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전조 스토킹]⑥ 英, 보호명령 무시하면 징역 5년…美, 미성년 스토킹 엄벌

英, '10년 접근금지명령' 등 강력한 피해자 보호…가해자에 '정신과 진료' 강제도
영국은 피해자 보호명령 '최소 2년'인데, 한국은 '최대 6개월'
"사회변화 맞춰 법규 강화한 외국처럼 스토킹처벌법 계속 보완해야"
탐사보도팀 = "찬성 235인, 기권 3인으로서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 대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
첫 발의 후 22년 동안이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던 스토킹처벌법이 드디어 지난 3월 24일 국회를 통과했다.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로 불리는 스토킹 범죄의 가해자를 엄하게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길이 열렸다.

하지만 그 입법은 미국과 비교해 31년, 영국보다 24년, 일본보다는 21년 늦었다. 더구나 스토킹처벌법은 피해자 보호 등에서 많은 허점을 지니고 있어 그 내용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오는 10월 시행되는 스토킹처벌법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것에 불과하다며, 해외 사례 등을 참고해 꾸준한 법 개정을 통해 허점을 메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英, 피해자 보호에 철저…가해자에 '10년 접근금지명령' 내리기도
영국에 살던 리투아니아 국적의 40대 남성 토마스 마즈리마는 지난 2019년 징역 27주 형과 접근금지명령을 선고받고 복역한 후 본국인 리투아니아로 추방당했다. 3개월 동안 사귀다 헤어진 여자친구를 2년 가까이 스토킹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즈리마의 집착은 멈추지 않았다.

추방당한 같은 해에 이름을 바꿔 새로운 신분으로 위장해 영국에 재입국했다. 이후 전 여자친구와 그녀의 딸, 남자친구를 상대로 살해 협박을 하는 등 또다시 스토킹을 벌였다.

그의 스토킹 행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접근금지명령을 위반한 마즈리마에게 영국 법원은 당초 형량의 6배에 달하는 징역 3년 형을 선고하고,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명령을 10년 연장했다.

영국은 1997년부터 '괴롭힘방지법'을 도입해 스토킹을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해왔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온라인 스토킹 등 새로운 형태의 스토킹이 등장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수차례 기존 법을 개정하고 새로운 법을 만들었다.

스토킹을 매우 심각한 범죄로 받아들이고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얘기다.
영국에서 스토킹은 최대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 중범죄다.

스토킹으로 인정하는 행위도 폭넓고 세밀하게 규정했다.

피해자를 직접 따라다니거나 연락하는 것 외에도 ▲연락을 시도하는 행위 ▲온라인 활동 감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온·오프라인상) 출간물 발행 등이 모두 스토킹으로 처벌받는다.

피해자 보호 조치도 강력하다.

스토킹 혐의가 입증된 후 내려지는 정식 보호명령에 앞서 경찰이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임시 보호명령'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이 보호명령을 무시하면 최대 5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스토킹처벌법도 영국의 임시 보호명령, 정식 보호명령에 각각 대응하는 '긴급응급조치', '잠정조치'가 있지만, 적용 기간이나 처벌 수위가 영국보다 약하다.

영국은 정식 보호명령 인용 때까지 임시 보호명령이 계속 연장될 수 있다.

정식 보호명령이 내려지면 최소 2년 이상 적용된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긴급응급조치는 1개월, 잠정조치는 최대 6개월에 불과하다.

더구나 긴급응급조치를 위반하더라도 처벌이 1천만원 이하 과태료에 불과해 최대 5년 징역형에 처하는 영국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영국에서는 스토킹 가해자에 대한 형량을 선고할 때 '10년 접근금지명령' 등 판사의 재량에 따라 강력한 피해자 보호 조치도 같이 내린다.

우리나라의 경우 형사적 접근금지는 '잠정조치 6개월'이 전부다.

이보다 강력한 조치를 원할 경우 '민사상 접근금지'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해야 한다.

민사상 접근금지는 형사처벌이 아니어서 가해자가 이를 위반해도 1회당 위자료를 청구하는 것에 그친다.

이때 가해자가 "재산이 없다"고 해버리면 그만이다.

나아가 영국은 피해자 본인은 물론 피해자의 주변인에 대해서도 가해자의 접근금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가해자에게 ▲정신과 진료 ▲재범 방지 프로그램 이수 ▲(피해자에게 접근할 목적의) 소송 남용 금지 ▲소셜미디어 계정정보 및 비밀번호 경찰에 등록 ▲휴대전화 등 통신장비 압수 등도 강제할 수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 사례 등을 참고해서 가해자 처벌 못지않게 피해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며 "가해자에 대한 보호관찰과 치료 프로그램 이수 등을 강제하고, 피해자를 철저하게 보호할 수 있는 '스토킹 피해자보호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日, '온라인 스토킹' 등 대응해 스토커 처벌 계속 강화
1999년 10월 일본 사이타마(埼玉)현 오케가와(桶川)시에서 일어난 '오케가와 스토커 살인사건'은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다.

