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와 노래, 두 산을 정복한 오페라의 대가 푸치니[김희경의 7과 3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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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른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네순 도르마'. /파바로티 유튜브 채널
"물러가라 밤이여. 사라져라, 별들이여. 사라져라, 별들이여. 새벽이 밝아오면 나 이기리라. 이기리라. 이기리라!"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웅장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로 꼽히는 '네순 도르마(Nessun dorma)'입니다.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는 '아무도 잠들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음악가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노래죠.
'투란도트'는 아름답지만 차가운 공주 투란도트, 그와 결혼하고자 하는 칼라프 왕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투란도트는 구혼자들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맞히지 못하면 잔인하게 처형합니다. 많은 이들이 실패하지만 칼라프는 연이어 정답을 맞히며 투란도트를 당황하게 합니다. 하지만 투란도트는 승복하지 않는데요. 칼라프는 역으로 투란도트에게 수수께끼를 냅니다. 자신의 정체를 알아내라는 문제를 내며, 틀리면 결혼하자고 합니다.
재밌는 수수께끼, 결혼을 둘러싼 갈등 등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와 구성이 돋보이죠. 칼라프가 이때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며 부르는 아리아가 '네순 도르마' 입니다. 탄탄한 스토리에 더해진 이 아리아는 아름다우면서도 극적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푸치니는 '투란도트'뿐 아니라 '라 보엠' '나비부인' '토스카' 등 뛰어난 오페라 명작을 남겼습니다. 주세페 베르디에 이어 이탈리아 오페라의 화려한 영광을 이뤄낸 인물이죠. 통속적인 소재도 세련된 문법으로 풀어낸 덕분에 그의 작품들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재밌게 볼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그의 오페라는 자주 무대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뮤지컬로도 만들어졌으며, 뮤지컬 영화 '투란도트-어둠의 왕국 더 무비'로도 제작돼 국내 최대 뮤지컬 축제인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오는 18일 공개됩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안드레아 보첼리, 폴 포츠 등 국내외 많은 유명 성악가들도 푸치니의 아리아를 사랑하고 즐겨 불렀습니다. 푸치니 작품만의 매력과 그의 삶이 더욱 궁금해지는데요. 푸치니가 만들어낸 오페라의 세계로 함께 떠나 보실까요.푸치니는 5대에 걸쳐 산 마르티노 대성당의 음악 감독을 지낸 음악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외가에도 음악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죠. 덕분에 풍요롭게 마음껏 음악을 공부할 환경이 조성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6살이 되자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며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8남매의 장남이었던 푸치니의 어깨가 무거워졌죠. 어머니는 그런 푸치니에게 부담을 주기보다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오르간 연주를 가르쳤습니다.그러나 그는 오르간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요. 18세에 푸치니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이 발생합니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보게 된 것입니다. 티켓 값조차 부담스러웠지만, 그는 베르디의 작품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엔 그는 돈이 없어 긴 시간을 걸어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슴엔 오페라 작곡가가 되겠다는 새로운 꿈과 희망이 가득 차 올랐습니다.
그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빌리'라는 작품으로 오페라 공모전에 나갔지만 떨어졌죠. 그래도 다행히 이 작품의 진가를 알아본 작가에 의해 공연이 올라가게 됐는데요. 호평을 받으며 이름을 조금씩 알리게 됐지만,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어머니가 돌연 세상을 떠났습니다. 8남매를 홀로 키워야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푸치니를 믿고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해준 어머니의 죽음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어머니와 이별 이후 만든 그의 두 번째 오페라 '에드가'는 1889년 무대에 올랐지만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다시 차근히 작품을 준비했습니다. 4년 후 발표한 '마농 레스코'는 이전 작품들과 달리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이후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등도 많은 인기를 얻었죠. 이를 통해 푸치니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작곡가로 자리매김합니다.이전과 다른 성공 비결은 '대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대본 작업에 엄청난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마농 레스코'엔 푸치니를 포함해 8명이 대본 작업을 했는데요. 그는 수정을 거듭하며 대본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라 보엠'의 대본엔 자신의 힘들었던 경험을 최대한 녹여 만들었죠. 이 작품은 많은 청춘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며, 뮤지컬 '렌트'로 각색되기도 했습니다.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다양한 방법도 고안했습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을 주요 소재로 끌어왔고, 감정을 보다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해 여성 주인공의 비중을 높였습니다. 동서양의 문화를 결합하는 색다른 시도로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투란도트'는 중국, '나비부인'은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데요. 동서양의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물씬 풍깁니다.
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른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의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 /보첼리 유튜브 채널
오페라의 성패는 아리아에 달려있다고도 합니다. 처음 아리아가 울려 퍼지는 순간부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기억에 길이 남을 선율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죠. 그의 오페라엔 이런 명곡들로 가득합니다. '토스카'에 나오는 '별은 빛나건만'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나비부인'의 '어떤 개인 날', '라 보엠'의 '그대의 찬손' 등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곡들엔 서정적이면서도 애절한 감정들이 담겨 있습니다. 아마도 그의 성격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푸치니는 밝고 경쾌했지만, 약간의 우울함도 함께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나는 멜랑꼴리의 거대한 짐을 지고 태어났다"고 스스로 말하기도 했죠.
전성기를 누리던 그에게 또 위기가 찾아왔는데요. 명작들을 잇달아 만들었지만 어느 순간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하녀와의 염문설로 큰 타격을 입기도 했죠.
그러나 푸치니는 위기가 찾아오면 더 강인해지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모든 노하우와 기법을 총집결해 대작 '투란도트'를 탄생시켰습니다. 교통사고 후유증과 인후암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지만 열심히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지금까지의 내 오페라들은 다 버려도 좋다"고 얘기할 정도로 자신감도 보였습니다.안타깝게도 그는 작품을 다 만들지 못하고 숨을 거뒀는데요. 푸치니의 제자 등이 그의 사후 함께 완성해 세상에 널리 알렸습니다. 스토리와 노래, 반복되는 위기에도 이 높은 두 산을 정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푸치니. 마침내 정상에 올랐던 그의 환희의 외침이 '네순 도르마'에 담겨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 가사를 되뇌어 봅니다. "새벽이 밝아오면 나 이기리라. 이기리라. 이기리라!"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