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인류 최초의 교역품은 비너스와 칼이었다

경제사 이야기

(1) 선사시대의 수출품
충북 충주에서 발견된 세형동검. 한국의 세형동검도 독일에서 안테나식으로 시작돼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의 스키타이 문화와 결합한 뒤 나온 오랜 교류사의 작품이라는 것이 학계의 시각이다. 한경DB
2008년 9월 독일 슈바벤 지역 펠스 동굴에서 3만5000년 전의 매머드 이빨에 조각된 비너스 상이 발견됐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조각품에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사실 비너스 상이라고 불리는 여인의 나체상은 문자가 없던 석기시대의 문명 교류와 인류의 장거리 이동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구대륙 각지에서 발견되면서 선사시대의 글로벌화한 문화교류의 흔적으로 꼽힌다. 19세기 말엽부터 서유럽과 동유럽, 시베리아의 여러 곳에서 후기 구석기시대에 속하는 여러 형태의 여인 나체상이 발굴됐다. 학자들은 이 여인상을 여성의 원형으로 간주해 ‘비너스’라고 이름 붙였다.

동서 문명 교류를 증명하는 비너스 상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는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의 저서에서 주요 내용을 새로 정리한 것이다. 돈, 권력, 전쟁, 문화로 읽는 3000년간의 경제이야기로 재미있고 교훈을 줄 만한 내용을 담았다.
동서 문명 교류사 연구자인 정수일 박사에 따르면 1882년 프랑스 브라상푸이에서 처음 유물이 출토된 뒤 펠스의 비너스가 나오기 전까지 7개 지역 19개 장소에서 다양한 형태의 비너스 상이 다수 발견됐다. 구체적으로 레스퓌그와 브라상푸이 등 프랑스 다섯 곳에서 비너스 상이 나왔다. 이탈리아 세 곳, 독일 남부 한 곳도 출토지다. 유명한 발렌도르프 비너스 상이 나온 오스트리아 발렌도르프를 비롯해 옛 유고연방 지역 두 곳과 우크라이나 다섯 곳, 동시베리아의 코스텐키와 아브데보 등에서도 비너스 상이 발견됐다. 프랑스에서 바이칼호 연안까지 북방 유라시아 광활한 영역에 출토지가 산재해 있고 제작 연대는 보통 2만5000년에서 2만년 전의 후기 구석기시대로 추정된다. 대부분 크기가 왜소해 가장 작은 이탈리아 트라시메노 출토 비너스 상은 높이가 3.5㎝ 정도이고 가장 큰 이탈리아 사비냐노 출토품도 22㎝에 불과하다. 펠스 비너스도 높이가 겨우 6㎝다.

1979년 중국 훙산문화 중심부 랴오닝성에서 발굴된 유물은 비너스 상에 대한 시야를 크게 넓혔다. 두 점 모두 머리가 떨어져 나갔지만 5~5.8㎝의 크기에 복부와 엉덩이가 돌출된 임신부 형의 환조라는 점이 기존 비너스 상들과 연관성이 높게 여겨진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일본 아이누족 유적에서 발견된 여신상 등 가슴과 엉덩이 등 여성적 특징을 나타내는 부분이 특별히 강조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에 대해 구석기시대 인종적 특징을 드러내는 사실적 묘사를 한 작품이라는 설명에서부터 호신부적이라는 설까지 여러 시각이 나왔다. 풍요와 다산을 바라는 주술적·제의적 우상이라는 분석을 비롯해 종족의 수호신, 조상신, 무녀상 등 다양한 설명이 제기됐다.

비너스 상이 어디서 기원했는가에 대해서도 학자 간에 이견이 있다. 크게 동시베리아를 포함하는 우크라이나 동쪽 지방에서 기원했다는 동방기원설과 각 지역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나왔다는 자생설, 동유럽에서 기원했다는 동유럽 기원설 세 가지로 나뉜다. 그중 동유럽 기원설이 설득력이 강하다. 동유럽에서 동서 형태를 절충한 중간혼제형이 많이 출토되는데 이런 혼제형이 동과 서로 파급됐다는 설명이다.