직업과 이름 등을 거짓으로 꾸며 스물한 살 피해자에게 접근한 코마츠 카즈토(당시 27세)는 이별을 통보받자 4개월 동안 스토킹 행각을 벌였다.

이후 그의 형 등 공범 3명과 함께 피해자를 흉기로 무참히 살해했다.

사건 발생 전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은 수차례에 걸쳐 경찰에 스토킹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가해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민사 불개입 원칙(사적인 분쟁 등에 공권력이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 등을 내세우며 사태를 수수방관하더니 결국 비극을 초래했다.

이 사건은 일본 사회가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에 얼마나 무지한가를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사건 발생 다음 해인 2000년부터 일본에서는 '스토커 규제법'이 시행돼 스토킹 범죄자를 처벌하고 있다.
일본의 스토커 규제법은 크게 8가지 형태로 스토킹을 규정하고 미행, 감시, 협박 등은 물론 소셜미디어(SNS)나 이메일 등을 통한 온라인 스토킹, 명예훼손 등까지 폭넓게 처벌한다.

스토커를 돕는 행위도 처벌한다.

경찰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즉각적으로 스토킹 행위를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접근금지 등의 스토킹 금지 조치를 단순 위반해도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엔(약 500만원)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고의로 스토킹을 계속하면 2년 이하 징역 혹은 200만엔(약 2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또한, 일본도 영국처럼 법 개정을 통해 가해자 처벌 등을 계속 강화해 왔다.

지난 2012년 일본에서는 결혼 4년 차였던 피해자가 7년 전 헤어진 남자에 의해 자택에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하루에 수십 건씩 모두 1천 건 이상의 이메일을 보내며 피해자를 괴롭혔지만, 스토커 규제법에 '이메일' 관련 내용이 포함되지 않아 경찰의 조기 대응이 어려웠다.

이에 법을 개정해 2013년부터는 '집요한 이메일을 보내는 행위' 등을 처벌 대상에 추가했다.

인터넷 문화의 확산으로 온라인 스토킹이 크게 늘자 2017년부터는 'SNS'를 통한 스토킹 등도 처벌 대상에 추가했다.

스토킹 규정도 피해자 고소가 있어야만 입건할 수 있는 '친고죄'에서 피해 신고 없이도 가해자를 즉시 입건할 수 있는 '비친고죄'로 바꾸는 등 법규를 대폭 강화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스토킹처벌법 시행 뒤 드러나는 허점을 법 개정을 통해 계속 개선해야 할 것"이라며 "수사기관도 스토킹 범죄가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라는 인식을 가지고 법 집행을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美, '합리적 공포' 개념으로 가해자 처벌 강화…미성년자 스토킹 '엄벌'
1989년 한 살인사건이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여배우 레베카 쉐퍼에 광적으로 집착하던 스토커가 그녀가 영화 속에서 베드신을 촬영했다는 이유로 총으로 쏴 살해한 사건이었다.

이 끔찍한 사건은 미국에 스토킹처벌법이 도입되는 계기가 됐다.

사건 이듬해인 1990년 레베카 쉐퍼의 거주지였던 캘리포니아주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스토킹방지법을 통과시켰다.

이후 미국의 50개 주 전부 그리고 연방정부까지 스토킹방지법을 도입했다.

할리우드 스타에 대한 스토킹 사건이 잇따르기도 하는 미국은 스토킹 범죄를 엄격하게 처벌한다.

주마다 처벌 조항이 다르기는 하지만, 미국의 스토킹처벌법에서 두드러진 점은 '합리적 공포'라는 개념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캘리포니아, 뉴욕, 미시간 등 상당수 주가 스토킹에 해당하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기보다 사안별로 '스토킹 피해자가 공포를 느낄만한 상황'인지를 살펴서 스토킹 여부를 판단한다.

피해자의 '합리적 공포'만으로 스토커에 대한 법적 처벌이 가능할 만큼 피해자 중심 법체계가 마련됐다는 뜻이다.

대다수 주는 가중처벌을 통해 미성년자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스토커를 엄벌한다.

대표적으로 미시간주의 경우 스토킹 피해자가 피해 당시 미성년자였고,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5살 이상 많다면 가중처벌한다.

일반적인 스토킹의 경우 징역 5년 형에 벌금 1만 달러(약 1천100만 원)가 최대 형량이지만, 미성년자 대상 스토킹은 징역 10년에 벌금 1만5천 달러(약 1천700만 원)까지 처할 수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스토킹처벌법은 미성년자 대상 스토커를 가중처벌하지 않는다.

법무법인 예현의 신민영 변호사는 "미성년자를 스토킹한 범죄자에 대한 별도 처벌 조항이 없다는 것은 우리나라 스토킹처벌법의 한계"라며 "미성년자에 대한 스토킹 행위를 엄단하고 미성년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탐사보도팀: 권선미·윤우성 기자, 정유민 인턴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