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처리 '일등공신'인데…정부도 노조도 외면한 20만 집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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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비 줄어들라.우리 일감 뺏을라" 화물노조 눈치보는 국토부‘폐가구, 폐가전제품, 폐지, 폐플라스틱, 폐유리, 폐금속…’
세계 최대 생산·소비국인데…청소차·암놀차는 지원, 집게차는 제외
자격증도 없고, 연간 10여명 사망…"쓰레기대란 국민피해 커질 듯"
하루 20만t가량 발생하는 재활용 생활·사업장폐기물 상당수는 ‘재활용 집게차량’의 도움으로 처리된다. 기존 화물차 뒷부분에 2~3m크기 집게 설비가 부착된 이 차량은 보통 중부지역에선 ‘집게차’, 남부지역에선 ‘하이카’ 등으로 불리며 전국에서 20만대가 운영되고 있다. 유럽에서 처음 개발된 이 특수 화물차종은 현재 전세계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다. 재활용 분리 수거시 없어선 안될 차량이 됐기 때문이다. 보통 다른 나라는 대용량 쓰레기 처리시 포크레인(수집)과 덤프트럭(운반)이 동원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같이 도심지내 좁은 골목길이 많고, ‘분리배출 요일제’ 등에 따라 신속하게 재활용 쓰레기를 처리해야하는 환경에선 ‘수집’과 ‘운반’기능이 합쳐진 재활용 집게차량이 제격이다. 국내 재활용 집게차량 생산은 광림이라는 기업이 국내 시장의 60%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동남아 러시아 등에도 수출하고 있다.
세계 최대 집게차 생산·소비국인데…자격증도, 안전 규정도 없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최근 국토교통부 장관에 “공익적 기능을 하는 재활용 집게차에 대해서도 정부가 유류비를 지원하도록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들 차량 운송업자들이 정부와 노동조합단체의 외면으로 유류비 지원을 못 받고 있기 때문이다.세계 최대 재활용 집게차량 생산·소비국이지만 20만명 가량의 이들 차량 운송업자들은 정책적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분석이다. 정부와 노동조합단체의 외면으로 신규 등록이 막히고, 이에 따라 유류비 지원도 못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과 함께 쓰레기 처리에 동원되는 청소용 차량, 암롤차량, 분뇨운반차량 등이 모두 정부 유류비 지원을 받는 것과 대조된다. ‘종량제봉투 수거 차량’으로 알려진 청소용 차량은 차량 후미 부분에 기계가 돌아가며 쓰레기를 압축해 수거한다. 암롤차량은 생활폐기물과 사업장폐기물, 음식물쓰레기 등을 밀폐된 초록색 철재 박스에 담아 운반한다. 국토교통부는 이들을 비롯해 분뇨운반차량에 대해선 “공익적 성격이 크고 용도가 제한됐다”며 신규 진입을 자유롭게 허가하고 유가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5t 암롤차량의 경우 월 150만원, 연 1800만원 가량의 유류비가 지원된다.재활용 집게차 운송업체들의 단체인 한국재활용업협동조합연합회의 조경주 회장은 “재활용 집게차량의 가동이 하루만 멈춰도 전국적으로 재활용 수거 운반 업무가 중단되는 ‘쓰레기 대란’이 벌어지는데도 정부가 이 차량의 공익성을 인정하지 않고 유류비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지적했다. 연합회 관계자는 "공익적 기능이 약한 택배 차량 역시 일부 정부 유류비 지원을 받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우리는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원재순환 생태계 '꿀벌'기능 하는데… 월 200만원 받고, 연간 10여명 사망
집게차 운송업체들은 대부분 재활용 수집·운반업자로 등록돼 쓰레기를 선별·파쇄 처리하는 중간처리업체한테 전달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중간처리업자는 이를 최종 재활용업체에게 전달하거나 소각·매립지로 보낸다. 업계에서 재활용 집게차 운송업자들을 ‘자원재순환 생태계의 꿀벌’기능을 한다고 표현하는 것도 이러한 고유한 역할 때문이다.유류비 지원이 안되다보니 집게차량 운송업자는 다른 화물운송차주에 비해 근무환경이 열악한 상태다. 재활용업협동조합연합회에 따르면 5t 암롤차량의 하루 일당은 60만원에 달한 반면, 집게차는 하루 20만원 수준이다. 월급 역시 기존 암롤차는 월 400만원 수입이 가능하지만 집게차는 야간 연장근로를 해도 월 200만~300만원 수준이다.재활용 집게차량은 1종 보통 자동차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취급이 가능하다. 별도의 자격증도 없고 안전 규정도 없다는 점도 문제다. 작업자들은 보통 지상 4m가량 높이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전복 사고시 사망할 확률이 높다. 재활용업협동조합연합회 관계자는 “정부 어느 부처도 관심이 없는 산업”이라며 “연간 10여명 이상이 전복 사고 등으로 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의 보험 가입 역시 쉽지 않으며 부담해야하는 보험료는 화물차 보험 가운데 가장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화물노조 눈치보기 바쁜 국토부…쓰레기 대란 벌어지나
국토부가 신규 등록과 유류비 지원을 막아선 배경엔 화물노조의 기득권이 작용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한 재활용업체 사장은 "예산이 한정된 정부 유류비 지원을 더 많은 기업에 제공 하려면 자연스럽게 기존 기업의 혜택은 줄어들기 마련"이라며 "화물노조측은 기존 화물 운송업자들의 유류비 지원혜택이 줄어들거나 집게차가 일반 화물 운송시장을 침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국토부 관계자 역시 집게차 업계를 돕고 싶어도 화물노조의 반발을 의식해 도울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고 말했다.국토부 관계자는 "재활용 집게차량의 신규 진입을 허용할 경우 이익집단간 첨예한 이견 대립과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우려가 있다"며 "다른 용도로 사용될 경우 화물차 운송시장을 교란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집게차 운송업계에선 국토부가 화물노조를 의식해 지나치게 걱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집게차를 화물차로 구조 변경하려면 600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는 데다 불법 운송시 처벌 수위도 높기 때문이다.
조경주 회장은 "기존 화물차를 집게차로 개조하려면 적재함을 1m이상 잘라내야 하고 4~5t가량이나 하는 집계 설비를 부착해야한다"며 "집게차로 화물운송시 적재가능 무게도 기존 화물차의 30%수준에 불과하고 연비도 낮아져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집게차로 불법 운송이 적발될경우 2년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기 때문에 위험부담도 크다는 지적이다. 그는 "지자체로부터 어렵게 인허가를 받은 폐기물 수집·운반업을 왜 반납하고 다시 화물운송하겠냐"고 반박했다.
국토부는 대안으로 기존 화물운송차량의 영업용 번호판을 받아 차량을 개조해 집게차를 운영하면 신규 진입도 허가하고 유류비 지원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집게차 운송업계에선 기존 사업권에 높은 가격을 주고 매매되는 암시장이 형성돼 번호판 프리미엄만 2000만~3000만원에 달한 상황에서 부담이 큰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집게차 운송업계는 이러한 문제를 장기간 방치할 경우 ‘쓰레기 대란’ 등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경주 회장은 “유류비 부담 등 업계의 열악한 처우로 집게차 운송업체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며 “일부 아파트에선 재활용 집게차량을 제때 구하지못해 재활용 분리수거물 처리가 일주일이상 지체되거나 웃돈을 줘야 운반이 되는 등 피해가 벌어졌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