먼 거리를 오간 흑요석 칼과 금속 검

비너스 상과 함께 선사시대 주요 교역품으로 ‘칼’을 들 수 있다. 에로틱 예술품과 함께 무기가 선사시대 원거리 교역의 증거물로 확실히 자리잡은 셈이다. 특히 칼의 재료로 주목되는 것이 원산지를 과학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흑요석이다. 용암이 지표면에서 급속히 굳어지며 형성되는 흑요석은 인류 역사 초기부터 칼이나 화살촉, 도끼 같은 무기 도구로 사용됐다.

이미 10만~13만년 전으로 추정되는 탄자니아 북부 뭄바 바위그늘 유적에서 나온 7개의 유물은 320㎞나 떨어진 곳에서 온 것이었다. 에티오피아의 가뎁 유적과 케냐의 킬롬베 유적에선 흑요석으로 만든 아슐리안 석기 전통의 주먹도끼가 나왔는데 이는 원산지에서 100㎞가량 먼 곳으로 운반됐다. 2만 년 전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다가 약 3000년 전 버려졌던 그리스 본토 펠레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프랭크티 동굴에서 발견된 흑요석의 경우도 출처를 조사해 보니 그리스 본토에서 약 120㎞ 떨어진 멜로스 섬으로 확인됐다. 콜린 렌프루라는 학자가 기원전 6000년께 중동 지역(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사용되던 흑요석 도구들의 원산지를 확인해 본 결과, 모든 흑요석은 티크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있는 아르메니아 지방의 산지에서 난 것이었다.

원시 형태의 흑요석 ‘칼’보다 발달된 형태인 금속제 무기인 ‘검’의 경우도 선사시대에 먼 거리를 오간 주요 교역품이었다. 일반적으로 칼보다 길이가 훨씬 긴 검은 유럽 지역, 도나우 강변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져 있다. 기원전 2000년께 에게 해 근방에서 처음으로 장검(長劍)이 무기로 사용돼 기원전 15세기에 이르면 북·중유럽 여러 지역에서 성행하게 된다. 장검은 이후 청동기시대 후기에 독일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큰 발전을 이룬다.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장검은 기원전 13세기에 만들어진 리그제(Riegsee)식 장검이다. 원판에 꼭지가 달린 형식의 칼머리를 갖췄다. 이는 다시 기원전 12세기에 와서 손잡이에 그립이 3개 있는 형태로 발전한다. 이런 검은 기원전 10세기에 칼머리가 넓은 접시 모양을 한 샬렌크나트식으로 변형되고, 같은 시기에 접시 모양 칼머리가 점점 커지는 뫼리게르식도 나타난다.

이렇게 북부 독일에서 출발한 안테나식 동검은 동쪽으로 퍼져나가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러 스키타이의 영향을 받은 아키나케스식 단검으로 칼머리가 바뀐다. 다시 이 아키나케스식 검은 몽골, 중국, 일본 등지로 유입된다. 이런 검의 디자인이 영향을 계속 미친 끝에 한국 청동기시대의 세형동검으로까지 이어졌다. 독일에서 안테나식으로 시작돼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의 스키타이 문화와 결합한 뒤 나온 오랜 교류사의 작품이 한국의 세형동검이라는 게 학계의 시각이다.

인류사의 초창기부터 활발한 교류를 거친 주역이 바로 무력을 상징하는 칼과 에로틱한 느낌의 예술품이었다. 선사시대의 대표 교역품이 곧바로 인류의 본성을 반영한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떨치기 힘들다.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NIE 포인트

① 비너스상이 세계 곳곳에서 나왔지만 특징이 제각각인데 이를 지역 간 교류의 증거로 볼 수 있을까.② 자르개, 주먹도끼, 돌칼 등 석기시대 이래 칼의 살상력이 갈수록 높아진 것은 인류가 전쟁을 선호했기 때문일까.

③ 일본열도가 원산지인 흑요석이 한반도 남부에서 발견되고 고조선에 의해 중국에까지 수출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