005년에는 '파르지팔', 2008년에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곡 공연을 이어갔습니다. 2014~2018년 신국립극장 음악감독으로 재임하면서 바그너 연주에 집중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바그너 연주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것입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요제프 카일베르트, 한스 크나퍼츠부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칼 뵘, 다니엘 바렌보임, 피에르 불레즈, 호르스트 슈타인 같은 바이로이트를 빛냈던 유럽의 유명 지휘자에 비해 지명도는 떨어지지만, 바그너 음악에 대한 사랑과 그의 곡에 천착한 집념은 크게 모자라 보이지 않습니다.'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일본에 대한 국민들의 일반적인 감정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닙니다. 세계 문화계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위상도 예전에 비해선 위세가 수그러든 감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문화계의 저력이 여전히 만만치 않고, 그들의 축적된 역량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바그너에 평생을 천착했던 이모리 타이지로 같은 분을 통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평생을 바그너에 바쳤던 일본의 한 '바그너 장인'의 평생을 정리하는 연주회 소식을 접하면서 한국에서도 문화 각 분야에서 고도의 전문성을 지닌 인재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넓혀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이분이 얼마 전 '팔순' 기념으로 도쿄시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리하르트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하이라이트를 연주했습니다. '팔순' 잔치마저 연주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극도로 아름답지만 가수들을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는다는 바그너 곡의 성찬으로 마련한 것입니다. 수차례에 걸쳐 일본에서 바그너 주요 작품을 전곡 연주했던 '바그네리안'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모리 타이지로 도쿄시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명예 지휘자는 휴식시간 포함 4시간 반에 걸쳐 바그너의 반지 4부작 중 주요 곡을 일본 내 유명 바그너 가수들과 함께 선보였습니다.일본 언론과 평론가들은 "지휘자의 인생을 응축한 연주회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비상사태에도 불구하고 이뤄진 게 꿈만 같다"거나 "지휘대 위의 거장이 혼신을 다해 바그너에게 모든 것을 바쳐 선율 하나하나, 구석구석까지 끝없는 감동을 불어넣었다"는 호평을 내놨습니다.
이 연주를 직접 접하지 않은 이상, 공연에 대한 평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 언론들이 전하는 이 지휘자의 이력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1940년생인 이모리 타이지로는 미국 유학 중 미트로폴로스 국제 지휘자 콩쿠르와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쿠르에 입상하면서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후 독일로 활동무대를 옮겨 바이로이트 축제 음악 조수를 맡고, 만하임과 레겐스부르크 등 각지의 오페라 극장에서 활동했다고 합니다.
1972년 일본에 귀국한 후에는 요미우리일본교향악단, 나고야 필아모니, 도쿄 시티 필하모닉, 간사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의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도쿄 시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는 베토벤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전곡 녹음 음반도 내놨습니다.특히 주목받는 행보는 바그너와의 인연입니다. 2000년부터 4년에 걸쳐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전곡 공연을 했습니다. 니벨룽의 반지 전곡 공연은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를 제외하면 접하기 힘든 대작 공연입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2004년에는 '로엔그린', 2005년에는 '파르지팔', 2008년에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곡 공연을 이어갔습니다. 2014~2018년 신국립극장 음악감독으로 재임하면서 바그너 연주에 집중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바그너 연주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것입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요제프 카일베르트, 한스 크나퍼츠부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칼 뵘, 다니엘 바렌보임, 피에르 불레즈, 호르스트 슈타인 같은 바이로이트를 빛냈던 유럽의 유명 지휘자에 비해 지명도는 떨어지지만, 바그너 음악에 대한 사랑과 그의 곡에 천착한 집념은 크게 모자라 보이지 않습니다.'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일본에 대한 국민들의 일반적인 감정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닙니다. 세계 문화계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위상도 예전에 비해선 위세가 수그러든 감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문화계의 저력이 여전히 만만치 않고, 그들의 축적된 역량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바그너에 평생을 천착했던 이모리 타이지로 같은 분을 통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평생을 바그너에 바쳤던 일본의 한 '바그너 장인'의 평생을 정리하는 연주회 소식을 접하면서 한국에서도 문화 각 분야에서 고도의 전문성을 지닌 인재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넓혀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