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女중사 "하지마세요" 블랙박스 확보하고도 뭉갰다 [종합]

가해자 처벌 대신 피해자 회유·압박
국방부 장관 만난 모친, 오열하다 실신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 가해자인 공군 장모 중사가 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공군 이모 중사가 지난 3월 선임인 장모 중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가운데 사건 직후 군사경찰은 성추행에 저항하는 상황이 담긴 차량 블랙박스 음성을 확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2일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당시 차량 블랙박스에는 "하지 말아 달라. 앞으로 저를 어떻게 보려고 이러느냐"는 이 중사의 절박한 목소리가 모두 녹음됐다.그러나 공군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장 중사가 다른 부대로 파견 조치된 건 사건 발생 후 2주일이 지난 3월 17일이었다.

겉으론 매뉴얼대로 사건 처리가 진행됐지만 뒤에선 집요한 회유와 합의 종용이 이어졌다.

사건 다음날 장 중사는 이 중사의 숙소에 찾아와 "없던 일로 하자"고 했고, 부대 상관들도 "살다보면 겪게 되는 일"이라고 했다. 심지어 같은 군인이던 이 중사의 남자친구에게까지 연락해 회유했다.유족 측은 "공군에서는 모든 조치를 다 했다고 의원들과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건 객관적인 사실과 매우 배치된다"고 반발했다.

군 검찰단은 사건 석달만인 오늘에서야 장 중사를 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오늘밤 군사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된다.

가해자인 장 중사는 첫 조사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혐의 대부분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일 강제추행 피해 사실을 신고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이모 공군 중사의 영정이 경기도 성남 소재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현실에 놓여 있다. 사진=뉴스1
당시 차량 안에는 두 사람 외에 유일한 목격자인 운전을 하던 후배 부사관(하사)이 있었다. 운전을 한 하사도 군사경찰 조사에서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공군본부 검찰부에서 선임해준 국선변호인은 피해자 보호는 물론 사건 자체에 관심이 없어보였다고 주장했다. 공군 스스로 밝힌 국선변호인과 피해자의 통화는 단 두 차례였다.

공군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된 유족들은 새로 변호사를 선임했다. 새로 선임된 변호사는 국선변호인에게 고소장과 고소인 진술조서 등 기본적인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일체 자료가 없다면서 주지 않았다.이 중사는 피해 이후 20비행단 소속 민간인 성고충 전문상담관으로부터 22회의 상담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특히 상담 중이던 지난 4월 15일 상담관에게 "자살하고 싶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지만 같은 달 4월 30일 성폭력상담소는 "자살징후 없었으며, 상태가 호전됐다"는 진단과 함께 상담을 마쳤다.

이 중사는 5월 3일 청원휴가가 끝났지만 2주간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자가격리를 했다. 격리가 끝난 뒤 20비행단에서 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전속 조치가 이뤄졌고, 나흘 만인 22일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2일 사건 이후 처음으로 유가족을 만나 "한 점 의혹이 없게 수사하겠다"고 약속했다. 서욱 장관을 만난 이 중사 모친은 오열하다 쓰러졌다.
서욱 국방부 장관(오른쪽 위)이 2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의 유가족이 오열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이 중사는 억지로 저녁 자리에 불려 나간 뒤 귀가하는 차량 뒷자리에서 강제추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이 중사는 지난 18일 청원휴가를 마친 뒤 전속한 부대로 출근했지만, 나흘 만인 22일 오전 부대 관사에서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중사는 발견 하루 전 남자친구와 혼인신고를 마쳤으나 당일 저녁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모습도 휴대전화로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