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경계와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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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규 < 중앙대 총장 president@cau.ac.kr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경계 허물기와 융합’은 사회·문화·경제 전 분야에 걸쳐 지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생활 영역에서까지 하나의 양식으로 자리 잡아가며 미래의 틀을 만들어 가는 실천적 활동으로 인식되고 있다.
경계 허물기와 융합이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게 된 것은 빈곤·고령화·기후변화 같은 인류의 문제가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이라 기존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는 과도하고 불합리한 분화와 단절이 일반화된 측면이 많았다.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은 4차 산업혁명의 의미를 ‘정보통신기술(ICT)을 중심으로 서로 단절돼 있는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고 궁극적으로 융합하게 되는 패러다임 전환’으로 정의했다. ICT를 통해 ‘경계의 붕괴’와 동시에 ‘경계와의 융합’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산업 간 경계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사회적·경제적 니즈가 다양해지면서 발생하는 당연한 결과로 보는 긍정적 시각이 있는가 하면, 소비적인 융합이 남발되면서 산업 생태계를 해치게 돼 결국 경쟁력이 상실될 것이란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은 기술과 인문학적 상상력, 예술적 창조성을 융합한 대표적 사례로 알려져 있다. 융합보다는 인문학적 감성이 들러리를 선 마케팅의 성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폰은 세상을 바꿔놨고, 융합이 시대적 소명이며 미래 학문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는 견해가 확산되고 있다.하지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경계와의 융합이 효율적이고 필요하다 얘기하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분명한 것은 경계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경계를 열어주는 개방성이 함께 요구된다는 점이다. 융합을 통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 합의, 그리고 방법에 대한 적절한 교육체계와 훈련도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창의적인 융합 능력을 갖춘 인재 육성이 중요해지면서 대학도 다양한 융합전공을 개설하고 있다. 학생 스스로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를 선정해 이론과 현장 교육을 병행하거나, 학생과 교수, 현장 전문가들이 한 팀을 이뤄 문제해결 과정까지 진행하는 등 다양한 선택과 경험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한편으로는 학과 간 장벽이 여전히 높아 학제 간 수강이 쉽지 않은 점, 교수와 긴밀한 소통이 어렵다는 점, 인턴십 기회가 확대돼야 한다는 점 등이 개선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융합을 주전공과 부전공이 공동 수행하는 작업 정도로 생각하는 인식도 문제다. 보다 근본적으로 대학은 학과 중심의 경직된 학사체계 때문에 융합 문화가 활성화되기 어려운 환경이다.
대학은 교수, 학생들에게 동기부여와 더불어 융합 주제별로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도록 학과 간 경계를 낮출 수 있는 제도를 갖춰야 한다. 정부 역시 대학 학사제도를 규제 중심에서 유연성을 확대해 체험 중심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